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짜리 꼬마의 걱정

등록 2002.02.28 12:39수정 2002.02.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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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 중에서 나와 가운데 동생은 같은 연립주택에서 삽니다. 3개 동으로 되어 있는 '샘골연립'의 가운데 동에 내 집이 있고, 동생은 뒷동에서 살지요.


형제가 가까이 옮겨 살다보니 서로 내왕이 빈번할 것은 당연지사. 더욱이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니, 어머니에 의해서도 이런저런 일로 두 형제 집이 거의 한 집 같은 형국일 때가 참 많습니다.

며칠 전(25일)에도 우리 두 형제 가족은 저녁에 외식을 했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을, 그리고 동생네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을 잘 마친 것을 축하 격려하고, 자동차운전학원에 다니는 두 동서가 학과시험에 합격하고 기능 연습을 시작한 것을 축하 격려하기 위해 내가 마련한 외식이었지요. 특히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아구탕 집에 가서 8만 원 비용으로 두 집 가족이 또 한 번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한 거지요.

동생네 집은 우리 집과는 반대로 큰아이는 아들녀석이고 작은놈은 딸아이랍니다. 그런데 올해 네 살인 작은 딸아이가 어찌나 말을 잘하고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센지, 두 집 가족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이 참으로 많답니다. 할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아이로 하여 두 집에 웃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너무도 네 살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하여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누워 계시는 시간에 아이가 또 쪼르르 와서 귀찮게 하니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 피곤헤서 잠 좀 자야니께 느이 집에 가서 놀어."
"싫어요."
"왜 싫어?"
"그럼, 왜 한결이 오빠는 맨날 맨날 우리 집에 와서 논대요?"


우리 집 작은놈이 자주 뒷동 작은집에 가서 사촌 동생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작은아버지와 장기나 바둑을 두고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촌오빠가 저희 집에 자주 가서 오래 노는 것과 제가 큰집에 와서 놀곤 하는 것을 비교 관점으로 파악하면서 저한테 집에 가기를 요구하는 할머니에게 항의를 한 것이었습니다.

말문이 막혀버린 할머니는 단지 기가 막혀할 뿐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어머니의 입에서는 그 어린 것의 머릿속 어디에서 그런 소견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자주 나오곤 했습니다.


어제는 동생을 제외한 두 집 가족 모두 덕산 온천으로 목욕을 갔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온천 목욕을 좋아하시는 데다가 그것이 노인 건강에도 좋을 듯싶어 한 달에 세 번 꼴로 덕산 온천을 다닙니다. 아내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생각해서 주로 아침 미사가 없는 평일 새벽에 가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매번 우리 가족만 따로 온천 목욕을 다니는 형국이었습니다. 그게 미안하기도 해서 방학 때는 두 집 가족이 함께 낮에 목욕을 가곤 하지요. 어제도 봄방학 덕에 출근을 한 동생만을 제외하고 두 집 가족 모두 오후 낮에 내 12인승 승합차로 온천 목욕을 갈 수 있었습니다.

(내게는 몇 년 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선물 받은 '덕산온천관광호텔'의 'VIP 카드'가 있어서 목욕비를 일인당 1천 원씩 할인을 받으니 두 집 가족이 가면 8천 원의 득을 보지요. 카드를 선물해주신 분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커지고….)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태안읍 변두리에 있는 '자동차운전학원'에 들러서 아내와 제수씨를 내려주었습니다. 오후 5시로 정해져 있는 아내와 제수씨의 기능 연습 시간에 잘 댈 수 있도록 목욕을 갔던 것인데, 길이 다소 늦어져서 아슬아슬하게 도착을 한 상황이었습니다(지금은 자동차운전학원의 모든 사항들을 컴퓨터로 입력 처리하기 때문에 시간 변경도 할 수 없고, 연습 시간에 5분 이상 늦으면 연습을 할 수 없다는군요. 내 아내가 늦은 나이에 동서와 함께 운전을 배우게 된 사정 얘기는 다음에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두 엄마의 운전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어머니도 아이들의 뜻에 찬동을 했습니다.

"그럼 두 여자 운전 연습허는 거 구경허면서 50분을 기다렸다가, 삼천량짜리 한식 뷔페 집에 가서 저녁까지 먹구 들어가는 걸루 허지유."

이런 내 뜻에도 어머니는 찬동을 해주셨고, 아이들은 좋아라 손뼉을 쳤습니다.

우리는 운전학원 교습장의 한 옆으로 가서 교습장 안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열 대도 넘는 차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중 두 대의 차에는 내 아내와 제수씨가 타고 있었습니다. 두 여자는 우리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제수씨가 운전하는 차가 우리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제 엄마를 발견한 작은 녀석 규빈이가 갑자기 소리를 쳤습니다.
"엄마, 내려요! 빨리 내려요!"

왜 엄마에게 빨리 차에서 내리라고 규빈이가 소리를 지르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제수씨가 규빈이의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차에서 내릴 리 만무한 일이었습니다.

저녁 무렵의 기온도 좀 쌀쌀하고 해서 우리는 곧 내 승합차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차 안에서 두 여자의 운전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연습을 마친 두 여자가 컴퓨터 입력 처리까지 마치고 내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그때 규빈이가 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다구요."
"무슨 걱정을 왜?"

네살배기 녀석의 입에서 나온 '걱정'이라는 단어에 모두는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아저씨랑 같이 차를 탔잖아요."

모두는 깜짝 놀라면서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너무도 재미있는 말이어서 마구 웃으면서도 네 살 짜리 어린아이의 그런 '생각'에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식사 자리에서도, 집에 와서도 어른들 사이에서는 규빈이의 그 '걱정'이 수시로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규빈이의 그 걱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 살 어린아이의 그 걱정을 그저 놀라워하고 재미있어하며 웃기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았습니다.

우선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결손 가정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혼율 17%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열 쌍의 부부 중에서 한해 평균 두 쌍이 파경을 빚고 만다는 것인데, 이 놀라운 이혼율은 계속 증가 일로에 있다는군요.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의 문제도 생각하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고아원에 가보면 고아 아닌 고아들, 그리하여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아이들도 많은 실정이지요.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은, 우리 규빈이 또래의 아이들도 무척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규빈이의 그 걱정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동생 부부와 연관지어 규빈이의 그 걱정을 확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까닭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동생이 아직 신앙 생활을 회복하지 않고 있는 것만을 빼고는, 동생 부부는 아주 잘 살고 있는 부부들 중의 하나임을 확신합니다.

모든 어른들은 우리 규빈이의 걱정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 겨우 네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도 그런 소견이며 걱정이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부부 서로 열심히 노력해서 부부의 금슬을 키우며 사십시오. 가능한 한 가정을 깨지 마십시오. 가정을 깨면 우선 어린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게 됩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림받은 아이, 유소년 시절을 슬프게 사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살배기 어린아이, 내 조카딸 규빈이의 그 걱정을 다시 떠올리고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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