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으로 찾아오는 봄

환한 봄바람이 분다

등록 2002.02.18 11:31수정 2002.02.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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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끝내
응고된 기다림을 풀어
급강하하는 꿈으로
환원하다.


이 구절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써봤던 시 '봄이 흐르는 비'의 일부이다. 어쩌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은 봄비와 함께 꿈을 가지고 오는지도 모른다. 그 봄비가 겨우내 얼었던 얼음장을 녹이고, 새봄을 단장하는 전초병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봄비를 기다려 본다. 봄가뭄이 심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내일(2. 19.)이 우수인데 봄비가 오셨으면 좋겠다.


벌써 저 산모퉁이에는 마파람(남풍:南風)이 향긋한 봄내음을 안고 달려오고 있을까? 동네 아이들은 양지쪽에 앉아 햇볕을 쪼이며, 목을 빼고 봄을 기다린다. 봄의 절기인 우수, 경칩의 의미와 그 세시풍속을 알아보자.

우수(雨水 / 2월 19일)

우수는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는 두 번째의 절기이다. 해가 황경 330°에 올 때이며, 양력 2월 19일이나 20일에 오는데 올해는 19일이다. 옛사람은 우수 15일간을 3후(三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놓고, 중후(中候)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말후(末候)에는 풀과 나무에 싹이 튼다고 하였다.

흔히 양력 3월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예로부터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할 만큼 이맘때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기로서 새싹이 난다. 봄에 잎과 꽃이 필 무렵 겨울 동장군은 선뜻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여 아직도 꽤 쌀쌀하게 추운 바람을 불어낸다.

"꽃샘 잎샘 추위에 반늙은이(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계절에 나누는 전래의 인사에도 "꽃샘 잎샘에 집안이 두루 안녕하십니까?"라는 것도 있다. 이 꽃샘추위를 한자말로는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말로 화투연(花妬姸)이라 한다.

경칩(驚蟄 / 3월 6일)


음력으로는 2월 절기이며, 24절기의 셋째이다. 양력 3월 6일경으로 해의 황경이 345도이고, 우수(雨水)와 춘분 사이에 있다. 계칩(啓蟄:봄이 되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남을 이른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 벌레들도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경칩에는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고 몸에 좋다고 해서 이날 개구리 알 찾기가 혈안이 되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선 도룡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흙일(토역:土役)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이날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는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고 한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경칩날에 보리 싹의 자람을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옛날에는 경칩날 젊은 남녀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한다.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 나무 암 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봄의 어원과 그 의미

우리말 '봄'의 어원에 대해서 두가지 설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불의 옛말 '블'(火)과 오다의 명사형 '옴'(來)이 합해져서 '블+옴'에서 'ㄹ'받침이 떨어져 나가면서 '봄'이 된 것으로 보아 우리말 봄의 의미로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우리말 봄은 보다(見)라는 말의 명사형 '봄'에서 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수를 지나 봄이 오면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생명의 힘이 솟아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며, 동물들도 활기찬 움직임을 하는 것들을 '새로 본다'는 뜻인 ‘새봄’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자말인 춘(春)은 원래 뽕나무 상(桑) 자와 해를 뜻하는 '날' 일(日)자의 두 상형문자를 합한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이것을 풀어보면 봄을 가리키는 한자 춘(春)은 따사한 봄햇살을 받아 뽕나무의 여린 새 움이 힘차게 돋아나오는 때를 뜻하고 있다고 본다.

영어로 봄을 뜻하는 'spring'은 원래 돌틈 사이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오는 옹달샘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풀과 나무의 새 움이 땅을 뚫고 솟아나오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뛰쳐나오는 때라고 하여 봄을 뜻하는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봄의 절기 중에 얼음을 녹이는 봄비가 내린다는 뜻의 우수(雨水)와 얼음이 녹아 깨져 나가는 소리에 놀라 겨울잠에서 개구리도 깨어나 뛰쳐나온다는 뜻을 담은 경칩(驚蟄)이 이러한 중국의 '춘(春)'이나 서양의 'spring'과 뜻이 같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봄’, 춘(春), ‘spring'의 차이를 최창렬 님의 '꽃샘과 봄의 의미'란 글을 토대로 비교해 보자. 뽕나무 새순이 돋는다는 뜻의 한자 '춘(春)'이나, 삼라만상의 생기가 새로 솟아올라 온다는 뜻을 담은 영어의 'Spring'이 모두 자연이 주체가 되어 솟아오른다는 자연 중심의 이름에 비하여, 우리말 '봄'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대자연의 움돋는 생기를 새롭게 본다는 인간 중심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말 이름의 깊이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우수에 맞춰 정지용 시 '춘설'을 감상해보자.


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글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롬 절로
향긔롭어라.

웅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끔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이 시를 이어령 님은 '다시 읽는 한국시'에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

"얼음이 금가고, 파릇한 미나리의 새순이 돋고, 물밑에서 꼼짝도 않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그 섬세한 봄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리고 겨울과 봄의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이마의 추위」(꽃샘추위)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활짝 열린 봄의 생명감은「웅숭거리고 살아온 겨울의 서러운 삶」을 통해서만 서로 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봄눈이야말로 겨울과 봄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하고, 끝내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그 차이를 보여주는「놀라움」이 되는 것이다. 봄의 시는 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용의 상상력에 의하면 그것은 봄눈에 덮인 서늘한 뫼뿌리에 혹은 얼음이 녹아 금이 간 그 좁은 틈사이에 있다."

정지용 님의 '춘설'이라는 아름다운 시와 또 이 시의 아름다움을 깊이있는 분석으로 더해준 이어령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새봄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는 슬기로움이 우리에게 있을 터이다. 우리는 우수와 경칩을 맞으며 '웅숭거리고 살아온 겨울의 서러운 삶'이 존재했을 때 봄이라는 환한 새로움을 얻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최창렬 ; 꽃샘과 봄의 의미,<아름다운 민속어원>,신아출판사,1989
뿌리넷 => http://www.poori.net/
디지털한국학 => http://www.koreandb.net/holiday/heritage/day2401.htm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한국민속대사전>, 민족문화사
최창렬 ; 꽃샘과 봄의 의미,<아름다운 민속어원>,신아출판사,1989
뿌리넷 => http://www.poori.net/
디지털한국학 => http://www.koreandb.net/holiday/heritage/day24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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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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