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랜드의 또 다른 얼굴

<미국여행기 2> 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하는 세심한 정성

등록 2002.01.03 09:51수정 2002.01.17 11:39
0
원고료로 응원
미국생활 1일주일째다.

"LA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미국적인 곳으로 안내해 주라"는 요구에 매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디즈니랜드로 나를 안내했다. 영화 속에서만 구경해오던 미국식 상업주의의 대표적인 모델로 손꼽히는 디즈니랜드에 나도 가보게 된 것이다.


매형은 9·11테러 이후 "디즈니랜드가 다음 테러의 목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민들 또한 테러 이후 디즈니랜드 방문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많이 없으면 하루에 모든 놀이기구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디즈니랜드 방문을 계획하던 나와 누나부부를 조금 흥분되게 만들었다.

한국보다 하루 늦게 새해를 맞이한 2002년 1월 1일. 전날 롱비치 해변에 있는 'QUEEN MARY호'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구경하느라 새벽녘이 다 되어서 잠이 들었다. 그래도 디즈니랜드인데… 피곤해져 있는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매표소로 다가갔다. 디즈니랜드 측은 매표소에서 계속 줄어드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방문을 높이기 위해 $43하는 입장료를 연 입장료 $99로 유혹(?)하고 있었다. 이틀정도 방문할 사람이라면 차라리 연 입장료를 내고 마음놓고 이용하라는 것이다. "역시 상술이 뛰어나군" 사실 디즈니는 입장료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기념품가게와 음식점들에서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다. 자주 와서 많이 먹고 쓰면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계속인 것이다.

디즈니(Disney)랜드 이데올로기

하얀 생쥐 한 마리로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월트디즈니는 1955년 캘리포니아주 LA도심 근교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공원을 개장했다. 디즈니랜드는 동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 1983년 도쿄, 1992년 파리에 세워진 디즈니랜드와 함께 어린이 자녀를 둔 세계의 모든 가정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환상의 나라이다.


미키마우스와 도날드덕으로 대표되는 월트디즈니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도날드 덕, 구피, 티거 등 월트디즈니에서 만들어내 우리에게도 친숙한 만화캐릭터만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월트디즈니의 깨끗한(?) 이미지가 요즘 들어서는 백인 우월주의, 성차별, 외모 컴플렉스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들로 인해 많이 손상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에서도 상영되었던 월트디즈니의 신작 '진주만'에서는 맹목적 애국주의까지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월트디즈니를 비롯한 미국문화산업이 군국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상업주의 문화권력 매체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는 이러한 디즈니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한 다룬 책<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헨리 지루/ 아침이슬>과 영화<슈랙/드림웍스> 한국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의 디즈니랜드나 백설공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와 같은 애니메이션, 미키마우스·미니마우스·구피·티거 캐릭터에는 순수함을 가장한 상업주의와 오락적 기술만이 남아 어린이들에게 저급한 상업자본주의만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와 'Fastpass'

하지만 디즈니랜드를 둘러싼 여러 비판들과 우려와는 달리, 내가 본 것은 디즈니의 또 다른 얼굴이다. 꿈과 희망의 동산 디즈니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그들만의 노력을 나는 경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말이다.

디즈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서는 두 갈래의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보통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듯이 줄을 서서 입장하는 'standard'통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리 입장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맞춰 입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fastpass'통로이다.

워낙에 넓은 놀이동산이고, 이용객들이 많다 보니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한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작정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제도가 바로 'fastpass'제도이다. 말 그대로 빨리 통과할 수 있는 제도인데, 입장권을 가지고 타고 싶은 놀이기구 앞에 설치되어 있는 각 놀이기구별 입장 fastpass를 한시간 당 하나에 한해서 발급 받을 수 있다.

이런 fastpass를 발급 받지 않고도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다. 디즈니랜드측에서 마련해 놓은 장애인 우대제도 인데, 이것은 단지 놀이기구를 타는 것에 대한 우선 순위만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놀이기구 담당 직원이 직접 가족들을 인솔해서 안내하고, 자신들이 직접 놀이기구에 태워주는 모습은 흔치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각종 공연에서 우선권이 보장되고,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을 위한 전동차도 마련되어 있었다. 건물 곳곳을 휠체어가 쉽게 오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해 놓은 세심함은 단연 돋보였다.

또한 각 놀이기구마다 어느 정도 충격이 주어지는지, 임산부나 노약자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타기에는 적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세세히 적어놓는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총아라는 미국에서, 가장 상업적이다는 디즈니랜드에서, 나는 다소 상업적이지도 자본주의적이지도 않은 장애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들의 겉모습만을 너무 크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화려함과 상업주의로 포장되어 비춰지는 디즈니랜드에, 장애인과 노약자에 대한 배려와 친절이라는 또 다른 디즈니랜드의 모습이 숨쉬고 있는 듯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정선 한 카페 구석에서 발견한 먼지 쌓인 보물 정선 한 카페 구석에서 발견한 먼지 쌓인 보물
  2. 2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 주인의 묘안이 놀랍다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 주인의 묘안이 놀랍다
  3. 3 신입사원 첫 회식... 선배가 데려간 놀라운 장소 신입사원 첫 회식... 선배가 데려간 놀라운 장소
  4. 4 [단독] 구독자 최소 24만, 성착취물 온상 된 '나무위키' 커뮤니티 [단독] 구독자 최소 24만, 성착취물 온상 된 '나무위키' 커뮤니티
  5. 5 뉴욕 뒤집어놓은 한식... 그런데 그 식당은 왜 망했을까 뉴욕 뒤집어놓은 한식... 그런데 그 식당은 왜 망했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