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닌에서의 학살과 윤봉길

등록 2002.04.11 10:57수정 2002.04.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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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에 깊이 스며든 죽음을 이겨내려는 시도가 부질없게만 보이는 날이다. 그러나!

요즘 나의 관심은 먼 곳 팔레스타인을 향하고 있다. 이스라엘 북동부에 자리잡은 팔레스타인 난민촌 예닌. 전부 1평방킬로미터밖에 안되는 좁은 난민촌에 이스라엘 아파치 헬기는 250발의 미사일을 쏘아대고 탱크는 포탄을 무수히 퍼부었다고 한다. 1만4천 명이 사는 판자촌에 한 번에 그 정도 공격을 자행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잔혹한 학살극 이상일 수가 없다.


삶은 곧 죽음을 향해 가는 도정이겠으나, 그러나 그것은 죽음에 맞서 이 한시적인 빛의 공간을 지켜내려는 안간힘 아니던가.

신문을 매일 읽던 습관을 버린 지 오래, 오늘 무심코 눈에 띈 동아일보에는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진이 실려 있다. 윤봉길 의사의 총살 장면이 그것이다.

홍구공원에 모인 일제의 군정 수뇌들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25세 젊음을 버린 그는 그들에게는 잔인한 테러리스트였겠다. 그래서 그렇게 무릎을 꿇리고 팔을 묶어 벌리게 하고 이마 정면에 총구멍을 내버렸나 보다.

테러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렇게 샤론은 예닌에서의 학살극을 변명할 것이다. 그리하여 윤봉길은 그렇게 단죄되어야 했다.

어렸을 적 내 태어난 북문리에서 경운기를 타고 덕산온천에 가다 보면 한쪽에 윤봉길의 사당이 있었다. 북문리와 인접한 시량리가 그의 고향이었다. 그의 사당 가까이 가면 무언가 사람을 압도하는 신비스러운 힘이 숨쉬고 있었다.그것은 죽음으로 죽음을 초월한 사람의 숨결이었다.


그가 살던 일제시대처럼 오늘도 세상은 억압과 살상이 잡초처럼 번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초극하려는 의지를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삶을 위해서 삶을 버려야 하는 기막힌 역설 앞에 서 있는 이들이여, 부디 내일의 약속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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