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을 맡은 아내에게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3.15 10:19수정 2002.03.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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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당신을 학교 후문 앞까지 태워다주고 와서 이 글을 씁니다.

거의 매번 당신을 내 차로 출근시켜 주는 일은, 조금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날렵할 수가 없는 당신의 몸매에 대한 걱정스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갖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 10리 떨어진 송암초등학교 재직 시절에는 아침마다 내 승합차로 당신과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을 출근시켜 드리는 일이 참 즐거웠지요. 서산의 <갯마을> 잡지사에서 서둘러 일을 마치고 학교에 들러 선생님들의 퇴근도 도와 드리곤 했던 일이 아련히 떠오르는군요.

그게 벌써 9, 10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사십대 중반 시절이었던 나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당신 덕을 많이 본다는 사실에서 흥겨움도 느끼며, 참 부지런했었지요.

벌써 3년 전인 1999년, 당신이 50리 떨어진 안흥초등학교 신진도 분교로 출근하던 때의 일들도 나는 즐겁게 기억하곤 합니다. 찬란한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길을 달릴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지요. 인제 곧 벚꽃 필 시기가 오기에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주영상정보대학에 출강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번 당신과 이복순 선생님을 퇴근시켜주기 위해 오후에도 신진도에 가곤 했지요. 그때마다 학교 후문 바로 앞에까지 들어오곤 하는 바닷물을 보는 것이, 때로는 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조약돌이 뒤덮인 해변을 잠시라도 거닐어보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신진도 분교의 동화 속 같은 풍경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바로 옆에 호수 같은 바다, 조용히 철썩이는 파도소리, 조약돌 뒤덮인 해변, 조약돌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작은 물새들,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며 나는 갈매기들을 거느리고 있는 작고 아담한 학교의 고즈넉한 교정 풍경을….


작년에 다시 태안초등학교로 돌아와서, 작년에는 4학년 담임을 맡았다가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은 당신은, 학년부장까지 맡게 돼서 아침 출근 길이 더욱 바빠진 듯싶습니다. 보통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인데도 내 차로 출근하는 날이 많으니, 그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당신에게 일이 많은 탓이겠지요. 나는 그렇게 이해하며 당신의 출근을 도와주는 일을 즐겁게 감수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1학년을 맡은 당신은 엊그제도 1학년 담임이 참 어렵다는 말을 했지요. 1학년 경험이 여러 번인 당신의 경험담들을 들으면서 나는 잠시 내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참으로 아련한 풍경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어언 근 오십 년 세월의 저편에서 가물거리는 그 아슴한 풍경들을….


그러나 나는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셨다는 것만 기억나지, 선생님의 모습은 영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흐릿하게나마 기억이 나고, 3학년부터는 담임 선생님들의 이름까지도 확실히 기억합니다만,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이름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단 두 가지 일이 기억납니다. 담임 선생님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두 가지의 삽화가 기억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방학을 제외하고 근 300일이나 되는 그 많은 날들의 생활 중에서 단 두 가지 일만이 떠오른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그나마 기억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하나는 왼손잡이인 내가 왼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보신 담임 선생님이 내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도록 교정을 해주신 일입니다. 그것이 왜 내 머리에 남아 있게 된 걸까요. 언젠가 한번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선 채로 내게 말로만 교정을 지시했다면 그것은 내 기억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은 허리를 구부리고 당신 손으로 내 왼손의 연필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어주시고, 또 당신의 오른손으로 내 오른손을 감싸쥐신 채로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주셨던 거지요.

선생님의 입김을 느꼈던 것, 선생님의 손이 내 손을 감싸듯 쥐어주셨던 것-그것에서 나는 선생님의 체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체온을 느꼈기에 그날의 그 삽화가 내 기억에 남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선생님이 내게 심부름을 시킨 일입니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나를 선생님이 부르시더군요. 교사(校舍) 현관 앞에서 선생님은 분명히 나 하나만을 부르며 손짓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나만을 부르신다는 사실에서 벌써부터 '특이한' 느낌을 삼키며 선생님에게로 뛰어갔습니다.

"너, 느이 집 근처에 있는 능샘 알지?"
"능샘유? 예."

능샘은 논들 가운데 있는 샘이었습니다. 물지게로 식수를 길어오시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번 가보았던 샘이지요. 이미 옛날에 사라지고 없는 샘, 그리운 이름이지만….

"능샘 뒤로 산밑에 외따로 있는 기와집 알지? 능샘집이라구…."
"능샘집유? 예."
"그게 선생님 집이여. 너, 선생님 집에 얼릉 뛰어가서 이 쪽지를 어른들께 드려. 그러면 이 쪽지를 보신 어른이 너헌티 뭘 줄 겨. 그걸 얼릉 가져오너."
"예."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쪽지를 받아들고 냉큼 달리기 시작했지요. 선생님이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는 사실이, 내가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선생님 집에 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지고 오라는 게 무엇일지도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은 분명히 얼른 뛰어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거지반 오 리 길을 줄창 빠르게 내달렸지요.

그러다가 중간에 잠깐 우리 집엘 들렀습니다. 부엌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의아한 눈으로 왜 집엘 왔느냐고 물으실밖에.

"지금유, 우리 선생님 심부름으루유, 선생님 집일 가는 중유."

그것은 어머니께 꼭 알려 드려야 할 참으로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신나게 으스대듯이 말하고 나서 나는 또 잽싸게 몸을 돌려 제트기처럼 빠르게 선생님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나로부터 쪽지를 받아 본 선생님 집의 여자 어른(선생님의 형수)은 곧 방에서 만년필(그것이 만년필이라는 것은 후에 알았지만)을 하나 가지고 나와서 내게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손에 꼭 쥐고 또 제트기처럼 학교를 행해 내달렸습니다.

지금이야 나도 컴퓨터로 글을 쓰지만,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 육필로 글을 쓸 때는 나는 주로 만년필을 사용했었지요. 만년필로 원고를 쓰면서 자주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그 풍경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 입가엔 웃음이 그려지곤 했지요.

생각하면 참 그리운 풍경입니다. 선생님의 심부름이 마냥 좋았던, 한없이 설레었던 그 순박한 내 동심의 실체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초등학교 1년 시절의 단 두 가지 삽화를 오늘 당신에게 들려 드리는 것은, 1학년 담임을 맡은 당신에게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물론 근 50년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요즘의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사뭇 다르겠지만, 그래도 1학년 아이들의 가슴에는 순박한 동심의 실체들이 깃들여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은 나와 당신이 함께 인식하고 있는 사항일 것입니다.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도 좋고, 우리 아버님의 동화도 좋고…. 옛날 이야기나 동화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꿈을 갖게 하며,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텔레비전이나 그림책보다도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들을 때 아이들의 가슴에 더욱 깊은 감명을 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때 스스로 당신의 입김과 체온을 많이 의식하십시오. 아이들로 하여금 선생님의 입김과 체온을 많이 느끼게 해주세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볼을 토닥거려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때로는 이놈저놈 골고루 안아주기도 하면서 되도록 칭찬을 많이 해주십시오. 그런 것이 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체온을 느끼게 해주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착한 심성과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경우가 바른 당신이기에, 초임 교사도 아닌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경력이 많은 교사일수록 초임 때의, 다시 말해 교사로서의 '초심' 같은 것을 잘 기억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나는 가끔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통하여 그 아이들의 부모들까지 가르치는 상황 같은 것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요즘의 젊은 엄마 아빠들 가운데는 가정교육을 충실히 받지 못하고 자란, 그래서 가정교육의 실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듯싶습니다. 그런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을 통해서라도 아주 기초적인 것만이라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선생님 자신부터 확실하게 깨어 있는, 세상 사물에 대해 폭 넓게 사유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고….

1학년 아이들을 통해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경우에는 엄마 아빠들까지 가르친다는 생각이 당신 같은 중년의 교사에게는 필요한 덕목일 듯도 싶습니다. 다양한 창의와 세심함이 필요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만, 교사들에게는 '사회교사'로서의 책무도 일정 부분 부과되어 있다고 나는 봅니다.

부모들이 집에서 '밥상머리교육'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그 부모 역할을 대신 해주어야 합니다. 식사 예절, 갖가지 생활 속의 예의와 공중 도덕, 남을 생각하는 마음 등을 포함한 밥상머리교육의 세목들은 굳이 적을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나라의 문교 행정이 '전인교육'을 떠든 지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만, 전인교육과 역행하는 경쟁교육, 행정교육이 우리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사 스스로 문제의식을 지니고 학과 공부 이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심어준다는 마음으로 교육 현장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1학년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체온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1학년 아이들에게는 좀 어려운 얘기겠지만, 장래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에게는 참으로 필요한 항목이고, 그것을 잘 교육하는 데는 선생님의 체온이 밑받침되어야 합니다.

다시 1학년을 맡은 데다가 학년부장까지 맡은 당신에게 남편으로서 한마디 격려의 말을 해드리고 싶어 적었습니다만, 일선 교사인 당신에게 교육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쑥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한 시절을 성실히 살아가는 작가로서 (작가에게는 '사회교사'로서의 책무도 주어져 있다고 보기에)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말을 골라서 적었습니다. 나의 이런 얘기가 당신에게 격려가 되고 또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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