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존심으로 생각하는 벚꽃잔치

등록 2001.04.09 11:39수정 2001.04.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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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등 아래 벚꽃

사직공원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이제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우리에게 낯익은 황지우 시인은 벚꽃을 그렇게 노래했다.
봄밤에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 나온 벚꽃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벚꽃을 우리는 너나없이 즐기고 있다. 4월 1일 진해군항제를 시작으로 온 나라에서 벚꽃잔치가 펼쳐진다. 현재까지 파악된 벚꽃잔치는 무려 21군데에 이르고 있다.

1. 진해군항제와 벚꽃축제
2. 남해 벚꽃축제
3. 화개장터 벚꽃축제(하동군)
4. 마이산 벚꽃축제
5. 전군가도 벚꽃마라톤축제, 군산 벚꽃예술제
6. 왕인 문화벚꽃축제
7. 제주 왕벚꽃잔치
8. 경주 벚꽃마라톤대회
9. 남천 벚꽃축제(부산 남천동)
10. 경포대 벚꽃축제
11. 정읍 벚꽃축제
12. 제천 청풍명월 벚꽃축제
13. 김포성당 벚꽃축제(경기도 김포)
14. 사천 선진리성 벚꽃축제
15. 김제 벚꽃축제
16. 석촌호수 벚꽃축제(서울 송파)
17. 창원 벚꽃축제
18. 서산 한우목장 벚꽃축제(축협종축개량본부)
19. 경기도청 벚꽃축제
20. 터줏골 벚꽃축제(인천 자유공원, 월미도)
21. 서울랜드 왕벚꽃축제

게다가 철도청에서는 벚꽃관광열차까지 만들고 있다. 벚꽃 관광열차는 진해, 쌍계사 10리, 서산은산목장 벚꽃 관광열차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온 나라가 벚꽃으로 떠들썩한 것이 4월이다. 심지어 1984년까지는 우리의 궁궐 창경궁에도 일본의 국화인 벚꽃잔치로 요란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벚꽃잔치를 꼭 벌여야만 할까? 민족적 자존심의 차원에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벚꽃의 꽃말은 결백, 정신의 아름다움으로 알려져 있다. 장미과에 딸린 갈잎 큰 키 나무(납엽교목:落葉喬木)로 키는 20m 가량 자라고, 잎은 끝이 뾰족한 길둥근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4∼5월에 분홍색 또는 흰색의 다섯 잎 꽃이 우산 모양으로 피며, 바람이 불면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수많은 꽃잎이 떨어져 아름답다.

벚꽃의 `벚'은 버찌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일본벚꽃(Japanese Cherry)이다. 7월에 버찌라고 하는 열매가 검붉게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고 민간에서는 열매와 줄기를 진통, 심장염, 피로회복, 치통, 대하증 등에 약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한라산이 원산지인 왕벚꽃은 우리 토종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수입하여 개량한 산벚꽃이다.


일본에는 벚꽃의 전설이 있다고 한다. 산의 신 오오야마즈미꼬또와 들의 신 구사노히메꼬또 사이에 태어난 노고하나 꾸야히에노미꼬또는 니니기노미꼬또에게 시집을 가기 전까지 꽃의 궁전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아버지의 명령으로 후지 산 꼭대기에서 내려와 종자를 뿌렸는데 거기에 안개처럼 많은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나라꽃인 벚꽃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하면 벚꽃(さくら)이 떠오를 것이다.
벚꽃은 일본도 그 원산지의 한 나라이며, 특히 산벚꽃은 일본 본토의 북방을 제외한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와 전설, 그리고 국민의 감정 따위로 하여 이 벚꽃을 국화(菊花)와 함께 나라꽃으로 선택하였다. 벚꽃은 질 때 주저함 없이 순간적으로 져버리는 성질 때문에 대동아전쟁 이전의 군국주의와 결부시켜 호전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려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인이 느끼는 벚꽃은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나 미국의 워싱턴에 피는 벚꽃은 향기가 없는데 반해 일본의 산벚꽃은 향기가 있어서 일본인들은 결혼식장에서 손님들에게 벚꽃차를 주기도 하는 등 일상 생활 속에서 경사스런 날이면 어김없이 벚꽃 향기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결혼식(특히 신사에서 식을 올릴 경우)때는 탕(湯:さくらゆ=>소금에 절인 벚꽃잎을 더운물에 넣은 것)을 마시는 풍습도 있다고 전한다.

일본에는 '꽃은 벚꽃이요 사람은 무사'라는 말이 있다. 무사는 어떤 일에 당하여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요구되는데, 벚꽃이 주저함 없이 순간적으로 지는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다움으로까지 표현한 것인가 보다.

또 일본에는 화견(花見:はなみ)이라는 말도 있다. 화견은 꽃구경, 특히 벚꽃 구경을 말한다. 벚꽃이 피면 날을 정하여 식구나 친구끼리 벚꽃 나무 아래에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이야기도 하며 봄날을 즐긴다고 한다. 벚꽃 계절이 되면 화견으로 이름난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황을 이룬다. 특히, 도쿄 우에노공원은 벚꽃이 활짝 피면 24시간 개방하게 되는데, 등불을 밝히고 바라보는 밤 벛꽃놀이(夜櫻:よざくら)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된다고 한다.

4월이 되면 일본의 일기예보시간에는 으레 「벚꽃전선:さくら前線(ぜんせん)」에 대한 예보가 나오는데, 그 날짜에 벚꽃이 어디쯤 피었나 하는 이야기가 된다. 도꾜는 4월 둘째 주 정도면 벚꽃이 핀다고 한다. 그런데, 도꾜에서 벚꽃의 개화를 판가름하는 것은 신주꾸(新宿區)의 정국신사(靖國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에 있는 벚꽃 나무가 그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벚꽃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렇게 본다면 벚꽃놀이는 일본 사람들의 전통적인 놀이라 해야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는 매화, 진달래를 사랑했지 벚꽃은 문집이나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다.

일본 국화 벚꽃 속에서 충무공 정신 기리는 군항제를 ?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 때문에 언론들이 떠들썩해 진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이 땅 곳곳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벚꽃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해마다 진해는 벚꽃놀이 인파와 차량으로 홍역을 치른다. 3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몰려드는 이때는 진해 시내는 물론 가까이 있는 마산과 창원까지도 교통이 마비되어 버린다고 전한다.

꽃을 좋아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진해 등 몇몇 곳의 벚꽃은 우리의 토종 왕벚꽃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의 문화 식민지를 위해 심었던 일본의 국화 벚꽃을 좋아한다니 다시 한번 생각할 일이 아닐까?

더구나 충무공을 기리는 군항제에서 벚꽃잔치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터이다. 왜적을 무찌르고, 이 땅을 지켜낸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자는 행사가,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벚꽃이 흩날리는 속에서 거행되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된 이후 일본총독부는 문화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일을 표나지 않게 은밀히 추진했다고 한다. 그것은 모두 조선 사람들이 조선 정신을 갖지 못하게 하는 일로서 조선말과 한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성으로 창씨개명을 하는 것 그리고 한반도에서 무궁화를 모두 없애고 벚꽃으로 바꾸어 심는다는 계획이었다. 이 세 가지 일은 겉으로 표나지 않으면서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1970년대 초 국제 무대에 일본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가리켜 뉴욕타임즈는 '벚꽃이 다시 핀다. '고 했다고 한다. 일본이 군국주의 역사관으로 다시 벚꽃을 피게 한다면 결국 누구를 이롭게 할까? 요즘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 사태를 보면서 우리 국민 모두는 흥분했다. 하지만 흥분하기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의 시구처럼 벚꽃이 미쳤는지, 우리가 실성했는지 모르겠다.

벚꽃 만개

윤 부 현

꽃은 피는 것 아닌
터지는 것,
공작이

날개.

벚꽃 아닌
눈,

만산
꽃보라
눈보라
구름보라.

실성을
넘어 선
기쁨,
지나쳐선
슬픔.

머흐는
흘러가는
구름보라.

부신
그늘은
시러럼,

만산 좌그르르
눈보라
꽃보라
구름보라.

실성했다
꽃나무 모두는 실성했다.

이젠 우리가 우리를 새롭게 알 때


※ 벚꽃술 담그는 법

[재료] 겹벚꽃 300g, 설탕 40g, 소주 1.8l
[만드는법] 봉오리가 80% 정도 핀 꽃을 골라서 딴다. 물에 가볍게 씻어 물기를 빼고 바람에 말린다. 병에 넣고 밀봉하여 10일쯤 경과한 후 꽃을 건져내고 여과시킨다. 술은 다른 병에 옮겨 냉암소에서 2달 가량 숙성시킨다.
[마시는법] 은은한 벚꽃 특유의 향기가 있으며, 감미를 약하게 하여 향기를 살린다. 스트레이트가 좋으며 칵테일에는 냄새가 약한 것과 어울려 마시면 좋다.
[효용] 식욕증진, 피로회복에 좋다.

덧붙이는 글 | ※ 참고
부끄러운 문화답사기, 외대 기록 문학회, 실천문학사
(사이버 문화칼럼) 춘광에 즈음하여, 윤택림 
한일학술연구소 : www.jls.co.kr

덧붙이는 글 ※ 참고
부끄러운 문화답사기, 외대 기록 문학회, 실천문학사
(사이버 문화칼럼) 춘광에 즈음하여, 윤택림 
한일학술연구소 : www.jl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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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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