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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년 시절에 제법 기발한 착상으로 소설 하나를 쓰다가 중도에서 그만둔 것이 있다. 얼마 전에 원고 궤짝 속에서 고등학생 시절의 공책들을 꺼내어 살펴본 일이 있는데, 그 소설 역시 잉크가 거의 날아가버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공책의 장수와 한 장의 글자수를 헤아려 대충 계산을 해 보니 원고지로 200매쯤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흐릿하게 남아 있는 삼십 몇 년 전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보니, 그 소설을 중도에서 그만둔 것은 소재 자체가 고등학생으로서는 너무 벅찬 것인 데다가 이야기가 자꾸만 넓게 벌어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소설을 중도에서 그만두었을지라도, 그 소설의 소재는 삼십여 년의 세월과 상관없이 내 기억의 한 켠에 계속 저장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 소설 소재의 골자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리 나라는 지금 알게 모르게 우리의 언어와 얼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머지 않아 미국의 문화 식민지가 되고, 언어 속국이 되고, 그리하여 언제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도 포기하고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게 되고 말 것이다.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자는 안을 놓고 국회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그것이 마침내는 국민투표에 붙여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결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모든 국민이 영어를 사용하는 현실 사정에 연유하여 미국의 주로 편입하자는 안에 국민 절대 다수가 찬성을 하게 된다.
언어에서부터 민족의 고유성이 사라지고 마침내는 나라까지 없어지게 되는 상황을 그리려는 소설이니, 생각하면 너무 기발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너무 거창하고도 엄청난 이야기다. 그런 소재를 어떻게 고등학생이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가 있을 것인가. 중도에서 포기를 한 것은 당연지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200매 정도까지 끌고 나갔으니….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그런 소재를 얻게 된 것은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영어를 모르고서는 사회에서 제대로 행세도 할 수 없고 대접도 받을 수 없다. 이제는 우리 생활에 국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영어다. 언젠가는 영어가 국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영어다. 이 말을 명심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속에서 반감이 솟구쳤지만, 그것은 곧 왠지 모를 슬픔으로 변해 버려서 그저 목울대가 아려오는 느낌만 커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조석현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 하나가 뇌리에 떠올렸다. 후에 생각한 것이지만 일제 때 소년 시절을 사신 조 선생님은 일제에 대한 반감도 컸던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일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 주고, 민족 주체성을 일깨우는 말도 많이 해주었다. 그러던 선생님이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우리말을 못하게 하고 일본말만 하도록 했는데, 일본놈들이 왜 그런지 아니? 일본놈들이 무조건적으로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한 게 아냐. 걔들은 그런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런 거야. 또 무조건적으로 그런 확신을 가진 것도 아냐. 걔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을 깊이 연구했어. 어떤 면으로는 끈기가 있고 반항적인 기질도 있지만, 전체 국민을 놓고 볼 때는 대세(이 '대세'라는 말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을 하고)에 약한 민족이라는 것을 안 거야. 그래서 그런 정책을 밀어붙이면, 크게 잡아 오십 년만 잘 시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을 한 거야. 그래갖구 그런 정책을 시행했던 거라구.
미국과의 전쟁에 져서 일본놈들이 우리 땅에서 떠나면서 가장 아쉬워한 것이 뭔지 아니? 이십 년, 아니, 십 년만 더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는 일을 했다면 조선 사람들을 모두 일본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일본놈들은 언젠가는 우리 땅에 다시 오겠다고 했어. 그때는 예전처럼 무력으로 쳐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어. 우리 나라를 자기네들의 문화 식민지로 만들어서 우리를 계속 지배하겠다는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일본놈들한테 또 지배를 당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하고, 특히 국어 공부를 잘해야 돼."
오늘날에도 교단에서 이런 가르침을 하는 선생님들이 있을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흔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에 어느 교사가 거의 일상적으로 미국의 문화 식민지, 언어 속국으로 가고 있는 현상을 개탄하며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영어보다 국어를 더 사랑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그가 과연 무사할까? 그것은 오늘날의 김대중 정권의 영어 제일주의 교육 정책과도 어긋나는 행위일 것이다.
나로서는 초등학교 시절 조석현 담임 선생님의 그런 교육 때문에 한동안은 미국보다는 일본을 더 많이 의식하며 살았다. 일본의 문화 식민지화를 경계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과는 달리 우리는 어느 사이 미국의 문화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언어 속국의 길도 훤해진 상황이 되었다.
나는 1988년 10월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우리 나라 원수로는 처음으로 연설을 했던 노태우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 노태우 씨는 유엔 총회에서 하게 될 연설을 영어로 할 것이냐, 우리말로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도 좀 했던 듯싶고, 주변에서 설왕설래도 많았다. 언론에서 벌어진 갑론을박도 팽팽했다. 그러나 노태우 씨는 끝내 영어를 선택했다.
나는 유엔 총회에서의 노태우 씨의 영어 연설 보도를 접하면서 한량없는 안타까움과 비애를 느꼈다. 그들이 주장하는 영어 연설의 실리는 과연 무엇일까? 깊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노태우 씨의 영어 연설을 듣는 수많은 외국인들 중에서 자국의 언어에 대한 자긍심―민족 자존심을 챙기지 못하는 한국 대통령의 '영어 실력 자랑'을 안타깝게 여기고 연민을 느낀 사람을 없었을까? 그리고 자국의 언어를 저버린 그를 멸시의 눈으로 본 사람은 없었을까? 연설이란 상대방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김종필 씨가 이른바 공동정권의 국무총리 시절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때 일본 중의원에서 일본어로 연설을 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과 만나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자신의 일본어 향수, 더 나아가 일제 식민지 시절의 향수를 유감 없이 발휘한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장쩌민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식적인 연설은 물론이고 어떤 자리에서도 영어를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은 사실도 잘 알고 있고, 중국 주룽지 총리 역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일본어를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은 사실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그런 태도에서 크고 높은 자존심의 실체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그냥 관련 단체들에서나 기념을 하고 넘어가는 보통의 기념일뿐이다. 다시 말해 국경일이 아닌 것이다.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공휴일'로 정해졌던 한글날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공휴일 축소 조정 시책에 따라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단순히 공휴일 축소 조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말과 문화의 엄청난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또 한번 심대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며, 그들 집권자들의 천박한 의식 수준을 상징적으로 예시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노태우 씨가 유엔 총회에서 우리말로 연설을 할 정도로 모국어에 대한 긍지와 민족에 대한 자존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한글날을 그렇게 쉽게 공휴일에서 제외할 수 있었을까?
나는 1991년부터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정부 발표를 듣는 순간 마치 우리말의 조종을 예고하는 소리를 듣는 슬픈 기분이었다.
나는 국회의원들이 오늘도 완강하게 고집하는, 오로지 한자만으로 되어 있는 명패들을 보면서 한가지 의문에 사로잡히곤 한다. 저 국회의원 명패들이 언제쯤 한글로 바뀌게 될까 하는 의문? 천만이다. 저 한자 명패들이 언제쯤 영문으로 바뀌게 될까 하는 의문이다. 실은 온전한 의문도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국회 의사당에 영문 명패가 등장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명패의 주인들은 머지않아 영어를 한국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과 표결을 벌일 것이며, 마침내는 우리 나라를 미국의 한 주로 편입시키는 문제도 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사대주의의 화신인 조선일보가 가장 앞장서서 영어 공용어 채택을 위한 국회 결의를 적극 주장하고, 우리 나라를 미국의 한 주로 편입하자는 안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나는 우리의 방송에서 영어의 난무를 보면서, 화면 아래에 나오곤 하는 한글 자막이 언제쯤 영문으로 바뀌게 될까 하는 의문도 갖는다. 시기에 대한 의문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영어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품들과 거리의 간판들을 보면서 언제쯤 그 영어 이름들이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표기될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역시 시기에 대한 의문일 뿐이다.
나는 국제화 정보화 시대를 강조하면서 영어 대세론을 주장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유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 만큼은 민족 자존심에 기반하는 모국어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영어 대세론을 너무 심하게 주장한다. 그 문제에 관해서 대통령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 대통령이 말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우리 나라는 영어로 뒤덮이게 되어 있다. 그런 판에 대통령이 자꾸만 앞에 나서서 영어 대세론을 주장해대니 그 말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눈덩이처럼 커져서 온 국민을 단시간내 미국인으로 만들려는 온갖 수작들이 난리 법석을 떨게 되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 대해 엄청난 테러를 자행한 아랍인들의 그 가공할 테러리즘까지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의 오만방자한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이슬람 문명권의 자존심에 대해서는 찬탄의 눈으로 보고 있다. 아랍권의 지도자들은 유엔 총회에서도 올림픽에서도 그들의 고유 의상을 애용한다. 언제 어디서든 그들이 고유 의상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들의 고유 의상은 그대로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심의 탁월한 반영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래로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이 외국 방문길에 우리의 고유 의상을 입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우리 나라에서 외국 손님을 맞을 때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한복을 입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내 기억에는 없다.
이것은 단순한 의상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외국인에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긍지를 표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참으로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외교 통상과 군사 문제 등에서, 특히 농업 관련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오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볼 때마다 한가지 묘한 의문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를 멸시하는 것에는 자신들의 우월한 힘에 대한 과신만이 있는 것일까? 그것에 어쩌면 혹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사대주의 근성에 대한 경멸의 시각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시시각각 미국의 문화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고 언어의 속국이 되어 가고 있으며, 머지 않아 자신들의 언어마저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민족, 사대주의와 대세론에 약한 우리의 속성을 그들은 꿰뚫어볼 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서 우리 한국인을 모든 면에서 열등하게 보고 있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다.
나는 한국땅에서 살고 있는 중국 화교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다. 자기들끼리는 반드시 중국말만을 사용하여 3세, 4세까지도 모국어를 잃지 않고 있는 그들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외국 교민들의 2세나 3세들 중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요즘에는 좀더 고등학생 시절에 쓰다가 만 그 소설 소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은 삼십여 년 동안 그 소재를 끌어안고 살아온 셈임을 다시 강조한다.
몇번 다시 작업을 시도해 볼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막상 그러지 못한 것은 반드시 결부될 수밖에 없는 남북 통일 문제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우리 나라가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는 상황까지 그리기로 한다면, 남북 통일 관련 사항 묘사가 선행되어야 할 터인데, 통일이 안된 것으로 할 수도 없고, 통일 이후라고 한다면 북쪽 주민들의 태도까지 너무 쉽게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셈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우려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남한과는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는 북한에 대해서는 왠지 미련을 접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로 하여금 더욱 그 작업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아무리 풍자와 해학을 섞어 우화적으로 쓴다 해도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 될 수밖에 없을 터 ―우울한 예언을 하고 싶지가 않기 까닭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 예언이 언제가는 맞게 되든, 영원히 빗나가게 되든, 그런 예언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555번째 맞는 한글날인 오늘, 절로 서글퍼지는 심회 때문에 너무 이상한 글을 쓴 것 같다. 내가 필요 이상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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