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소설, 대설의 의미와 세시풍속

등록 2001.11.07 18:17수정 2001.11.0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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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공주 갑사에서 가는 가을을 만나고 왔다.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붙들고 싶었지만 자연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갑사 매표소 근처에선 한 부부와 아이가 감을 따는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야기 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신호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입동(立冬)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 번째이며, 올해는 양력 11월 7일이고,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해의 황경이 225도일 때인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을 5일씩 3후(候)를 나누어, 초후(初候)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는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말후(末候)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기 위해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 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는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대가댁 김장은 몇 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점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까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까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또 이 시기에는 추수를 무사히 끝내게 해준데 대해 감사의 고사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외양간 등에 고사 지낸 뒤, 소에게도 주면서 수확의 고마움과 집안이 무사한데 대한 감사를 드린다. 또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으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향약(鄕約: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규약)을 보면 봄가을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그믐날밤에 나이가 드신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다. 논밭 한 뙈기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기꺼이 금품을 내놓았다.

올해의 입동은 공교롭게도 수능시험일과 겹쳤다. 입시한파라 하여 그렇지 않아도 매년 이맘때만 되면 전국이 온통 얼어붙었는데 올해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남은 어떻게 되든지 나만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차가운 마음을 갖게 되어 온 세상에 냉기로 가득 차게 된 결과가 아닐까?

소설(小雪)

24절기의 하나로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양력 11월 22일이나 23일경이다. 해의 황경이 240°에 오는 때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작은 봄)이라고도 불린다.

옛날 사람들은 소설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구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천지가 얼어붙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손돌이 죽은 날이라는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임금이 배를 타고 통진과 강화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왕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들어 그런 것이라고 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다.

그래서 그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하고 지나갈 때 조심한다. 해마다 그날이면 강풍이 불고 날씨가 찬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강화에서는 이날 뱃길을 금한다. 이 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바람(손돌풍,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한다.

소설에는 눈이 적게, 대설에는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첫얼음이 얼며, 첫눈이 오기 때문에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 호박 오가리, 곶감 말리기 등 대대적인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음력 시월은 농사일이 끝나는 달이다. 추수를 끝내고 아무 걱정이 없이 놀 수 있는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 있어 '공달'이라고도 했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방고래 구들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터울하고 외양간에 떼적 치고
우리 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농가월령가의 대목이다.

대설(大雪)

24절기의 스물한 번째로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양력 12월 7, 8일경이다. 해의 황경이 225°에 도달한 때이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고 하지만 꼭 이 시기에 눈이 많이 오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원래 역법의 기준지점인 중국의 화북지방의 기후대로 붙여진 것이어서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옛사람들은 대설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서, 초후(初候)에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낳고, 말후(末候)에는 여주(박과의 한해살이 풀)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편,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된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농가월령가> 중 십일월령에 있는 노래이다.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면 가정에선 콩을 쑤어 온갖 정성을 기울여 메주를 만든다. 잘 씻은 콩을 고온에서 짧은 시간에 익히는데 손으로 비벼보아 뭉그러질 때까지 충분히 익힌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담아 물을 뺀 후 지역에 따라 둥글넓적하게 혹은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메주를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운다. 알맞게 뜨면 짚으로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둔다. 메주를 달 때는 짚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메주를 띄우는 푸른곰팡이의 번식이 왕성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메주를 띄울 때 이불을 덮어주기도 한다. 이 때 짚이 아닌 나이롱끈을 쓴다거나 면이불이 아닌 합성섬유로 된 이불을 쓰면 좋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참고>
함께하는 우리 : www.koreartnet.com/wOOrII/etc/24julki/24julki_21.html 
뿌리넷 : www.poori.net
이야기 한자여행 : www.hanja.pe.kr/8-han/8-han1.htm
디지털한국학 : www.koreandb.net/holiday/heritage/cult_day03.html 
우리가 알아야 할 국경일과 기념일 : myhome.shinbiro.com/~leens84/index.htm
민속대사전,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의 민속, 김성배, 집문당, 1980

덧붙이는 글 <참고>
함께하는 우리 : www.koreartnet.com/wOOrII/etc/24julki/24julki_21.html 
뿌리넷 : www.poori.net
이야기 한자여행 : www.hanja.pe.kr/8-han/8-han1.htm
디지털한국학 : www.koreandb.net/holiday/heritage/cult_day03.html 
우리가 알아야 할 국경일과 기념일 : myhome.shinbiro.com/~leens84/index.htm
민속대사전,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의 민속, 김성배, 집문당,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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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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