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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내 생활은 거의 인터넷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하고, 실속은 없으나마 전업작가 시늉을 하며 사는 고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은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 너무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처럼 인터넷에 빠져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컴퓨터를 전혀 모르고 살았던 몇 년 전의 내 모습을 상기하면 좀 우스워지기도 하지만, 왠지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나는 1994년까지는 육필과 원고지를 고수했지요. 원고지를 앞에 놓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를 않았고, 생전 그럴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95년 1월 1일부터 컴퓨터가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9년 1월부터 드디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더 나이 먹기 전에 나도 능률과 효율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는 묘한 절박감 같은 게 작용했던 듯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컴퓨터 앞에 앉지 않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한번 시험 삼아서 컴퓨터 앞을 떠나 원고지를 펴놓고 앉아보았더니 요상하게도 글이 나오지를 않더군요. 원고지에 미안하고도 무안한 심정이었습니다.
지금도 원고지와 잉크 펜을 고수하신다는 김주영 선생 같은 이를 생각하면 역시 대가는 다르다는 생각도 들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감도 있습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확실히 능률적이고 힘이 훨씬 덜 들지만, 아무래도 '비장감'은 떨어지는 듯싶습니다. 나는 원고지 앞에 앉았을 때의 그 둔중하던 비장감이 그립습니다. 때로는 황량함이요 막막함이기도 하던 그 비장감이…. 다시는 원고지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야릇한 절망감 때문에 그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인터넷을 하게 된 것은 지난해 봄부터입니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내 홈페이지를 만들어 준 것이 계기였지요. 그때까지는 이 메일 주소도 갖지 않았지요. 내 개인 홈피를 운영하다보니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처음에는 열 개 정도의 '주막'을 지어서 내 홈페이지를 인터넷 세상에 띄웠지만, 일년 동안 꾸준히 신축 공사를 해서 지금은 오십 개에 이르는 주막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주막을 계속 짓는 과정에서 지난 3월엔 30번째로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의 주막을 짓게 되었지요. 이 주막에는 3개의 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두 개의 방에는 내가 지난 90년대 초부터 여러 지역신문 등에 썼던 <조선일보> 관련 글들을 모두 게시해 놓았지요. 그러니까 나는, 내 개인 홈피의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의 주막이야 금년 3월에 지었지만 그 방들에 들어 있는 글들을 놓고 볼 때 저 90년대 초부터 '안티조선 운동'을 시작했던 셈이지요.
나는 내 개인 홈피에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의 주막을 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난 5월부터 안티조선 운동 사이트인 <우리모두>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글을 썼습니다. 어떤 분이 '독자 의견'란에 경탄조로 하신 말처럼 가히 '폭발적으로' 글을 썼지 싶습니다. '안티조선' 또는 '언론개혁'이 주제이거나 그것들과 관련되는 글들이 벌써 40편이 넘었지 싶습니다.
거의 <우리모두>의 '초기화면'에 제목이 뽑혀져 오른 글들 중에서 상당수는 '창비자게'에도 올랐는데, 또 그중에서 일부는 '창비자게'의 '추천글방'에 오르기도 했지요.
처음엔 <우리모두>에만 참여했던 내가 '창비' '정보동호회' '인물과 사상' 등등의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게 된 것은, 누군지 모를 분들이 <우리모두>에 오른 내 글들을 퍼다가 그 게시판들에다 올려놓은 것을 알게 된 탓이지요. 앞으로도 그런 일이 종종 생길 것 같아서, 누군지 모를 그분들께 다시 수고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직접 회원으로 참여해서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홈 게시판에도 글을 올리는 것은 내가 그 단체들의 회원이기 까닭에 그런 쪽으로도 '회원 구실'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이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고정 코너인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가 첫선을 보인 때는 지난 7월 중순입니다. 자유게시판에 오른 내 글을 본 기자들의 알선에 의해 실무진의 제의를 받게 된 것인데, 아주 일찌감치 내 고정 코너가 마련이 됐던 것이지요.
그런데 내 글들이 내가 직접 올리는 사이트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누군지 모를 분들에 의해 계속 다른 여러 사이트로 퍼져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게시판에서 보았다는 분의 전화도 오고, 소설가 이문열 씨의 홈에서 내 글을 읽었다며 내 홈에 와서 인사말을 남기는 분들도 있고, <뉴스타운>의 운영자로부터 자유게시판의 내 글을 메인 화면에 올리고 싶다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요.
그밖에도 내 글이 한나라당과 <한겨레>의 자게에도 올랐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마이뉴스>의 고정 코너 생성 이후에 알게 된 사이트들에는 내가 직접 글을 올리는 일을 삼가고 있습니다. 내 글이 올라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대부분은 그 홈을 구경도 하지 않았지요.
그러던 내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과 부산교구 홈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한 때는 지난 8월부터입니다. 물론 신앙 관련 글들만 올린 게 아니지요. 지역감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글을 쓰게 되면서 그 글을 우선 집중적으로 올렸습니다. 지역감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앞장을 서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지요.
우리 나라의 지역감정, 또는 지역주의는 오늘의 정치 상황과도 밀접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구도에 저항하기 위한 글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릇 글이란, 그 어떤 논법도 상대성이 존재함을 나는 잘 압니다. 내가 영생에 대한 희원을 걸고 열심히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조차 반대파가 있었고, 그 반대파에 의해 예수님이 죽었음을 나는 잘 압니다. 예수님의 반대파는 예수님 시대로부터 지금에도 완강하게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리라는 것 또한 나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궁극적인 정의는 물론 아니지만, 예수님 시대의 상황을 결부시킨다면 예수님은 정치범이고 국사범이었지요. 바리사이 기득권층의 가치관과 이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개혁주의자이고 대중선동가였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반대파―기득권층과의 대립이 불가피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반대파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늘 상기하면서 나는 내 가치관들이 하나의 신념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해도 내 관점이나 논법들에 대한 비판, 또는 반대 의견들을 겸허하게 경청합니다. 어떤 차원의 의견이라도 그런 시각이나 생각이 있을 수 있는 여지를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처음부터 막바로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한 얘깁니다만 내가 내 글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의견들도 전혀 버리지 않고 알뜰히 정리하여 개인 홈피 게시판에 올려놓는 것은 스스로 그 참고적 가치를 살피려는 것이고, 다른 이들의 판단에 비교 관점이 가능한 자료를 제공하려는 것이지요.
이 얘기는 그동안 내 글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 의견도 많았고,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이 오십이 훌렁 넘은 사람으로서는 섭섭함과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무례하고 포악한 반응도 더러 접하지만, 나는 관용하려고 애를 쓰며, 내 글을 읽어주기만이라도 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천주교 홈 사이트들에서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당하는 난폭한 언사들 앞에서는 큰 슬픔을 갖지 않을 수 없더군요. 비논리적이며 표피적이고 일방적인 관점도 문제지만, 악의에 찬 방만한 폭언들은 아찔한 절망감과 신앙에 대한 회의마저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난폭한 언사들 안에도 어김없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은 신앙, 평화, 형제, 사랑 등등의 단어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이라는 말로 신앙을 훼손하고, 평화의 이름으로 평화를 파괴하며,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능멸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 그런 상황에서는 화해라는 말에도 진실이 실리기가 어렵습니다. 한 손은 여전히 주먹을 불끈 쥔 채 다른 한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하는 현상도 생기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의 심층을 나는 잘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지역감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역감정 문제를 심층적으로 해부하는 작업이 오히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조장하는 행위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나 위험성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역감정 문제를 아예 제기하지 말라는 의견이라든가, 지역감정에 관한 문제 제기는 그것을 완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키는 백해 무익한 것이라는 논법에도 일리가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암세포를 덮어서 그대로 온존시키자는 논법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반성적 성찰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그런 논법의 심층 또한 나는 잘 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역감정은 지역감정 자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고, 언론 상황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득권층 또는 수구세력의 이해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그것은 더욱 심화되는 양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감정, 또는 지역주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해부하고 극복의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나의 고뇌 어린 노력이 그러나 전체적으로 완벽하지 못했음을 나는 인정합니다. 충분한 고려가 선행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최근에 발표한 '지역감정―무지와 미망의 늪'에 대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의 일부 논리 정연한 비판들에 대해서는 (이해 부족과 곡해의 여지가 전혀 없지 않음에도) 감사와 경의를 표해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 젊은 엄마는 왜 아이들 냄새를 싫어할까?'라는 글에 대해 좀더 반성적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상도 말씨를 쓰는 '젊은 엄마'에 대한 묘사가 일부 영남인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은 내 실책임을 인정합니다. '창비자게'의 '추천 글방'에도 오른 '언론개혁 운동의 아름다운 승화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지역감정을 조금이라도 자극할 수 있는 말은 절대 쓰지 말자고 했던 주장을 상기하면 내 '실수'를 좀더 뼈아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젊은 엄마는…'를 읽고 심기가 불편하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그 글을 쓸 당시 그 '젊은 엄마'의 말투를 표준어로 바꾸어볼까도 잠시 생각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것은 내 귀에 생생한 기억으로부터 방해를 받은 탓도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리라는 안이한 생각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좀더 신중하지 못했던 안이함을 깊이 자각하고 후회하기에 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에서 접했던 김병화 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따라서 지요하 님의 글은 님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 채 마음을 꼭꼭 닫고 있는 사람을 경상도 사람으로 지적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젊은 엄마의 행동의 원인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몰인정함'으로 몰아붙인 것은 지요하 님 속에 내재된 경상도 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돌출로 받아들여져 님 역시 열린 마음속에 또 하나의 닫힌 마음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장황한 에필로그는 이런 내면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포장에 다름 아니라는 오해를 살 가능성도 있음을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김병화 님 글의 이 대목에서는 내 가슴이 섬뜩해지는 경험도 했습니다. 내 안에 정말 '닫힌 마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지역감정 문제를 해소하는데 있어서는 경상도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평소의 내 지론이 과잉적으로, 또는 굴절적으로 결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내 소망이 자칫 내 가슴에 편견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해서는 나 자신을 변호하거나 위안할 수 있는, 일종의 '등 비빌 언덕'이 있지 싶습니다. 내가 아끼는 단편 중에 '노을엔 들녘이'라는 작품이 있지요. 평론가로부터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도 들었고, KBS의 '라디오 독서실'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이지요. 주인공들은 경상도 사람들입니다. 경상도 말이 아주 아름답고 감칠 맛나게 구사됩니다. 주인공 '조 영감님'과 조 영감님이 나이 육십에 얻은 외아들 대영이 사이에 전개되는 대화는 경상도 말을 참으로 감미롭고 정겹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얻었지요.
아무튼 나는 그 소설과는 정반대 되는 '그 젊은 엄마는…'이라는 글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겸허하게 성찰하며 훗날 그 글을 손볼 기회를 얻게 되면 '제대로 된 글'로 만들 작정입니다. 그런 마음을 다지던 상황에서도,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에서 한 경상도 형제님의 계속적인 언어 폭력적인 시비에 인내를 포기했던 것 역시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지 싶습니다. 나의 대응이 결국 그 형제의 감정을 더욱 촉발시켜서, 여러분의 관련 글들이 게시판을 뒤덮게 할 정도로 사태를 키운 것을 지금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내 글과 처신에 대한 비판의 말씀들을 모두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한 자매님이 '하느님의 자녀'임과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언어의 유희(遊戱)입니다. 글줄이나 쓸 줄 안다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여기 저기 마치 이질 걸린 사람의 주접스런 모습처럼" 운운하신 말에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지만, 그 말씀에도 좋은 뜻이 있음을 살핍니다. 그것이 좀더 전투적인 남성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여성의 발언이라는 사실에, 그리고 그 말이 '사랑'이라는 주제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저리는 듯했지만, 역시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산삼과 다이아몬드를 왜 그리도 귀한 것으로 생각할까요? 그것은 그 물질의 희소성 때문이 아닐까요? 무우밭의 무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지천으로 널린 것이라면 그토록 소중한 것일까요?"
그 자매님의 이 말씀을 늘 내 가슴에 아로새기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무밭'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오늘의 내 삶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오늘은 그저 열심히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의 무밭에 열심히 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내가 심는 무들이 한결같이 푸르고 싱싱한 무가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무를 심고 가꾸는 그 정성과 기술을 열심히 익히다보면 마침내는 인삼도 심고 가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나는 갖습니다. 무밭에서 산삼을 캘 수도 있으리라는 것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긴 해도 희망의 반대편에 있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언론 개혁 운동의 희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인 효과가 지지부진하고, 난험한 산맥 같은 것이 가로놓여 있는 상황이긴 해도, 나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나 사랑보다 지역감정을 우선하고 있는 현상이 아주 많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오늘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서 그런 현상은 더욱 기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에서 서경택 님이 하신 말씀은 한결 의미심장하다고 여겨집니다.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도 그 궤를 같이 한다. 민주당에 거부감을 가질수록 더욱 열심히 조선일보를 구독할 것이다. 단순히 호남사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조선일보의 열렬한 지지자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심층적인 진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단순 가치, 또는 단순 사고에 젖어 사는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크고도 난험한 장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있은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 대변인 권철현이 "호남인들이 단결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공당의 대변인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우리 나라의 현실이고, 그것이 우리 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입니다. 그의 그런 말이 족벌 언론들에 의해 크게 보도되자 특히 '조독마'로 불리는 조선일보 디지털 게시판 같은 데서 연일 "라도 놈들을 몽땅 쓸어버리자" 등의 극언들이 홍수를 이뤘던 것도 우리의 현실입니다.
소위 대가라는 작가 이문열이 부산에 가서 "내 책의 반환운동을 벌이는 사람(부산 사람인 화덕현 씨를 지칭하는 말일 듯함)은 부산 사람이 아닐 것이다(전라도 사람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그것이 대가 이문열의 정신 수준입니다.
언론개혁과 관련하는 글을 쓸 때마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반응이 "우리를 바보로 아나"와 "신문은 독자가 판단한다"입니다. 나는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더욱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신문으로부터 속을 수도 있고, 좌지우지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판단은 자유이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판단은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법입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족벌언론들은 정부의 '언론 탄압'을 강변하며 일시적으로 엄살을 떨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약자도 피해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강자이고, 민주세력 개혁세력 통일세력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가해자입니다. 한나라당의 강세로 말미암아 그들은 더욱 강자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집권당보다 더 강한 상태인 한나라당은 내년 말의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하면서 국민의 포괄적 가치관을 혼돈의 심연으로 몰아넣고서도 반성 한번 하지 않은 그들은 이제는 더욱 반성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미래에 대해 암담함을 느끼면서도, 좀더 다른 차원의 희망도 갖습니다. 한나라당의 득세와 함께 언론개혁이라는 오늘의 명제 앞에서 한나라당과 수구 족벌언론들이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시적 승리가 언론개혁 운동 상황의 '종료'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언론개혁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며 더욱 가열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더 많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에 눈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것을 기대하며 갈망합니다. 그리하여 좀더 뜨거운 마음으로 줄기차게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나의 이런 정성과 노력을 언젠가는 큰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충전'의 계기로 삼으려고 합니다.
오늘도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저 산야의 저녁놀빛은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합니다. 저녁놀빛이 한결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하루 마감 시간의 평화만을 고즈넉하게 포유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먼동을 예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녁놀의 아름다움과 평화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녁놀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침의 먼동도 힘껏 추구하고 사랑해야 함을 압니다. 아침 먼동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저녁놀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제대로 알거나 즐길 수 없습니다.
나는 저녁놀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내일의 먼동을 힘껏 소망하기 위해 내일도 힘차게 백화산을 오를 것입니다. 기도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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