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문사 유족들의 눈물을 보며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2.22 07:27수정 2002.02.2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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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얘기지만 이 시대를 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은 국민의 의무이고 지성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름껏 인권 문제를 주시하며 살다보니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권 문제와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한 내 관심의 농도를 생각하면 우선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천주교인권위원회로 하여 인권 문제에 대한 내 관심은 더욱 증폭될 수 있었고, 천주교인권위 안에 '군의문사/군폭력대책위원회'가 설치되므로써 군대 내 의문사들에 대한 관심도 좀더 구체화될 수 있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천주교인권의원회의 '후원회원'으로 매월 1만 원씩의 회비를 내고 있다. 회보 <교회와 인권>을 처음 받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회비를 내온 것으로 기억한다. 무명에 가까운 시골 문사인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도 회보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들 자기 살기 바쁜 이 시절에 자기 돈 쓰고 시간 쓰면서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분투 노력하는 분들이 나는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핑계로 직접 몸으로 돕지는 못하는 대신 후원회비라도 잘 내자며 한 번도 거르지 않았지만, 월 1만원씩밖에 내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회보 <빛두레>도 매주 받아보면서 거기에도 후원회비를 보내고 있다. <빛두레>를 통해서도 우리 나라의 인권 상황과 군 의문사 문제들을 접하며 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교회와 인권>, <빛두레> 등을 통해 최근에는 부쩍 군 의문사 관련 사항들을 접하게 되면서 관심 표명의 욕구를 더러 가지기도 했지만, 막상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이 곡절 많은 세상을 살다보면 불시에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야 늘 하면서도, 직접 당사자가 아닌 (그리하여 유족의 슬픔을 만분지 일도 헤아릴 수 없는) 처지에서 섣불리 관심 표명을 한다는 건 자칫 유족에게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하나의 변명처럼 내 뇌리에 걸려 있었던 듯싶다.


그러던 차에 최근 한 유족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월 외박을 나왔다가 귀대한 동생이 다음 날 부대 안에서 자살을 했다는 청천 벽력과 같은 통보를 받고 졸지에 꿈에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군 의문사 유가족'이 되어 버린―고(故) 강의택 하사의 누님 강점미 씨의 메일이었다.

길지 않은 글 속에서도 동생의 '자살'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심정과 사건 관련 정황이며, 동생에 대한 그리움, 군이라는 엄청난 장벽과 어렵사리 대결을 벌이게 된 상황 속에서 겪게 되는 온갖 유형 무형의 고초와 슬픔들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내게 '관심 표명'을 부탁했다. 그분은 특히 <오마이뉴스>에서 내 글을 틈틈이 많이 읽고 있는 분이었다. 내 글들에서 각별히 느낀 어떤 정감과 신뢰심에 연유하여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뜻밖의 메일을 읽고 났을 때 나는 여러 가지 느낌에 휩싸였다.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한다는 사실에서 우선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한없이 안쓰럽고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군의문사유가족협의회 등과 보조를 함께 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적막하고 절박했으면 내게 그런 부탁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했다. 인터넷 웹상에 군 의문사 문제에 관한 글이 오른다 해서 상황이 조금도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그런 부탁을 하리라는 생각마저 들어서 나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일반 매체는 물론이고 인터넷 웹상에서도 군 의문사 문제는 거의 소리소문조차 없는 상황임을 나는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해 평균 300명의 군인들이 병영 안에서 사고사로 숨지고 있고, 그 중에서 100명에 달하는 우리의 아들들이 자살을 하고 있는데도 (상당수가 커다란 의혹과 함께 '자살'로 처리되고 있는데도) 일반 매체와 인터넷 언론 모두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셈이었다.

아무리 무관심과 이기심이 범박한 삶의 기본이라 해도,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살아온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일찍이 군 의문사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면서도 계속 관심 표명을 유보해 오다가 급기야는 유족으로부터 글 부탁 메일까지 받게 된 상황은 내게 죄의식마저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군 의문사 유가족 여러분께 죄스러운 마음 한량없다. 마치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더욱 죄스럽다.

나는 강점미 씨의 부탁을 받아들여 글을 쓰기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우선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젊음을 마음껏 피워보지도 못한 채 군 복무 중에 죽어간 우리의 아들들과, 천금보다도 귀한 자식을 어이없이 잃고 비통과 절망의 나락 속에서 살고 있는 부모들을 위해 며칠 동안 매일 저녁 무렵에 백화산을 오르면서 '묵주기도'를 했다. 자식들을 기르고 있는 아비의 입장에서, 자식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하고 또 헤아리며 통증이 어리는 듯한 내 가슴을 지긋이 억누르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보 <교회와 인권>,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보 <빛두레>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알뜰히 보관하고 있다. 원래 무엇이든 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다. 드디어 글을 쓰기로 들면서 그 회보 더미에서 최근의 것 일부를 꺼내어 컴퓨터 옆에 놓았다. 그 회보들을 최대한 참고 자료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 홈 사이트에도 들어가서 자료들을 검색했다.

그렇게 내 나름껏 신중을 기해 글을 썼는데도, '군대 내 의문사를 보며'라는 내 글에 오류가 발생하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27일 사망한 강의택 하사와 금년 1월에 사망한 김병민 이병을 같은 사람인 것으로 혼동을 한 것이다.

혼동을 하게 된 원인이 전혀 없지는 않다. 고(故) 강의택 하사의 누님 강점미 씨가 자신이 그 혼동의 원인 제공자라고 자책을 하면서 내게 미안한 뜻을 표했지만, 강점미 씨가 내게 글 부탁 메일을 보내면서 실명을 쓰지 않고 '이방인'이라는 익명을 쓴 탓이다. 동생 얘기를 하면서 김병민 이병의 사연을 전한 것이, 문맥이 워낙 자연스러웠던 탓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내 쪽의 안이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김병민 이병의 사망일로 잘못 적은 지난 해 11월 27일과 '의문사군인가족협의회' 회원 및 유족들을 포함한 인권위 측 23명이 사고 부대를 방문하여 조사 활동을 벌인 금년 1월 21일은 동안이 너무 벌어져 있다. 두 달 만에야 사고 부대를 찾아가서 조사 활동을 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합리한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이상하다 싶은 느낌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 느낌에 충실하여 좀더 확실한 사항을 알아보려고 했더라면 혼동 속에서 오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점미 씨가 내게 메일을 보낼 때 익명을 썼더라도 이메일 주소가 찍혀 있으니, 확실한 사항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코앞에 있었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의 안이함과 우둔함이 몹시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금년 1월에 사망한 육군 김성욱 상병과 전경 최재혁 이경도 김병민 이병과 함께 지난 해 말에 사망한 것으로 적었으니 더욱 민망한 일이다.

지난 번의 내 글이 강의택 하사와 김병민 이병의 유족들에게 누를 끼치게 되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뒤늦게나마,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나마 오류를 바로 잡으면서 이 글을 통해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한 내 글이 오마이뉴스의 돋보이는 자리에 비교적 오래 머물도록 배려해 준 편집진에 감사한다. 그것에서 오마이뉴스의 대안 언론 매체로서의 의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그리고 '의견'을 올려 주신 여러분께 감사한다. 비교적 많이 오른 독자의견들을 통해서도 독자들의 관심도를 측정해 볼 수 있었는데, 우리 나라 군대가 안고 있는 심층적인 문제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고 본다. 장교 출신들과 일반 사병 출신들 사이의 군대에 대한 기억이나 견해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아직도 우리 군대 안에 음습한 구석이 많이 남아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에 간 아들의 얼굴을 영영 볼 수 없게 된 어머니의 글은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내가 어떻게, 무엇으로 위로를 드릴 수 있단 말인가. 자식 잃은 어머니의 그 비통함을 만분지 일도 덜어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도 나는 그저 막막함을 느낄 뿐이다.

참으로 우리 사회는 군 의문사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해 평균 300명 이상이 사고사로 숨지고, 1/3에 달하는 100여 명이 자살을 하는 (또는 자살로 처리되는) 이 현실을 군대라는 특수 집단의 일로만 생각하면서 언제까지나 남의 일 보듯 할 것인가. 사회 구성원 모두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며, 그 슬프고도 억울한 일이 최소화되도록 힘껏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지혜의 최대 요건은 우리 사회의 군 의문사에 대한 깊고도 너른 관심이다.

글을 마치면서 초급 간부답지 않게 사병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았다는 고 강의택 하사가 병영에서 쓴 일기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일기를 쓴 지도 참 오랜 만인 듯싶다.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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