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추억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4.30 06:52수정 2002.04.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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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또 한번의 모임 자리에서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자리였는데, 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친구가 내게 의미 있는 농담 한 마디를 던졌다.


"밥 먹는 모양 한번 참…. 그렇게도 궁헌감?"

밥그릇을 비운 내가 물을 부어 그릇에 붙어 있는 밥풀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알뜰히, 깨끗하게 떼어서 먹는 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 날은 어떻게 된 밥인지 밥풀들이 그릇에 쉽게 붙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궁헤서보다두, 양반이 상놈들처럼 밥을 먹어서야 쓰겄남."

그렇게 대꾸해 놓고 밥상을 한번 둘러보니, 의외로 '상놈'들이 많은 형국이었다. 그릇 안에 밥풀들이 붙어 있는 채로, 또는 지저분하게 해 놓은 채로 숟갈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밥을 그렇게 먹어야 양반이다나?"

그 친구의 또 한번의 그런 물음 때문에 나는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밥그릇에 붙어 있는 밥풀들은 개밥으로두 가지 않어. 그냥 수채 구녕으로 가지. 밥풀 하나두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농민들의 땀이 배어 있고 하늘의 보살핌이 깃들어 있는 쌀을 한 톨이라두 애끼는 것, 우선은 이것을 잘 허구 살어야 양반일 수 있는 겨."

그러자 그 친구도 지지 않았다.


"말이야 백 번두 옳은 말이지먼, 너무 힘들어서 양반 뭇헤 먹겄다. 워떻게 그렇게 힘들게 산다나? 이 바쁜 세상에…."

"밥풀 하나 떼어먹는 시간이 한 오 분은 걸리남? 양반 식사 법허구 바쁜 세상허구는 아무 상관이 읎는 겨."

그러고 나서 나는 또 한번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은 소년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밥상머리 교육'의 실체들을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밥상머리 교육 중에서도 가장 엄하고 빈번했던 것은 식사 예절에 관한 것이었다.

바르게 앉아서 먹어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쥐지 말아라. 상에다가 젓가락 맞추는 소리를 내지 말아라. 젓가락으로 한 음식을 집었다 놓았다 하지 말아라. 음식을 집었다가 놓고 다른 음식으로 가지 말아라. 입소리를 내지 말아라. 입 속에 음식을 넣은 채 말하지 말아라. 밥그릇에 밥풀을 붙여놓은 채로 숟갈을 놓지 말아라. 밥풀을 흘리지 말아라.

거의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어서 어린 심정에 불만도 없지 않았고 불편을 많이 느껴야 했지만, 엄한 아버지 앞에서는 끽 소리도 할 수 없었다. 바르게 앉지 않는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쥐었다고, 밥풀을 흘렸다고 꾸지람을 들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꾸지람은 밥풀을 흘렸을 때 듣는 호통이었다.

그런데 그런 식의 꾸지람만으로는 '교육'이 되지 않을 터였다. 밥풀을 흘리지 말라고 했으면, 왜 밥풀을 흘리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제대로 교육이 될 터였다. 아버지는 그것에 대한 말씀도 많이 하셨다. 농민들의 땀이 배어 있고, 하늘의 보살핌이 집약되어 있는 쌀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말씀들이었다. 논에 모가 심겨지고 벼가 생산되기까지의, 일년 농사의 전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 집은 농가가 아니었지만, 청년 시절까지 농사일을 하며 사셨던 아버지는 그 농사의 어려움을 농민 못지 않게 잘 알고 있었다. 농민들에 대해서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사신 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밥상머리에서 가르친 수많은 소소한 식사법들은 모두가 쌀에 대한 각별한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를 살게 해주는 밥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하고 어떻게 밥을 대해야 하는가―. 그것은 결국 사람으로서의 갖가지 바른 품성과 덕목들을 키울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셈이었다.

사실 우리 세대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엄하게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가정교육이나 밥상머리 교육이 부실했던 집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 세대들은 지금보다는 한결 가정교육의 필요성과 실체가 보편화되어 있던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구체적인 가난 속에서 어렵게 살았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예의 범절이 존중되었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살기 좋은 세상(이런 표현에는 문제가 없지 않지만)이 되면서 전통적인 예의 범절과 공중 도덕의 실종 현상이 거의 보편화되고, 거대한 무질서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세태 ―일종의 아이러니를 보면서 기성 세대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한다. 밥상머리 교육이 우리 세대에서 끝나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젖게도 되고, 그 전통을 다음 세대에게 완강하게 이어주지 못한 우리 세대의 무책임을 통감하게도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가공할 망각증이다. 우리 세대들은 대체로 아버지 세대로부터 가정교육, 또는 밥상머리 교육을 받고 자랐으면서도 그것의 내용이며 실체들을 거의 잊어먹은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의 삶 안에 하나의 전통적 규범으로 확립시키지를 못한 것이다.

우리의 삶 안에 쌀 한 톨, 밥풀 하나를 귀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밥상머리 교육을 통하여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면, 농민 알기를 화투장의 흑싸리 껍데기 정도로 아는 농업 천시 현상이 과연 우리 풍토에 자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요즘엔 종종 하곤 한다. 밥을 함부로 남기고 버리는 것도 하늘에 죄를 짓는 것으로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정부 안에서 농정 일을 맡고 있다면, 오늘같이 농업과 농민을 벼랑으로 내모는 철학 없는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꽤나 흥미 있는 생각이지만 결국은 큰 비감에 젖고 마는 일이다.

몇 년 전 그날,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내 얘기에 대체로 동감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밥그릇을 알뜰하게 비우는 '양반'들은 많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냥 편한 대로 밥그릇에 밥풀을 덕지덕지 붙여놓고 숟가락을 놓는, 그런 '상놈'의 식사법을 더 많이 선호하는 것 같았다.

결국 세상은 상놈들 천지가 되어 가는 풍경이었고, 양반보다는 상놈으로 사는 게 편하고 유익한 세상, 쌀이 어떻고 밥이 어떻고 따질 것 없이 그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좋은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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