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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자 먼저 운동장 가득 먼지가 피어오른다. 아이들이 마구 뛰어 놀다 들어가 버린, 막 시작종이 울린 운동장은 어린 시절 포장 안된 신작로를 트럭이 지나간 뒤처럼 자욱하다.
비는 시간, 나는 하릴없이 봄이 오는 교정을 어슬렁거린다. 여린 잎눈이 참새 부리만큼 입을 내민 수수꽃다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수영장 쪽으로 줄 서 있는 아름드리 버즘나무를 일없이 쳐다보기도 한다.
군데군데 서 있는 은행나무도 봄볕을 받아 눈부시다. 머지 않아 저 나무들마다 잎들이 돋아나리다. 그 잎들은 아무도 모르게 나무 가지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세상을 향해 눈을 뜨리라. 그리고 다음날 아침, 느닷없이 돋아난 잎새들을 보며 우리는 비로소 봄이 우리 곁에 다가와서 따사로운 숨결로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은행나무에도 조금씩 봄기운이 엉기고 있다. 여린 잎눈이 햇살에 눈부시다. 저 은행나무에도 곧 잎이 돋아날 것이다. 마치 삼월에 입학해 이제 서너 주 지나자 점점 중학교라는 틀에 적응해가는 일 학년 아이들처럼 맑디맑은 숨결로, 여리디여린 솜털로 3월의 중학교를 온통 어린아이처럼 순결하게 만드는 신입생처럼, 저 은행나무 잎들은 돋아나리라. 그래서 곱게 갈라진 작은 손바닥을 세상을 향해 뻗쳐갈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교내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린다. 마치 봄볕에 제 마음 둘 데 없이 들뜬 산짐승처럼 나는 아이들이 다 들어간, 체육시간조차 없는 빈 운동장을 독차지한다.
오늘따라 햇살이 더 환하다. 봄은 봄이다. 운동장 위로 쏟아지는 봄 햇살은 여름 바닷가의 모래밭처럼 아득하고 눈부시다.
일없이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본관 건물을 따라 길게 늘어선 화단으로 들어선다. 아직 배롱나무는 물기조차 오르지 않아 죽은 것처럼 앙상하다. 배롱나무에게는 봄이 쉬 오지 않는가보다. 그래도 몇 주 상관으로 저 나무에 물이 오르리라. 그 물기로 몸을 덥히고, 어느 날엔가는 세상을 향해 붉디붉은 꽃을 피워 올리리라.
능소화를 몸에 감은 채 아름드리 고사목이 버팀목의 역할을 든든히 하고 있고, 꽃사과나무도 의연하게 겨울을 이겨내고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저 고사목처럼 능소화 같은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이기나 할까? 그래서 능소화 연분홍 꽃송이를 내 몸 가득 피워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내 몸이 막 봄기운을 맞아 스물거리는 것 같다. 확실히 봄은 봄이다.
막 걸음을 옮기다 나는 그만 멈칫 발걸음을 세운다. 발 디디려는 자리에 보라색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를 밟지 마세요, 밟으면 아파요 하는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제비꽃을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양지녘, 햇살 속에 피어 있는 제비꽃이 더 곱다. 앉은 채로 사방을 둘러보니, 곳곳에 제비꽃 천지다. 저 만치에는 민들레도 한 무더기 모여 있다.
햇살이 잘 비치는 곳을 찾아 서로 부둥켜안고 얼싸안으며 피어 있는 제비꽃, 민들레꽃. 그 모습이 꼭 조회 때, 아무리 똑바로 서라고 해도 제 마음대로 엉켜 떠들고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 같다. 야단을 치려고 하면 배시시 웃는, 그래서 야단치려는 마음조차 쑥 들어가게 만드는 아이들의 얼굴 같은 봄꽃들.
나는 화단을 벗어나 교무실로 들어오며 문득 아이들 같은 봄꽃을, 봄꽃 같은 아이들을 생각한다. 거센 꽃샘바람에 저 꽃들, 다치지 않아야 할텐데. 세상의 거친 발길들, 저 꽃잎 밟지 못하게 해야 할텐데. 그래서 저 봄꽃들 서로의 얼굴 환하게 빛나는 봄날 맞이하게 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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