민족문화전문가가 오해하고 있는 민족문화

한겨레신문의 "사물놀이 자식들..." 기사를 보고

등록 2001.03.14 17:28수정 2001.03.16 11:36
0
원고료로 응원
나는 민족문화운동가이지만 가끔 "민족문화전문가가 민족문화를 망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스스로 부끄러운 말이지만 민족문화의 재정립과 새로운 발전을 위해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복전문가들이 여는 큰 행사에 갔는데 100여명의 참석자 중 한복을 입고 온 이는 3명뿐이었다. 자신도 입지 않으면서 어떻게 한복이 훌륭한 옷이라고 할건가? 더구나 한복인들의 중요한 행사에서 말이다.


다기를 빚는 도자기인이 자신은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차를 마시라고 다기를 빚는 것이 아니던가? 자신이 차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다기의 보급은 기대할 일이 아닐 것이다.

차선생님(차문화인)들은 차를 보급하기 위한 강의를 하면서 경직된 일본식 다도를 가르친다. 무릎꿇고 마시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더구나 조선시대의 다성(茶聖)으로 존경받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같은 분들이 무릎꿇고 차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다.

이상의 예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철학을 가지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머리 속에서는 딴 생각을 하고, 또 행동은 다른 방향으로 하면서 입으로만 외친다면 이건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아니 위선자일 것이다.

이런 예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한겨레신문 오늘 자(3월 14일) 기사에서 안타까운 내용을 보았다. 바로 "사물놀이 자식들 지구촌으로 용틀임"이란 <무대와 갈채>의 기사이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모대학 국문과의 김아무개 교수. 국문학을 강의한다면 한 낱말의 중요성이나 뜻에 대한 고찰이 남보다 더 깊은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내용 중에는 '풍물굿'을 '농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농악(農樂)은 무엇인가? 나의 가사 중 "풍물굿과 사물놀이는 같은 것?"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고 문제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농악은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농업 수탈정책의 하나인 농업 장려운동으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농악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의 음악'이라 하여 농사꾼이 하는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서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하고 농업 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농악'이란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들이 농악이란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8 15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이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위 내용으로 보면 분명 농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스스로 일본 제국주의의 우리 문화 말살정책에 손을 들고 마는 형국이 아니겠는가? 말 하나가 무슨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지 못할 때 남의 나라에 여러모로 손해를 볼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농악'이 아닌 '풍물굿'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풍물은 풋굿과 같이 신풀이 살풀이의 뜻으로 소원을 풀고, 풍년을 기원한다는 '풍장(풀이장구)굿'의 뜻이 들어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더욱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앞의 기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풍물굿은 무대문화가 아닌 연주자와 관객이 한 덩어리로 혼연일체가 되는 대동문화이다. 우리 민족문화의 기본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물놀이'는 우리의 민족문화와는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기량을 발휘하고, 관객은 박수만 치는 형태의 서양문화를 그대로 빼닮은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의 주장처럼 사물놀이 또는 '새끼 사물'들이 "새 가락은 호흡하되 민족혼은 잃지 말아야"라는 주문에 따라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공연 자체에서 한국혼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이 기사 바로 아래에는 소위 '새끼 사물'이라는 타악그룹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다. 여기서도 비판적인 견해들이 보여진다. "성적인 측면을 은근히 부추기는 자극적인 의상과 몸짓, 유행쫓기처럼 비치는 비언어 고집, 전자음과 비트의 난무 등은 작품성과 예술성보다는 다분히 상업적인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홍대선 기자는 말한다.

또 연극평론가 김소연 씨의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는 비언어 퍼포먼스들이 스스로 표방한 것처럼 한국적인 것에서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찾고 만들어가야 하는데, 표준화 또는 서구화된 리듬에 너무 편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도 소개되었다.

물론 나는 '사물놀이'와 '새끼 사물' 즉 타악그룹들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큰 공을 세운 것이 사실이고,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음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물놀이'와 '타악그룹'들이 김교수의 주문대로 민족혼을 잃지 말길 간절히 바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4. 4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