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이승에서 연옥을 사신 내 어머니 ⑤

등록 2001.10.10 15:14수정 2001.10.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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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몸 안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 과정을 잠시 소개하고 싶군요. 어떤 분들께는 좋은 참고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내 어머니는 2년 전부터 고혈압 증세로 정기적으로 태안의료원을 다니며 혈압을 체크하고 약을 복용해 왔습니다. 때로는 약이 늘어나기도 했고요. 약이 늘어날 때마다 어머니는 늘어난 약들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숨이 가쁘고 다리에 기운이 없어 2층 옥상도 올라가기가 어렵다고 하시고.

어머니의 그런 호소가 거듭되자 태안의료원의 젊은 의사는 피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혈액 검사를 해본 결과 빈혈 상태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체내에 피가 많이 부족한데, 왜 그리 피가 부족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체내에서 피가 어딘가로 새나간 것 같은데, 피가 새는 이유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다음날 아침을 굶고, 변을 받아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노인네가 아침 한 끼를 굶으시니 더 기운을 잃고 바짝 까라지는 기색이었습니다. 변도 보지 못하고….

그래서 그냥 의료원에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담당 의사인 차주현 2내과장은 빈혈 때문에 더욱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거라며, 그럼 우선 수혈부터 해서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다음 피가 모자라게 된 이유를 알아보는 검사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안의료원에는 피가 없으니 서산의료원에 가서 피주사를 맞고 오라면서 태안의료원의 차 과장이 소견서를 써주었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 헌혈을 제법 많이 해서 한때는 수십 장의 헌혈증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에 인심을 쓰고, 애써 찾아보니 네 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와 어머니는 서산의료원에 가서 간단히 피주사만 맞고 오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날 (9월 5일) 서산의료원엘 갔는데, 김석현 3내과장은 혈액 주사가 금세 끝나는 것도 아니고, 보아하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입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4일 동안 서산의료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당연히 위 내시경 검사와 대장 X레이 투시경 검사를 받았지요.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내 누이동생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내과 의사이셨던 시어머니(소록도에서 다년간 봉사 활동을 하시고, '용신봉사상'을 수상하신 전풍자 여사)를 모시고 살았던 덕분에 의학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빈혈이 심할 경우에는 위암과 대장암을 의심해야 한다는 말도 내게 해주어서, 나는 어머니의 위와 대장 검사를 지켜보면서 바짝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위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김석현 과장이 "노인네가 연세에 비해서 위장이 참 깨끗하시군요"라는 말을 해서, 노인네의 사기가 한껏 오르기도 했지요.

그런데 대장이 문제였습니다. X레이 투시경 검사 결과는 대단히 비관적이었습니다. 검게 찍힌 부분이 꽤 컸습니다. 그 부분이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고, 조건이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김석현 과장은 내 어머니의 연세와 쇠약한 모습에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계시는 성모병원 쪽으로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으나 서울로 갈지 대전으로 갈지 이내 결정을 못하다가 막내동생이 대전에서 살고 있는 점, 최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이신 경갑룡 주교님과 류봉운 노인 신부님이 대전성모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것 등에 연유하여 대전으로 방향을 잡았지요.

9월 11일 대전성모병원의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이강문 교수는 내가 서산의료원에서 가지고 온 X레이 투시경 사진의 검게 찍힌 부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이내 사진을 돌려 주고.

입원하지 않고 외래 진료 형식으로 12일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고 13일 CT촬영을 했지요. 여러 번의 X레이 촬영과 채혈 주사, 대장 내시경 검사를 위한 금식을 하며 4L의 코리티액을 마시는 일도 노인네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CT촬영도 쉬운 일이 아니고….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 맹장 위쪽으로 소장과 연결되는 부위의 암세포가 확실하게 포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 생긴 작은 돌기(선종)도 포착되고.

13일 일단 집에 왔다가 18일 다시 대전성모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참으로 착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몸 안에 암세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확실하였습니다. 그 암세포의 현재 진행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술이 가능한지의 여부도 전문의 이강문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병세가, 그 암세포가 수술 가능한 상태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암세포는 물론이고 어머니의 심폐기능 등 종합적인 건강 상태가 수술 가능한 조건이기를... 만약에 수술 시기가 늦었다거나, 다른 요인들이 결부되어 수술이 어렵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생각하면 참으로 암담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수술 조건만 된다면 어머니를 다시 수술대 위에 눕힐 결심이었습니다. 며칠 전 검사들의 결과가 좋게 나와서 수술 조건이 된다고만 한다면 즉시 입원을 하려고 입원 준비까지 해 가지고 대전엘 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검사 결과에 따라서는 (큰 병이 아니라는 결론에 따라) 입원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잔뜩 머금고 있는 기색이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배가 아픈 것도 아니고, 세 끼 식사도 잘 하시고, 하루 한 번씩 배변도 정상적으로 하는 사실을 어머니는 강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대를 잘 느끼는 나로서는 더욱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지레 수술을 포기하고, 어머니께는 암이라는 것을 계속 감추고, 신진대사 기능이 둔화된 노인에게서는 암세포의 진행도 더디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를 걸고 그냥 저냥 살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몇 번이나 가슴속에 퍼담고 퍼내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머니를 속이는 짓이었습니다. 수술 시기를 완전히 놓쳐버리는 짓이 될지도 몰랐습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 전문의 이강문 교수는 암세포가 많이 커졌고 장 안의 공간이 좁아져서 내시경의 통과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마침내 장의 공간이 막혀버린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나는 수술 쪽으로 재차 마음을 굳히면서 제발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기를 다시 빌었습니다. 제발 수술 시기가 지난 것이 아니기를…. 어머니의 종합적인 건강 상태도 수술 조건이 되고, 수술을 하면 완치될 수 있는 것이기를….

소화기내과 전문의 이강문 교수는 컴퓨터 안에 들어 있는 CT촬영 판독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 수술 조건이 된다고 했습니다. 수술이 최선의 치료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어머니는 질리는 기색이었습니다.

"나 수술 안할래요. 수술하지 않고 이대로 그냥 저냥 살다가 죽을래요."
어머니의 음성은 너무도 간절하였습니다. 이강문 교수를 대신하여 내가 어머니를 설득하였습니다.

"어머니, 수술을 안하면 어머니나 나나 불안해서 못 살아요. 어머니의 몸에 심각한 병이 있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살아요. 그저 눈 딱 감고 이번 한 번만 더 고생을 하세요. 이번 한 번만 더 고생을 하시면 안심하고 살 수 있고, 이제부터는 피가 새나가지도 않고 몸에 충분히 차 있게 되니까 기력도 좋아져요.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시더라도 안심하고 좋은 기력으로 사셔야지요. 그러니 마음을 크게 가지세요."

어머니는 내 말에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습니다.
"또 한번 죽을 고비를 넘어야겄구먼."
나는 가슴이 에이는 듯 아팠습니다.

입원실이 꽉 차 있어서 오후 4시경에서야 내과 병동인 5층의 3인 입원실인 512호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9월초 태안의료원에서 빈혈 진단을 받은 날부터 모든 진행 상황을 여러 명의 동생들과 조카들에게 지속적으로 메일을 통해 알려 주곤 했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누이동생 하나는 그것을 일러 오라버니의 '난중일기'라고 했습니다. 그 난중일기 중에서 9월 20일 열세 번째로 보낸 메일의 내용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제목 : 한가지 해결
보낸일자 : 2001년 9월 20일 목요일 오후 9시 20분 41초 GMT+0900

†. 사랑·평화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모두에게

오늘 한가지 문제를 해결했네.
오전에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고, 관장을 두 번 한 다음 직장의 작은 '선종'을 도려내는 시술이 있었네.

오늘의 복부 초음파 검사도 어제의 심기능 검사 만큼 시간도 20분 정도 걸리고, 아주 세밀하게 하는 것 같더군.

복부 초음파 감사는 CT촬영한 모든 장기 사진들을 모니터에 올려놓고 차례로 이동을 하면서 하는데, 혹 CT에 잡히지 않은 이물질 같은 것이 체내에 없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 아닌가 싶네.

관장을 한 번 한 후 초음파 검사를 하고, 관장을 또 한 번 한 후(그래서 어머니는 화장실을 도합 4차례 다녀오신 후) 내시경실로 가서 직장의 선종 제거 시술을 받았네. 환자도 누워서 화면에 나타나는 시술 장면을 모두 볼 수가 있었고….

직장에 생긴 선종(떼어낸 것을 보니 콩알만하더군)을 동그랗게 부풀려놓고, 밑 부분을 올가미로 묶고, 전기칼을 집어넣어서 싹둑 잘라내는 시술인데, 나는 시술 후에 네 가지 사진을 볼 수 있었네. 선종의 원 모습, 부풀려놓은 모습, 잘라내는 장면, 선종이 제거된 말끔한 모습…. 어머니 말에 의하면 종양 주위에 있던 여러 개의 검은 점들도 모두 긁어냈다는군.

20분 정도 걸린 시술을 마치고 났을 때 시술을 한 소화기내과 전문의 이강문 교수와 간호사들이 어머니께, "할머니, 용케 참 잘 참으시네요. 신음 한번 내시지 않고…"하니, 어머니가,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님들이 내 병을 고쳐 주시려고 이렇게 애들을 쓰시는데, 내가 어떻게 아프다고 할 수가 있대요"하셔서 모두 기분 좋게 웃었고….

그 시술 때문에 아침을 금식했던 어머니는 점심을 맛있게 잘 잡수셨네.
그 시술 이후로 오늘 오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내일도 특별한 일은 없을 거라고 했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저녁 식사 시중까지 들어드리고, 퇴근길에 들른 막내 부부와 함께 일찍 막내네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네.

그리고 내일은 태안에 갔다가 주일 오후에 돌아오기로 했네. 내일 저녁 미사 후의 성가 연습에도 참석하고, 토요일 오후에는 아버님 묘소 벌초를 하고, 주일 새벽에 해미 성지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열다섯 집에 나누어주고,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점심 식사 후에 곧바로 대전으로 돌아올 예정이네.

토요일 오후의 아버님 묘소 벌초 일은 동생도 함께 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출근을 하게 되면 나 혼자 해야겠지. 매년처럼 아버님 묘소만 하는 게 아니고 여러 동을 도맡아 봉사를 하자면 꽤 큰 작업이 되겠지만….

어머니의 직장에 생겼던 작은 종양을 제거하는 '오픈 게임'은 잘 끝났고, 이제 '메인 게임'이 남았네. 그 일도 잘 되어야 할 텐데….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잘 돌보아주시리라고 믿네.

2001년 9월 20일
대전 막내네 집에서 어머니의 큰아들 적음


24일 어머니는 외과 병동인 9층의 913호실로 입원실을 옮겼지요. 이미 21일부터 일반외과 김지연 교수팀이 어머니를 관리하기 시작한 터였습니다. 25일(화요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고…. 주치의 김지연 교수는 20일 저녁 무렵 처음 회진을 왔을 때 내게 수술 날짜를 알려 주면서 어머니의 대장암이 초기는 지난 상태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수술 전의 '장 청소'를 위해 이틀 동안은 약간의 미음만을 드셨고, 수술 전 날인 월요일에는 약간의 물만 마셨습니다.

수술 전 날 저녁 어머니의 어깨 혈관에 다용도 주사기가 삽입되었고, 수술 날 아침에는 소변줄이 채어졌고 코에도 산소줄과 약물줄이 넣어졌습니다.

그리고 25일 오전 8시 30분 어머니는 이동 침대 위에 누워 2층의 수술실로 갔습니다. 1988년과 92년에 이어 어머니는 도합 네 번째 수술실로 들어가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가고 수술실 문이 닫힌 순간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나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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