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어디서 즐거움을 찾을까

<베이징 리포트> 베이징의 행복한 거리들

등록 2002.02.26 02:19수정 2002.03.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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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사는 ‘낙’(樂)이 없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나를 즐겁게 해줄만한 낙이 없는 것이다. 무슨 시간이 그렇게 남아 돌아서 난데없이 ‘사는 낙’ 타령이나 한가하게 늘어 놓느냐고 비아냥거릴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로 낙이 없는 걸 어찌하랴.

게다가 요즘은 며칠째 집에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없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샤오루란 녀석이 회사전화를 이용해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와 귀찮을 정도로 수다를 떨곤 했는데, 이젠 그 녀석마저도 며칠째 전화를 안 한다.

5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이별통고’를 받은 후, 한동안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뻔질나게 나에게 전화를 하더니, 얼마전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 후부터는 전화를 안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좀 괘씸하기도 하지만, 한창 달콤한 새 연애에 빠져 있을 녀석의 그 바쁘고 즐거운 나날들을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로 했다. 나중에 나도 똑같이 되돌려줄 참이다.

사실, 오늘 아침 전화가 한 통 오기는 했다. 자다가 전화벨 소리를 듣고 오랜만에 듣는 그 벨소리가 너무 반가워서 득달같이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더니만 “안녕하세요? 여기는 베이징 전화국입니다. 당신은 두 달째 전화비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가까운 은행이나 전신국에 가서 전화비를 납부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전화국 직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한동안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목소리가 전화비를 독촉하더니만 이제는 안 되겠던지 직원이 직접 전화를 해온 것이다. 순간 맥이 탁 풀리고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뻗혔다.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비 독촉하는 전화나 받고 있자니 약도 오르고 심술도 나는 것이다.

화(?)를 가라앉히고 밥을 지어 먹는다. 그 다음에는 한바탕 밀린 빨래를 하고 부엌에서부터 방까지 청소도 한판 말끔히 하고 마지막으로 내몸도 정갈히 씻고나니 시간은 벌써 정오를 훌쩍 넘어 있다.

내가 맘 먹고 이 모든 집안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날은, 필시 무슨 일이 안풀려서 초조하거나 아니면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무엇부터 먼저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때, 그것도 아니면 진짜로 빨래가 밀렸거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지저분한 경우다.

오늘의 경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들이다. 앞에서 사는 낙따위를 타령했던 것도 해야 할 일들 앞에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지다 보니 문득 사는 낙이 없다는 식으로 엄살을 부리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심정이다. 며칠 사이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뚝’하고 떨어졌는데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들이고(왜냐하면 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일들을 정해진 기간 안에 다 하자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내 능력으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심되는 일들이 태반이다 보니 생각할수록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울해지기까지 하면서 사는 게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라는 비관적인 상념마저 생겨난다.

성격상, 이런 상념이 한번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을 꼼짝없이 그 망할 놈의 우울증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모든 게 못마땅해지고 나에게는 돈과도 같은 산더미같은 일들도 돌연 시큰둥해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치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머릿속은 여전히 일에 대한 생각뿐이고 가슴은 콩닥콩닥 뛰는데도 말이다.

즐거움을 찾아서

ⓒ 박현숙
이르게 봄이 오려는지, 요즘 베이징 날씨는 딱 좋은 초봄처럼 훈훈하다. 해도 제법 길어져서 땅거미도 늦게 내려앉는다. 바로 이런 날, 베이징 거리를 싸돌아다니면 거리 곳곳에서 봄이 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다.

계절의 변화는 아가씨들의 옷차림에서부터 느껴진다고 하는데, 과연 봄이 오는 베이징 거리에도 얇고 화사해진 베이징 꾸냥(아가씨)들의 옷차림과 얼굴 가득 봄내음이 묻어나는 그네들의 싱싱한 웃음들로 햇봄의 베이징 거리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베이징 꾸냥들의 그 싱싱한 얼굴 위로는 온통 사는 즐거움이 가득해 보인다.

한나절, 모든 일들을 팽개치고 ‘즐거움을 찾아서’ 봄이 오는 베이징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어디 가서 잠시 잃어버린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베이징인들이라고 어디다가 몰래 꿀단지같은 즐거움을 숨겨놓고 매일 야금야금 한숟갈씩 꿀맛같은 행복을 맛보지는 않을텐데.

버스를 타고 오만가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내린 곳은 베이징의 남쪽 총원먼(崇文門). 딱히 목적지를 정해놓고 나선 발걸음이 아니었던지라, 버스 안에서 한참을 생각하다 정한 곳이 바로 총원먼 부근에 있는 행복대가(幸福大街)란 곳이었다.

듣자하니, 행복대가라는 곳은 신중국건립 이전에 발생했던 많은 사건들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매장되었던 곳이어서 지금의 행복대가로 개명되기 전까지는 온갖 소문이 흉흉한 거리였으나, 해방 이후 새로이 길을 넓히고 주택가와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아주 행복해졌다는 의미로 거리명을 행복대가로 지었다는 것이다. 그 거리의 사연도 기구하거니와, 조금 유치한 호기심이 생긴 건 지금의 행복대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한 표정들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야 그 행복한 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 막막해졌다. 한참동안 동서남북을 두리번거리며 방향을 찍으려고 해도 좀체로 감이 안 와서 일단 이곳 토박이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큰 상점 옆으로 난 작은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자전거수리 노점이 눈에 띈다. 손님도 없고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와 젊은 남자 둘이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터벅터벅 그들 앞으로 다가가서 멋쩍게 씨익 한번 웃으며 먼저 눈인사를 건넨후 “듣자하니, 이 주변에 행복대가라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한담을 나누던 둘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수리점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거긴 무슨 일로 가려고?” 하며 되묻더니 내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내쳐서 “아가씨, 한국 사람이야 일본사람이야? 아니면 광동지방 사람인가?”하고 도리어 나를 캐묻기 시작한다.

내 말투와 중국어 발음에서 뭔가 이국적인 냄새를 맡은 것이다. 이럴 때 내가 항상 장난기있게 답하는 말. “나 베이징 사람인데요. 어디를 봐서 내가 한국이나 일본, 광동지방 아가씨로 보인단 말이에요?”. 그러자 둘이서 깔깔거리며 웃더니 “여태 아가씨 같은 베이징 사람 본 적이 없어. 아가씨가 베이징 사람이면 나는 미국사람이야. 헬로우!”라며 또 깔깔거린다.

사실 그들과 이런 농지거리 같은 대화가 발단이 되어 그 이후 반나절 동안이나마 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즐겁다는게 별 게 아니라 낯선 베이징인들과 얘기하면서 그저 희희낙낙거리고 그 덕분에 그들의 온갖 재미있는 취미생활도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골목길 자전거 수리점에서의 한담

그 골목길 자전거 수리점에서 나는 주인아저씨가 내준 의자에 아예 퍼질러 앉아서 그들과 더불어 한동안 한담을 나누었다. 바삐 갈길도 없었고 그 둘도 은근히 심심해하던 차에 국적을 속이는 이상한 아가씨와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주인아저씨: 행복대가에는 왜 가려는 거요?
나: 듣자하니 그곳 사람들이 행복해졌다고 해서요
젊은남자: 누가 그럽디까? (깔깔). 이 골목 사람들이 더 행복해요. 뭐하러 거기까지 가나...
나: 이 골목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복한데요?
주인아저씨: (먼저, 웃음) 나를 봐.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굶을 걱정 없고 자식들 다 커서 이제 돈들어갈 데도 없으니 이렇게 퇴직하고 쉬엄쉬엄 자전거 수리점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게 얼마나 행복해. (젊은남자를 가리키며)저 사람은 이제 막 결혼을 해서 한참 돈벌 나이니 나보다는 덜 행복할 거야. 그지?
젊은남자: 돈 많이 벌릴 땐 즐겁고 안 벌릴 땐 속상하긴 해도, 까짓 거 상관없어요. 어쨌든 먹고 살잖아요. 빨리 저 오토바이 자동차 운전 때려치우고 정식으로 내 차를 사서 영업하면 더 좋겠지만...

나: 근데, 중국사람들은 심심할 때 뭘 하나요?
젊은남자: 심심할 틈이 어디 어디 있어요. 노인네들이나 여가시간이 있지 젊은사람들이 어디 한가한 시간이 있겠어요. 일해서 돈 벌어야지. 시간은 금이라는 말 못들어 봤어요?
나: 그럼 왜 당신은 지금 일 안 나가고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젊은남자: (깔깔)나야 자유직업이니까 그렇지. 난 오토바이 자동차를 몰거든요. 지금은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이라 잠시 이렇게 쉬고 있는거죠. 근데 아가씨는 뭘 하는 사람인데 진짜로 한가하게 행복대가 같은 곳이나 가려는 거요? 거기 가봐야 행복이 있는 것도 아닌데(깔깔)
나: .....

나: 베이징에 어디 재미있는데 없나요?
젊은남자: 아가씨 심심하구만. 재미있는데 찾는 걸 보니. 재미있는데라. 어디가 있을까. 내가 알려줄테니까 내 오토바이 타실라우? 싸게 해줄께.
나: 그게 어딘데요?
젊은남자: 여기서 좀 떨어진곳에 쭈어안루(左安路)라는데가 있는데 거기에 아주 큰 시장이 하나 있어요. 없는 게 없지. 강아지, 새, 금붕어, 연, 화초, 그리고 또 골동품에 간식거리까지. 하여튼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모여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어때? 재미있겠지 않아요?

나: 오호. 그럼 지금 당장 갑시다. 근데 진짜로 당신 오토바이로 데려다 줄 거예요? 도대체 얼마예요?
젊은남자: (깔깔)진짜로 갈려고? 그럼 50위안만 내요. 내가 시장문 앞까지 데려다 줄께(깔깔)
나: 내가 바보예요! 50위안 내고 오토바이를 타게. 우리집에서 북경역까지도 택시로 그 반값도 안드는데...
젊은남자: (깔깔) 농담이에요. 내 오토바이로는 거기까지 못가요. 여기서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택시 타면 한 13-4위안 정도밖에 안 나올거야. 진짜 재미있는 곳이에요.

그 자전거 수리점을 나서려는 순간, 그 젊은 남자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아가씨, 한국사람이지?”하고 다시 한번 확인질문을 한다. 대답대신 씨익 웃으면서 맞다는 표정을 했더니 얼씨구나 하면서 이런 너스레를 떤다.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내 오토바이에 한국사람들 많이 태워봤거든. 근데, 아가씨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월드컵 열릴 때 나좀 한국에 데려가주면 안돼? 아니면 표 한 장만 나 대신 사주든지. 대신 내가 매일 오토바이 공짜로 태워줄께(깔깔)”. 이 젊은 오토바이 자동차 기사의 너스레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즐거워진다. 이래서 가끔씩 베이징거리를 배회해보고 싶은 것이다.

중국인들의 모든 즐거움이 집합된 시장

ⓒ 박현숙
그 젊은남자가 알려준 쩌우안루에 있다는 시장에는 정말로 없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본 베이징의 그 어떤 재래시장보다도 더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 남자 말대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 시장안에는 중국인들의 온갖 취미생활이 다 집합되어 있는 셈이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벌써 심상찮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개들을 내놓고 파는 상인들에서부터 새장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시장 문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그리고 시장 안은 중국인들의 취미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특히 중국인들이 취미로 많이 기른다는 새들과 금붕어를 파는 가게들이 볼 만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각종 새들을 다 팔고 있는 듯했다. 새들 틈바구니로는 닭들과 애완용 강아지들도 웅크리고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골돌품과 연을 파는 시장, 헌책시장 등이 늘어서 있고 곳곳에는 간단한 먹거리리를 파는 노점들도 있다. 어디다 먼저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풍경들이다.

중국인들의 취미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책이나 영화, TV드라마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국인들의 취미에는 강아지나 새같은 애완용 동물을 기르는 것이나 화초재배, 연날리기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예전에는 베이징인들을 중심으로 경극을 구경하는 것도 주요한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신중국건립 이전에는 일본인들을 욕하는 것이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는 기록도 있다.

최근에는 한자녀 낳기가 보편적이다 보니 각 가정마다 애완용 강아지를 기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조금 고급스럽다 싶은 아파트에는 강아지 전용엘리베이터도 있을 정도다.

ⓒ 박현숙
그 젊은 오토바이자동차 기사의 말처럼 요즘 젊은 중국사람들은 직장생활과 돈 버는데 바빠서 딱히 특이하다고 할 만한 취미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동네공원이나 조금 큰 다리 위 등에서는 매일같이 연날리기 등을 하고 있는 노인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말같은 경우 톈안먼 광장 등과 같은 대중적인 장소에서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연을 날리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이 연날리기를 하는 중국인들을 보면서 연을 날리는 취미에는 필시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넘겨 짚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그냥 ‘심심풀이’ 여가생활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베이징의 톈탄공원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할아버지와 40대 중반의 시아강(실업)을 당했다는 아저씨에게 “왜 연을 날리냐”고 물었더니 별 시답잖은 질문도 다 한다는 듯이 “할 일이 없어서”라고 간단하게 일축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기회만 되면 연을 날리는 사람이나 강아지, 새 등을 키우는 중국인들에게 “왜?”라고 물었는데 그들이 항상 “시엔더 메이스”(할 일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것을 듣고는 지금은 그런가 보다 하고 나도 대수롭지 않게 구경하곤 한다.

유가적 세계관, 도가적 인생관

중국의 유명한 수필가이자 학자였던 린위탕(林語堂)은 그의 저서 ‘중국인’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즐거움(樂趣)이 무엇인지 안다면 비로소 그 나라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이 그의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알 때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개인적으로 나는 중국인들은 생활의 낙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어느 민족보다도 더 많은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중국인들이 겪어온 역사적 풍파와 그것이 개개인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 억압과 통제 속에서 길들여졌던 중국인들은 현대로 넘어와서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개인의 운명이 어느 날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재앙이 인생을 휩쓸고 갈지에 대해 역사적인 경험 속에서 직접 목격하고 체험해 왔던 것이다.

때문에 중국인들이 인생을 대하는 자세나 소위 삶의 즐거움, 쾌락, 행복 등과 같은 다소 추상적이면서도 쉽게 감이 안 잡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외로 단순명료한 생각과 태도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마치 내가 중국인들이 연을 날리는 취미에는 무언가 대단한 속뜻이 있을 거라고 넘겨 짚으면서 질문을 하자 대번 “그저 할 일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나 시아강 당한 아저씨의 대답과 같이.

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즐거움과 행복은 이들에게는 ‘지족’(知足)에서 얻는 ‘상락’(常樂)이다. 즉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고 살면 삶은 늘 즐겁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知足常樂’이라고 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에 대해서는 중국인들도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100년전 미국의 선교사였던 스미스가 20년 이상의 중국생활을 바탕으로 쓴, 중국인의 성격에 관한 유명한 고전인 ‘중국인의 성격’이라는 책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거론하고 있다.

이방인인 스미스가 본 중국인의 ‘知足常樂’ 정신은 당시 중국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독소 중의 하나이다. 즉 그가 보기에 당시 중국인은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더 힘들고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사람들은 늘 즐겁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보기에 이것은 중국인들이 그 불행한 삶과 자신의 처지로부터 결코 만족한다거나 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억누르고 있는 정치적 현실과 사회적 환경들에 대한 변화의 의지와 희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知足常樂’정신을 통해 불행한 환경 중에서도 마음의 평화와 정신적인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스미스의 눈에 중국인들의 이러한 知足정신은 '진보의 반동이며 장애물'로 인식되었다.

ⓒ 박현숙
그러나, 그와는 달리 중국인이었던 린위탕의 눈에 비친 ‘知足常樂’ 정신과 중국인들이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 방식은 모든 것을 물질문명의 진보와 쟁취해야할 권리의 대상으로만 본 서방인들과는 달리, 그것은 중국인들이 진정한 ‘생활의 예술’을 이해하고 있다는 증표로 설명되었다.

그는, 서방인에 비해 중국인들은 어떤 계급계층을 막론하고 보다 더 쉽게 만족할 줄 아는 ‘知足常樂’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知足의 철학사상은 중국인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소극적 방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중국인들은 한 벌의 깨끗한 옷이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밥 한 끼 등과 같은 작은 것들이라도, 단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들만을 추구하며 만일 그러한 것들을 얻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굳이 집요하게 쟁취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문명국가는 아마도 (물질적)진보에만 전력할 가능성이 있지만 역사가 깊고 오래된 문명국가는, 인생의 역정 속에서 자연히 많은 것들을 보아왔고 광범한 것들을 알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만족스럽게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것(단순한 삶의 방식)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많은 철학자들은 알게 모르게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장 중요한 (철학적)문제로 인식해왔다는 것이다.

이방인인 스미스와 중국인이었던 린위탕이 위와 같이 중국인들의 즐거움을 찾은 방법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했는지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들 둘이 동일하게 추출해낸 ‘知足常樂’정신이 과연 지금도 변함없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얼마전 중국사회학발전 세미나에 참석한 학자들은 현재 중국은 전면적인 새로운 개방단계로 진입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전면적인 새로운 개방사회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인들도 그렇게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데서 항상 즐거움을 얻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현대의 모든 국가들이 추구하는 문질문명의 진보라는 것, 그리고 중국이 추구하는 개방사회의 발전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분수에만 만족하지 않게 만드는 새로운 사회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지금은 知足해서 常樂할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새로운 ‘생활의 예술’을 창조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생활의 즐거움을 찾아서

ⓒ 박현숙
중국인들의 모든 즐거움이 모여 있는 그 시장을 나오는 길에, 새를 팔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새장안에 얌전히 새를 가둬둔 채로 팔고 있는데 반해, 그 어린 소년은 나무막대기 위에 새 두 마리를 얹어 놓고 호객을 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건 사실 그 새가 아니라 새의 주인인 소년이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유난히 눈을 끌기도 했거니와 아직 중학생도 안 되었을 법한 어린애가 막대기 위에 새를 올려놓고 파는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소년앞에 가서 얼쩡거리며, 막대기 위의 새를 한참동안 바라보자 그 아이는 내가 자기 새들을 살 맘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신나게 흥정을 하려고 한다. “살 거예요? 얼마에 살래요?”라며, 먼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보고 가격을 말해 보란다.

"너 몇 살이야?"
"13살요. 살 거예요? 싸게 해줄테니 얼마에 살 거예요?"
"너 베이징이 고향 아니지?",
"똥베이(東北) 하얼삔에서 왔어요. 도대체 살 거예요 말 거예요?"
"부모님도 다 베이징에 있니? 너 학교는 안 다녀?"
"우리 엄마아빠 모두 인력거차를 몰아요. 학교는 안 다녀요. 재미없어요. 근데 얼마에 살 거예요?"
"이 새는 어디서 난 거야?"
"똥베이에서 가져온 거예요. 70위안만 줘요, 그러면 두 마리 다 팔테니."
"사실 나 새기르는 거 안 좋아해. 돈도 없고"
"제기랄! 근데 왜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예요? 도대체 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있는데 돈이 없다는 거예요? 50위안에도 팔 수 있어요."

소년과 이런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점점 구경꾼들이 몰려든다. 소년과 아는 듯한 여관업을 한다는 남자가 끼여들어서 나에 대한 탐문조사를 실시하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역시 그 소년과 아는 듯한 젊은 아가씨 한 명은 나에게 적당한 가격을 제시해보라고 재촉한다.

소년 옆자리에서 나란히 새를 팔고 있던 남자는 자기는 예전에 중국 CCTV채널3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며(무슨 일을 했냐고 물어보자 여관업을 한다는 남자가 대뜸 끼여들어서 이 사람이 입고 있는 점퍼가 바로 방송국에서 준 점퍼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소년이 제시한 새 가격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중간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우리들의 그 실랑이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다.

마치 살 것처럼 다가와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어보고는 정작 새에 관심 없다고 발을 빼는 내가 미웠던지 소년은 마지막으로 앙칼지게 쏘아붙인다. “살 거예요, 말 거예요? 안 살 거면 빨랑 가고 살 거면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는지나 말해봐요!”, “미안해. 오늘은 정말 돈이 없어서. 그리고 난 관광객이라서 새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단다. 담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사줄게. 미안해...”, “제기랄...담에 오면 이 새가 그때까지도 있는 줄 알아요! 빨랑 비켜요. 방해하지 말고.”

그 자리에 더 머물러 있다간 어린소년에게 봉변을 당할 것 같아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짜이젠”(잘있어)하고 돌아서는데, 그 여관업을 한다는 남자도 나를 따라 잽싸게 일어선다. 그리고는 졸졸 따라와서 숙소를 정했냐고 물어보면서 자기 여관이 싸고 깨끗하다며 만일 숙소를 안 정했으면 자기 여관으로 가자고 꼬시는 것이다.

조금 전 말참견할 때와는 달리 태도가 아주 달라졌다. “나 사실 베이징에 집이 있어요. 짜이젠”이라고 말하고 발걸음을 돌리자니 뒤에서 침을 ‘퉤엑’하고 뱉으면서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것 같은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나를 욕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즐겁다. 왜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이 그날따라 너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욕을 하든 침을 뱉든, 어쩐지 그네들의 그 모습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이런 게 사는 즐거움인가? 그리고 오늘 가려고 했던 행복대가에도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행복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사실 행복은 한낱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늘 상상해도 나타나지 않는 현실, 그러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사는 낙이 없다고 징징거리다가도 또 어느 순간 사는 게 즐거워졌다고 헤헤거리는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과도 같은, 좀체로 가닥을 잡을 수 없는 상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다시금 가슴이 꽁닥거려지는 이 불안한 두근거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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