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찰노조 6

등록 2002.04.30 19:39수정 2002.04.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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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경찰과 한국경찰

법무부는 지난 23일 영국 유학생 진효정, 송인혜 씨 피살사건과 관련하여 8명으로 구성된 런던경찰청 조사단이 국내 조사활동을 위해 입국했다고 밝혔다. 영국경찰에 대해 한국경찰이 상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런던경찰 조사단은 2주간 국내에 머물면서 피해자와 같은 하숙집에 거주하다 귀국한 사람 등 관련자를 조사하고 인터넷 업체를 방문, 사건 관련자 e-메일 기록을 검토하는 등 조사활동을 벌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경찰은 한국경찰과 달리 명실상부한 범죄수사 및 초보적인 범죄기소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와서 경찰 아닌 법무부와 검찰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찰은 범죄수사에 따른 통상적인 사법처리 기능이 없다. 말은 "사법경찰"이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범죄수사를 통한 사법처리" 권한이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할 경우 그것은 곧바로 우리나라에서 제도상 검찰의 잘못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범죄수사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지김 사건 처리에 있어서도 이무영 전청장이 설사 부하에게 수사중단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회피를 한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수사책임은 검찰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영국과 미국은 우리와는 다른 사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국에는 우리나라 같은 법무부도 검찰조직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범죄수사는 전적으로 경찰이 담당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경찰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범죄수사에 관한 한 사실상 검찰의 하부조직으로 되어 있다.


동의대 사태와 민주화 문제

그런데 우리나라 경찰도 시위를 한 적이 있다. 경찰노조를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며 경찰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봉급을 올려달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경찰지도부가 독선적인 인사를 하거나 비리를 성토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언론에서 경찰사기에 반하는 편향적인 보도로 경찰사기를 땅에 떨어뜨려 이에 항의하기 위한 아니었다.

그것은 최근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되어 보상받도록 결정된 1989년 동의대 사태 당시 진압작전에 투입된 경찰관 200여명이 엄격한 상하구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진압책임을 항의하며 시경국장의 사과와 퇴진을 요구하는 항의농성을 부산 시경 앞마당에서 가졌던 것이다.

과문한 탓인진 몰라도 이 경우말고 우리나라 경찰이 데모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같다. 누구는 그들은 정규경찰 아닌 데모 막는 전의경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당시 시대상황이나 동의대 사태에서 나타나는 것은 군대 아닌 경찰이 당시 군사정부 혹은 준군사정부 통치 하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의 시위진압 책임을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위원회가 당시 동의대 학생들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곧 경찰이 반민주적이라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추측컨대 만일 당시 부산시경 앞마당 항의농성에서 주동자들이 사법처리 되었다면 이들 역시 지금에 와서는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될 지도 모른다.

미국경찰노조의 충격

우리나라 경찰이 집회를 갖거나 사전 모임을 통해 경찰노조 조직을 만든다면 과거 전교조나 최근 공무원노조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이들은 사법처리 될 것이다. 정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한 경찰개혁과 경찰업무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찰노조를 만드노라고 나선다 하더라도 이들은 위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일선 경찰관들은 대부분 데모를 통해 경찰노조를 만들지 않고 대화를 통해 우리나라도 경찰협의회나 준노조라도 경찰노조로 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물론 온전히 "대화만을 통해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미국의 경우에도 당연히 일선 경찰관들은 조직화의 "행동과 싸움"을 통해서 경찰노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미국의 각급 자치경찰노조들은 미국경찰 전반에 대해 지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경찰노조가 미친 충격파는 우선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봉급과 수당

우선 미국경찰노조는 경찰의 봉급과 수당 측면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룩해냈다. 미국도 1960년대 중반 각지의 많은 경찰국들이 자격을 갖춘 경찰관들을 채용하거나 계속해서 데리고 있는데 커다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경찰보수가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이와 같았던 미국의 경찰상은 경찰노조 덕분에 크게 바뀌었다.

이제는 미국 각지의 경찰국들에는 통상 경찰에 입문하려는 많은 응모자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적어도 상당수는 대졸자를 채용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바꿔 말하면 이제 미국에서 경찰직은 일부 대졸자들이 보기에도 보수 면에 있어서도 한 번 해봄직 하다고 생각하는 경쟁력 있는 직종이 되었다.

미국경찰경영

미국경찰노조는 경찰 관리나 운영 측면에 대해서는 더욱 더 커다란 충격파를 던졌다. 미국에서도 경찰노조가 생기기 전만 해도 경찰국장들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경찰 경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경찰노조는 "더불어 함께 결정을 내리기"라는 조건을 만들어냈다.

이제 각 지역 자치경찰의 경찰국장들이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른 결정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노조와 협상을 벌여야만 한다. 단체협약과 노조대표들은 경찰경영에 있어서 일상적인 역할을 하다시피 하게끔 되었다. 미국경찰노조는 미국경찰경영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경찰사기

미국경찰노조는 경찰관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노조는 봉급과 수당을 인상시켰으며, 부당한 징계와 전보와 해임 등으로 인한 고충을 처리하기 위한 별도 절차를 만들어냈고, 경찰관들에게 자신들의 포괄적인 이익을 지켜내기 위한 강력한 대변자가 되고 있다.

미국경찰노조의 부정적인 측면

미국경찰노조가 대 커뮤니티 관계에 대하여 중요하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비판자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경찰노조는 민권운동 지도자들 및 상당수 경우 소수인종에 속해 있는 경찰관들보다는 오히려 백인 경찰관들을 대변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스턴, 뉴욕, 클리블랜드 등지의 경우 경찰노조는 경찰과 커뮤니티간 관계 증진을 위해 해당 도시의 시장 측에서 입안했던 정책변화 조치들에 대하여 경찰노조가 앞장 서서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와서도 기존 미국의 경찰노조들이 소수인종 출신 경찰관 수를 늘리려는 긍정적 입법 추진방안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소송까지 불사하는 백인 경찰관들을 대변하는 경우가 흔하였던 것이다.

미국경찰의 전문직업화

미국경찰노조가 경찰직 전문직업화에 대해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미국경찰노조가 맨 처음 등장했을 때 여러 경찰개혁 정책 추진자들은 경찰노조가 경찰직의 전문직업화의 흐름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점에 대해 크게 우려하였다.

첫째 경찰노조는 경찰국장의 권한을 축소시켰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력한 개혁 성향의 경찰국장들은 경찰직의 전문직업화의 원동력이 되어왔었다.

하지만 미국경찰노조는 이들의 경찰개혁 추진에 딴지를 걸어온 측면이 있다. 예컨대 상당수 미국경찰노조들은 대졸 출신 경찰관에게 인센티브 성격의 추가보수 지급을 반대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러 도시들에 있어서 경찰노조가 경찰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네 번째 새로운 순찰팀 창설 방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찰노조들이 경찰과 지역간 관계 증진을 목적으로 입안된 정책에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둘째 거꾸로 미국경찰노조는 경찰전문직 발전에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기도 했다. 우선 경찰노조는 봉급과 수당을 인상시키는데 기여했으며 따라서 경찰활동이라는 것이 보다 나은 자격조건을 갖춘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매력적인 직장이 되도록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경찰노조는 고충처리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자의적이며 보복적인 업무 배정이라고 하는 미국경찰경영에 있어서 최악의 전통적 특성들 상당수를 일소하는데 기여하였다.

먼저 출발한 미국경찰노조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보고 우리나라에 언젠가 실현될 지도 모르는 경찰노조의 적합한 모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산 넘어 산'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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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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