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엉뚱한 9·11 테러분석

<미국여행기 7>

등록 2002.01.18 08:52수정 2002.01.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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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우리 언론의 국제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다. 이는 부시의 일거수 일투족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어버린 것, 우리가 분류하는 '국제정치'에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미국내 정치행위가 중요한 의제로 설정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언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부시가 과자를 먹다가 과자가 목에 걸려 잠시 졸도했다는 이야기마저 국제면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을 정도다. 그래서 그 국제면의 많은 소식들은 미국의 언론에서 나온 이야기들로 종합되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 언론이 보여준 '미국 중심의 편향성'이 비판 받아온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미국정치와 언론에 대한 편향성은 결국 '우리 편, 다른 편'이라는 갈라섬을 은연중에 강조하기까지 이르렀다. 미국이 공격당한 사실만이 9·11테러의 본질이 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공격만이 이슈화되고 부각되는 가운데, 그 현상의 또 다른 희생양인 팔레스타인과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미국에 나와 있으면서 비리사건이 아닌 좀더 다양한 국내소식을 듣고 싶어 LA에서 발행하는 한국신문을 구입해 읽고 있다. 하루 늦은 한국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온통 비리이야기 뿐이고, 국제뉴스는 이곳에서 ABC방송이나 NBC, CNN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미국내용이 주를 이루니 답답한 마음만 더 커질 뿐이었다.

"높은 지적능력"이 요구된다고?

얼마 전 언론에 진짜 자유주의자임를 늘 강조하는 소설가 복거일 씨가 쓴 글을 봤다. 모일간지 '새로운 21세기를 향하여'라는 기획특집에 기고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자유주의의가 대세'라는 글이 그것이다. '세계지식인 지도'라는 다소 과장된 선전이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세계무역센타에 비행기가 부딪쳐 검은 연기로 뿌연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과학적 지식과 9·11테러가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기도 했다.

복거일 씨는 이 글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식이라는 것이 본래 존재하는 지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 개인들과 사회를 움직이는데 결정하는데 드러난 지식보다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의 모든 지적 활동은 과학·종교·예술적 지식으로 나뉘는데, 오직 과학적 지식만이 끊임없이 진화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지만 이런 과학적 지식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높은 지적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애매하고 습득에 시간이 걸리는 과학적 지식과 무척 어렵고 불투명한 사회과학지식보다는 훨씬 간단하고 명쾌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현대 문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복거일 씨는 "하이에크(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문명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그것을 파괴하려는 충동을 느낀다"며 '9·11테러 사건'을 자신의 논거를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9·11테러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미국의 '9·11테러 참사'는 그런 파괴적 충동이 얼마나 끔찍한 일로 구체화 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그 참사는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세계를 설명하는 종교적 지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문명에 대해 극도의 증오감을 품고 그 문명을 상징하는 나라의 상징적 장소들을 파괴한 사건이다."

"여객기를 납치해서 빌딩을 폭파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우디 중산층 지식인들로 회교의 근본주의 종파를 믿었다. 그 테러리스트들은 근년의 두드러진 테러집단들인 '적군파'와 일본의 '옴진리교파'와 아주 비슷한 풍토의 소산이다."

복거일식 '가짜 자유주의의'

복거일 씨는 언론에 자신을 글을 기고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개념정리를 명확하게 해봐야겠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개념정리에 있어서 기본은 "정치와 사상에 관한 개인의 자유는 그 어떤 가치로부터도 침해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는 크게 절대적 자유주의와 상대적 자유주의가 있다.

전자는 그 어떤 타인의 간섭으로부터도 개인의 가치는 침해당할 수 없다는 것이고, 후자는 공동체적 합의에 따라 마련된 틀 내에서의 개인의 가치가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어떤 것일까?

복거일 씨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늘 '하이에크'에게서 끄집어 온다. 위의 글에서도 복거일 씨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라는 하이에크의 경력을 자랑하며, 별로 유사성도 없어 보이는 그의 주장을 9·11테러를 분석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 자신이 "눈에 보이는 지식이 전부가 아님"을 전제로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이 보는 9·11테러의 현상의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진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물론 그럴 것이 이 영역은 복거일이 말하는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난 '신념의 문제'라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거일은 9·11테러를 "종교적 지식을 신봉하는 사람이 현대문명을 이해하지 못한 증오감에서 저지른 것"으로 분석한다. 현대 문명이 주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저지른 문명파괴 행위라는 것이다. 복거일은 '현대문명'이라고 여기에서 표현했지만, 그의 주장에 더 신빙성을 얻으려면 차라리 문명을 '미국'으로 바꿨어야 옳다.

또한 복거일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빌딩을 파괴한 사람은 사우디의 중산층 지식인들로 회교의 근본주의 종파를 믿었다"고 주장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정부와 유태계 미국언론에서 발표한 것이 만약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면, 복거일의 주장은 그 주장의 전제 근거부터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체도 없는 대상의 허구를 만들어 공격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복거일은 자신이 보는 현실적 지식이 한낱 미국에서 쓰여지고, 혹시라도 조작될 수도 있는 현상적 지식이라는 것을 왜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실제로 9·11테러 당시 미국의 CNN 방송에서 내보낸 일부 자료가 조작된 것임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지식에 의해서 개인과 사회의 움직임이 결정된다"고 글 서두에 적어두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주장마저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비판을 하는 이들에게 복거일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주장은 현대 문명에 대한 반감이 아주 널리 퍼져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복거일은 현대문명과 미국을 혼돈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현대문명과 미국을 동일시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이 과학적 지식을 보여주는 나라고, 이것에 반대하면 곧 복잡하고 애매한 과학지식을 거부하고 직관에 의거해 현대문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인가?

무지와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

가져다 붙이면 자유주의다. 이제 그의 영역은 자유주의로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 줄어들고 좀더 너그러운 사회"를 꿈꾸는 영역으로까지 넓어졌다. 그는 "경제분야에서는 적어도 전체주의가 논파되었고, 자유주의는 거의 도전 받지 않는 이념이 되었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자유주의 세력이 크지 않다"며 "특히 유전자 조작을 둘러싸고 전체주의와 거세게 겨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거일식 분석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을 거부하고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행위의 전체주의적 태도다.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자신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도 결국은 검증을 거부하는 反과학적인 모습임을 복거일은 애써 감춘다.

과연 그런가? 규칙과 합의가 없는 상태의 '사회 공동체'가 과연 '시장'의 논리대로 무난하게 처리될 수 있을까? 그 합의의 과정의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 무지의 소치는 아닐 것이다. 복거일이 늘 강조하듯이 이것은 분명 가치의 영역이다. '좀더 나은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에서 나온 과학의 영역도 결국 가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생명복제의 영역이 특정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한 과학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존재할 수 있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어떤 것인가? 결국 경제적 이윤과 과학적 맹신만을 위한 가치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짜 자유주의자 복거일이 원하는 '무지와 편견이 줄어든 너그러운 사회'는 바로 미국 중심적 가치, 시장의 맹신적 가치의 모습을 과학적 지식으로 포장한 사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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