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대전 행사를 보고

등록 2002.03.19 12:22수정 2002.03.19 17:4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충청도 고향 땅에서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황색바람', 또는 '자민련 바람'으로 일컬어지던 신지역감정과 맞서 싸우는 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충청도 전 지역을 휩쓸었던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로부터 파생된 것이었고, 김종필이라는 충남 부여 출신 인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나는 일찍이 지역감정, 또는 지역주의를 '망국병'으로 인식했다. 그것의 참혹한 실상들을 절절히 체감하며 이 시대를 사는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과 분연히 맞서 싸워야 함을 통감했다. 지역대결 구도가 얼마나 많은 가치관의 왜곡을 가져오고 우리의 삶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가는, 그것의 심대하고도 허다한 폐해들을 새삼스럽게 일일이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남북 분단에다가 영·호남의 대결 구도와 지역차별만으로도 한없이 슬프고 불행한 일인데, 여기에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까지 가세하는 현상을 보자니, 나는 너무도 안타깝고 암담했다. 그러나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비록 힘없는 시골구석의 작은 문사일 망정 내가 만드는 지역잡지와 지역신문들의 지면을 이용하여 지역감정 바람의 어리석음과 그 폐해들을 적시하고 설파하는 작업을 끈질기게 전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전화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충청도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 충청도가 싫으면 충청도를 떠나라는 말도 들었고, 몸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당해야 했다.

나는 오기도 발동했고, 이름 없는 문사의 작은 붓만으로는 실효가 없음을 깨닫고 1996년 제15대 총선부터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과 직접 몸으로 싸우는 일을 감행했다. 직접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민주당 후보를 도와 자민련 사람들과 코피 터지게 대결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참한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지역감정 바람의 엄청난 위력을 고스란히 체감하면서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1997년의 제15대 대선은 내게 미묘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96년의 총선 때 서로 앙숙처럼 싸웠던 자민련 사람들과 손을 잡은 듯이 하고 함께 선거 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한 일이었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배를 맞대고 한나라당과 싸우는 그 '연합전선'의 실체는 분명했으나, 지역에서는 물과 기름이 겉도는 듯한 양상을 쉽게 극복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1997년의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이겼다. 충청도에서 꽤 많은 표가 나왔다. 충청도 표가 김대중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리하여 자민련 덕을 많이 보았다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고, 이른바 '공동정권'이 성립되면서 지역에서 자민련 사람들도 콧대를 높이게 되었다.


자민련 덕에 충청도에서 김대중 씨 표가 많이 나왔다는 말에 민주당 사람들이 반감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그것에 동의하기가 싫었다.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자민련이 한나라당 이상으로 싫었다.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나 핵심들이 수구 세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씨의 당선과 연관하여 자민련의 기여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민련의 충청도 지역 기반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망국병인 지역감정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이니 민주당 사람들은 그것이 싫을 수밖에 없었다.

충청도에서 민주당원으로 참여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기본적으로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에 혐오감을 갖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김대중 씨가 지역 구도의 한 축을 딛고 있는 사람이고 그로 말미암아 지역 대결 구도가 더욱 심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 나라가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깊은 수렁, 흉령의 강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의 당선이 필수불가결한 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들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지역감정의 극복이 그들의 최종 목적인 셈이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도 나는 민주당 후보를 도왔다. 우리 지역에서는 특히 민주당과 자민련 후보의 싸움이었다. 이번의 대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 자민련은 텃밭인 충청도에서 전반적으로 퇴조 양상을 보였다. 우리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자민련 후보를 이긴 것은 우리 지역의 '지역감정 극복'이라는 시각이 결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가장 기뻤다.

그후 나는 민주당에서 몸을 빼었다. 힘껏 도왔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내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었다. 내 본연의 사명인 글쟁이 일에 충실하기로 작정하고, 민주당과는 스스로 거리를 두고 살았다. 제16대 총선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지역감정 극복의 실체가 우리 지역에서만이라도 더욱 극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내 가슴에서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 출신 새 국회의원이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개혁 성향의 의원들과 전혀 행보를 같이 하지 않는 탓이었다. 개혁 법안 발의 같은 데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다분히 수구적인 인물인 데다가 지역감정에 의존할 것이 거의 분명한 이인제 씨와 밀착해 있는 것이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내게 큰 의구심과 안타까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나는 대전 행사의 결과를 훤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계했던 지역감정―자민련이 조장했던 충청도 신지역감정의 실체가 고스란히 민주당원들에게로 전이되어 있는 양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16일 치러진 광주 경선을 보면서 지역감정 극복의 싹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광주 사람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 사람들을 경상도와 충청도 사람들이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다. 지역 대결 구도가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깨끗이 해소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이었다.

17일의 대전 경선 결과는 누가 보더라도 지역감정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지역감정으로 승리를 거머쥐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1990년대 중반의 자민련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1990년대 중반 시절과 똑같은 슬픔을 삼켰던 것이다.

오는 23일 천안에서 벌어질 충남 경선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예상과 기대가 상충하고 있기에 나는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