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께 드리는 탄원서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군 의문사 수사 결과 발표와 관련하여

등록 2002.03.13 12:50수정 2002.03.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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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방부 장관님.


병역 의무가 거의 신성시되고 있는 징병제의 나라에서, 그리고 민족 분단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국방의 대임을 맡고 계시는 장관님께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더욱이 요즘 차기 전투기(FX) 사업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민족의 자존심을 견지하기 위해 애쓰시고 계실지도 모를 장관님의 노고에도 경하와 위로를 드리는 바입니다.

참으로 노고가 크시고 신경 쓸 일이 많으실 장관님께 이런 '탄원'의 글을 드리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중요한 일로 인식되기에, 더 나아가 장관님의 '심려'가 참으로 필요하고도 온당한 일로 여겨지기에 감연히 장관님께 심려를 끼쳐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비중 있는 작가는 아닙니다만, 이 대한민국 땅에서 소설가로 행세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후미진 지역에서나마 제 나름껏 사회정의와 사회개혁 운동들에 꾸준히 미력한 힘을 보태 온 사람이고, 최근에는 언론개혁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기자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군'과 관련하는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나머지 최근에는 '군대 내 의문사를 보며', '군 의문사 가족들의 눈물을 보며'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장관님께 '탄원'을 드리려는 것은 군대 내 '의문사'에 관하여 군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발표를 ''공개'로 해달라는 요청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오늘은 지난해 11월 27일 육군 제5군단 145정보대대 1중대에서 복무 중 사망한 강의택 하사의 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탄원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강의택 하사의 사망 사고 발생 직후 고(故) 강 하사의 가족들이 군 측의 '자살 예단 수사'에 맞서 현장 증거 자료 수집 등의 많은 노력을 해온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눈물겨운 호소도 접하였고,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자료를 통해서도 소상히 알 수 있었습니다.

강의택 하사의 사망 사고 일로부터 3개월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강 하사의 가족들은 군 수사관 측에 대해 수사 결과 발표를 공개로 해 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최근까지도 강 하사의 가족들과 군 수사관 측 사이에서 수사 결과 발표 장소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군 수사관 측에서 돌연 '서면 통보'로 수사 결과 발표를 대신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방부 장관님.

강 하사의 가족들은 그들의 귀한 혈육 강의택이 자살을 했다는 군 측의 '통보'를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지상정 차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허무한 주검으로 남은 강의택을 자살의 '불명예'에서 건져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그 노력들은 일정 부분 가능한 것이기도 했으나, 군 수사관 측의 일방적인 결정까지 그들이 막아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 자료들을 손에 쥐고 있는 그들은 역부족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망정 가만히 앉아서 고스란히 군 측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그들의 주장은 참으로 옳습니다.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족들이 가만히 앉아서 군 측의 일방적인 결정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되어 버리면 유족들은 군 수사관 측의 수사 결과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되므로 이후에는 민원을 내보아도 이미 수사 종결된 사건이라는 단서가 붙게 되니, 더욱 힘겨운 상황이 되거나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한 허사가 되어 버리지 않겠는지요?


이 일은 결코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전적으로 국외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삼자연하는 것은 옳은 처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관님께 이런 탄원을 드리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굳게 믿습니다. 더구나 장차 군에 갈 자식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방부 장관님.

장관님께서는 군에 복무 중인 군인들이 한해 평균 300여 명씩 갖가지 사고로 죽어가고 있고, 그 중에서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100명 이상이 '자살'로 발표(종결 처리)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엊그제 잘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군에 입대했던 아들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면 그게 과연 믿을 수 있는 일이겠는지요? 전화 한 통화로 아들의 자살을 통보 받고, 사인을 규명하러 오라는 군 관계자의 말을 듣는 순간의 유족의 기가 막힌 심정을 상상해 보실 수 있겠는지요?

최근에는 더더욱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군 의문사 유족들의 눈물을 보며'라는 제 글에 눈물어린 답변 글을 달아놓은 분이 있었습니다. 군에 간 외아들을 '자살'로 잃은 아버지였습니다. 그 답변 글을 잃은 어떤 분이 그 불쌍한 아버지께 위로의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그 위로의 전화를 해주셨던 분이 다시 전화를 했는데,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말씀이더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2월 26일 새벽 경기도 연천의 모 부대에서 발생한 곽 모 병장의 '자살' 사망 사고와 관련하는 얘깁니다.)

그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수많은 군 의문사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군 의문사를 전혀 모르고 당한 경우인데, 그분은 알면서 당한 경우가 되었다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사자 가족이 <천주교인권위원회>의 <군의문사/군폭력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 사람들과 함께 부대를 찾아갔을 때는 '진상 규명'을 절규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대책위·군가협' 사람들과 유리된 하룻밤 사이에 태도가 돌변해서 군 측의 발표를 수용해 버리고는 도와주려고 다시 간 사람들에게 폭언을 퍼붓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대책위'와 '군가협' 사람들은 모종의 크나큰 '의심' 속에서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국방부 장관님.

저는 최근에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가 저술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통독했습니다. 3년 전에 노르웨이로 가서 오슬로 국립대학의 한국학 부교수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서 저는 참으로 많이 놀라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의 한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 깊은 문제의식과 정밀하고도 정연한 논법들에 무한히 감탄하고 감동하였으며, 그가 귀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무한히 고맙고 다행스러웠습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속에는 한국의 '군대 문제'에 관한 정밀하고 심층적인 글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징병제'의 폐단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대안'들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몹시 바쁘실 테지만 국방 장관님도 틈틈이 그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박노자 교수가 설파해 놓은 '군대 문제'들을 읽어보신다면, 국방부 장관으로서 '군 의문사·군 폭력'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징병제 나라의 국방부 장관으로서, 그것은 참으로 필요한 일로 사료됩니다.

이 긴 탄원의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간청합니다.

국방부 장관님.
2001년 11월 27일 군 복무 중 사망한 강의택 하사의 사망 사고에 대해 양심과 진실에 입각한 철저한 수사로 명확하게 진상을 규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군 수사기관 측의 수사 결과 발표를 '공개'로 해주십시오. 거듭 간절히 부탁하고 탄원합니다.


2002년 3월 13일
충남 태안에서 사는 소설가 지요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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