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진행되는 동안 꽤 많은 독자들의 '의견'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멀리 베트남의 사이공과 독일의 함부르크,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의견을 보내 주신 독자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의 절절한 사연은 내 심금을 한없이 울리기도 했지요.
반면에 내 글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에 기반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시비들도 많았습니다. 야유와 욕설을 지나 어느 정당의 사주를 받고 쓰는 글이 아니냐는 ―무지와 치졸성이 뒤범벅이 된 언사 앞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가없는 연민 때문에 슬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10회로 예정되어 있는 이 글을 끝내면 지금까지의 '독자 의견'들을 종합해서 그 의견들에 대한 내 소견도 한번 정리를 해 볼 생각입니다만, 가지각색의 그 의견들은 우리나라의 지역감정 문제가 아직도 울울창창한 넝쿨숲 같은 것임을 절로 느끼게 합니다. 나는 난험하기 짝이 없는 어두운 넝쿨숲을 어렵사리, 어쩌면 눈물겹게 헤치고 나아가는 외로운 나그네라는 생각도 절로 들고….
그러나 어두운 숲속을 헤쳐가는 나그네는 저 멀리 숲속 어딘가에서 깜박이는 불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불빛 때문에 그는 어두운 넝쿨숲도 힘껏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거지요. 가시덩굴에 발이 긁히고 허당에 빠져 넘어지고 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가시덤불도 헤치고 나아가는 숲속의 나그네에게는 저 멀리에서나마 깜박이는 희망의 불빛이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요.
최근에 한 독자분은 내 글에 이런 의견을 달아주셨습니다.
"바른 소리 하는 분이 어느 지역에나 한 분 쯤은 계시는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은 늘 외톨이가 되지요.
자민련 싹쓸이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 누구라도 거기에 맞장구치지 않는 사람은 역적이 되었을 겁니다."
나는 그분의 말 중에서도 '외톨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왈칵 눈물이 솟을 것만 같았고….
오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반드시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한량없는 고독감에 가슴을 떤 적들이 참으로 많지 싶습니다. 저 1969년의 삼선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로부터 시작해서 72년의 유신헌법을 위한 국민투표와 75년, 80년의 국민투표를 치르면서 얼마나 깊은 고독과 절망 속에서 몸을 떨었는지…. 그리고 지역감정이 마구 난무하는 여러 번의 갖가지 선거를 치르면서 또 얼마나 한량없는 고독감과 슬픔을 끌어안고 눈물을 삼켰는지….
나는 지역감정이 난무하는 선거판 속에서 여지없이 발휘되는 대중의 집단 최면 현상이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내게는 크나큰 공포의 대상입니다.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귀신이 선거 때만 되면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대다수 유권자들의 이성을 아주 간단히, 철저히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느 면으로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충청도 사람으로서 충청도 사람들의 이성을 철저히 마비시켜버린 자민련 바람―신지역감정 바람에 더 더욱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도지사, 도의원, 군수 할 것 없이 논두렁의 말뚝에다가 자민련 옷만 입혀도 당선이 된다고 하는 그 몰이성의 극치 앞에서 한없는 고독과 비애를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서 슬퍼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참담한 심경 속에서도 그 몰이성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더욱 굳게 결심하며 재차 전의를 불태우곤 했지요.
1996년의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후에는 지역 언론매체들에 더욱 많은 글을 썼습니다. 충청지방에서의 자민련의 '싹쓸이'가 또 한번 무섭게 현실화된 상황에서도 그 신지역감정에 맹렬히 저항하고 비판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물론 현실적인 효과는 실로 미미한 것이지만) 사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글들 중에서 서산과 태안의 지역신문 <새너울>에 썼던 사설 하나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새너울>은 '국민 주식'에 의해 만들어진 신문인 <한겨레>처럼 '주민 주식'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신문이지요. 나는 93년의 창간 때부터 97년까지 그 신문의 '논설주간'으로 '봉사'를 했답니다.
국회의원 당선자 인사장의 문제점
다수의 뜻에 승복하는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 국가의 기본 법칙이지만 이 다수결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순과 맹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민주 사회가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다.
또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배려를 해야 하는 것도 민주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수에게 가려진 '소수'가 진정한 '중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역사적 사실에서도 증명되며, 그것은 계속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의 대다수 정치·사회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본다면 최근에 서산시민과 태안군민 거의 모든 가정에 우편으로 배달된 변웅전 국회의원 당선자의 인사장은 큰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국회의원 당선자가 어떤 방법으로든 정중히 고마운 인사를 하는 것이야 시비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편을 통한 방식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불특정 다수민에게 무제한적으로 하는 인사 방식이다. 그렇다면 사용하는 말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고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변웅전 당선자는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우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54,2%(52,723표)의 높은 지지로 충남·북에서 최다 득표를 하였음"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지지이기보다는 지역감정 바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눈으로 볼 때는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변웅전 당선자는 또 "이번 총선 결과는 충청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굳건히 세운 서·태안의 승리이며 역사적 쾌거"라고 강조했는데, 이 또한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에 대해 고뇌하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말이다.
변웅전 당선자의 폭넓은 시야와 겸손을 당부한다. *
(1996년 <새너울> 5월 13일)
금배지를 달고 있지 않은 지금도 자민련의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변웅전 씨는 96년의 제15대 총선 때 너무도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 변웅전 씨는 고향인 서산과 거의 래왕이 없던 사람이었지요. MBC 아나운서실장 시절에는 그의 사무실 문턱이 하도 높아 그를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말까지 무성했답니다.
그런 사람이 자민련에 의한 충청도의 신지역감정의 수를 잘 읽은 나머지 어느 날 갑자기 자민련이라는 이름의 낙화산을 타고 내려오니, 그 다음부터는 땅짚고 헤엄치기였지요. '충청도는 자민련'이라는 등식 앞에서는 고장에서 오랫동안 좋은 일도 많이 하며 산 다른 후보의 명확한 이력도 다 소용이 없더군요.
위에 소개한 사설이 게재된 신문이 배포된 날 저녁부터 우리 집과 새너울신문사의 전화통은 거의 불이 날 지경이었지요. 욕설과 야유, 협박 등이 얼마나 자심했던지 우리 가족은 (특히 노모께서) 전화기의 신호음만 들어도 깜짝 깜짝 놀랄 정도였지요.
그런 참에 <태안신문>과 <홍성신문> <청양신문> 등에 게재된 내 칼럼들은 자민련의 압승에 도취해 있으면서도 어떤 비판도 관용하지 못하는 그들의 속좁은 가슴에, 말하자면 광솔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였지요.
그 칼럼들 중에서 <태안신문>에 게재되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오늘 여기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요즘은 홍성이 부럽습니다
K형, 안녕하신지요. 지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 기간에 노정되었던 갈등과 불협화음을 수습하고 새로이 지역사회 건설에 힘을 모아야 할 때 또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태안신문>이 이 글을 실어줄지도 걱정입니다만, 훗날에 오늘의 참다운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세로 살고 있는 문인으로서 우리 삶의 걸음새를 면밀히 살피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도 저의 본분이기에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저는 어제 지역신문의 선두 주자인 <홍성신문>의 지면을 빌어 홍성과 청양의 진짜 충청도 사람들에게 존경과 부러움의 뜻을 표했습니다. 지역감정 바람에 휘말리지 않은 유일한 동네인 그곳 사람들에게 찬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13일 아침 개표가 거의 완료되어 모든 지역의 당락이 판명되었을 때 제가 아내에게 절절한 음성으로 한 농담이 있지요.
"우리, 홍성으로 이사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역감정 바람에 여지없이 휘말려버린 우리 고장에 대한 슬픔 속에서도, 지역감정 바람을 극복한 동네가 우리 충청도에 단 한 군데만이라도 있다는 사실로 인한 어떤 희망과 기쁨 때문에 한 말이었습니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지난해 6.27 지방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지역감정 바람의 싹쓸이 현상이 결과되었다면 나는 완전히 질식하며 더욱 큰 슬픔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록 나의 성향과 부합하는 알짜 야당 후보는 아니더라도 지역감정 바람과 맞싸운 신한국당 후보를 당선시킨 동네가 하나 생겨났다는 것은, 그리고 그 유일한 동네가 충남의 중심지에 해당하며 유서 깊은 충절의 고장인 홍성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참으로 큰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개표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 고장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버린 대신 과연 충청남도에서 단순하고 유치하고 천박한 지역감정 바람을 멋지게 극복하는 고장이 생겨날까, 있다면 어디일까가 나에겐 초미의 관심사였지요. 그 실낱 같았던 기대와 홍성의 기적 같은 깃발을 확인하던 순간의 놀라운 감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겨운 심정이 됩니다. 나는 홍성과 청양이라는 동네가 충청도의 진짜 자존심을 건져 내었고, 충청도의 진정한 정신과 중심을 지켜 내었다고 단언합니다.
K형, 나는 지난해 6.27 지방선거 때의 지역감정 바람의 싹쓸이 현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공포감으로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영·호남의 고질적인 지역감정 대결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우리 충청도마저도 망국병의 한 축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집단적 몰이성이 이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지요. 대중의 어떤 후진성을 끌어안은 무서운 '대중심리'의 위력과 극치를 또 다시 확인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것을 차단하기 위한 나의 문인으로서의 글을 통한 노력은 그러나 한계가 빤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드러내 놓고 온몸으로 뛰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전면에 나서서 한 야당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K형, 나의 양심을 걸고 말합니다만, 내가 그 야당 후보를 도운 것은 그와의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중요했고 그의 인물 됨됨이와 그가 속한 정당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저버릴 수 없어서였지만, 우리 고장만큼은 천박한 지역감정의 바람을 초극하는 멋진 고장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충청도의 진짜 자존심과 중심을 우리 고장이 앞장서서 세우기를 바라서였습니다. 퇴행적이고 파괴적인 지역감정보다는 앞으로의 민족 통일에 대비하여 '통일 역량'을 쌓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표를 행사함에 있어 미래 지향적인 사고보다는 오늘의 분위기와 기분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에 암담한 슬픔을 느낍니다.
지역감정 바람에 치어 소신과 지조의 설 자리가 없어져버린 현실, 변절과 야합과 기회주의만이 득세할 뿐 우리의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줄 만한 덕목다운 덕목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이 현실이 절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핫바지임을 스스로 인정했을 뿐입니다. 나는 벌써부터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입니다. 단연코 지역감정 바람은 그 어떤 말로도 합리화될 수 없으며, 무지·미망·단순·편견·몰이성·우매 등등의 단어들을 떼놓고는 설명될 수 없는―오랜 군사 독재정권이 유발한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유산일 뿐입니다.
내일에 가서는 진실과 진리가 될 것들을 오늘에는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대중의 속성이지요. 대중이 역사의 눈을 지녀야만 참된 역사를 창조하는 '민중'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역사의 눈을 떠가는 우리 모두의 '민중으로의 삶'을 가슴 깊이 소망합니다. *
(1996년 <태안신문> 5월 13일)
이 글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여러 건의 전화 폭력 때문에 곤욕을 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형태를 조금 바꾸어서 「부럽고도 멋진 고장」이라는 제목으로 <홍성신문>과 <청양신문>에도 이 글을 발표하므로써 홍성 쪽에서도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와서 우리 가족의 노이로제를 증폭시켰지요.
홍성과 청양 선거구에서 유일하게 자민련 후보가 아닌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되었던 것은 속내를 따지자면 사실 온전한 '자민련바람 극복'이 아니었습니다. 홍성, 광천, 청양으로 갈린 '소지역감정' 대결의 결과라는 분석도 있었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의 성격을 놓고 보더라도, 이완구 씨의 당선을 일러 '자민련바람 극복'이라고 한 것은 다소 무리였지 싶습니다.
나는 당시에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충청남·북도에서 단 한 군데, 홍성·청양 선거구에서만 자민련 후보가 낙선을 했다는 사실을 나는 의미롭게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대 평가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실은 미래에 대한 더 깊은 희원 때문에) 그런 글을 썼던 것이지요.
그런데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했던 이완구 씨가 그후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바람에 나의 그 글은 좀더 이상한 꼴이 되고 만 셈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치 철새'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던 이완구 씨는 말을 바꾸어 탄 여세로 2000년의 제16대 총선에서는 손쉽게 재선을 했고,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로 간신히 원내 교섭단체가 된 자민련의 원내총무가 되더니, 최근의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안 결의 때는 대단한 역할을 했지요.
한때 나로 하여금 부실하게나마 '홍성의 명예를 세워 준 사람'으로 파악하게 만들었던 이완구 씨는 햇볕정책의 산파이자 충실한 수행자였던 임동원 통일부 장관을 국회 결의로 해임시키는 일에 있어서 큰 역할을 수행함으로 말미암아 미래 역사에서는 홍성의 '불명예적인 인물'로 존재하게 될 것인즉, 그것을 생각하면 위에 소개한 나의 그 칼럼은 나를 좀더 무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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