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이드는 것이 두려울까

책 속의 노년(27) :〈성찰〉

등록 2002.06.01 12:16수정 2002.06.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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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해외 근무에 따라 아이들 초등학교는 미국에서, 중학교는 영국에서, 그리고 이제는 호주에서 대학에 보내고 있는 선배는 빨리 늙어서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 사이의 의사소통 부재에서 오는 고통이 그 선배를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한 10년 쯤 훌쩍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큰 아이와 터울이 많이 지는 늦동이를 둔 후배는 생각보다 길어진 육아에 몸살을 앓으며, 나 늙는 것은 괜찮으니 빨리 빨리 아이들 커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했다.


별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듣는 수밖에. 아이들이 다 자라 제 길로 간다고, 나이 먹고 늙는다고 그것만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빨리 늙고 싶어하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늙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이 너무 힘들고 무거워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그들에게 늙어감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는 중에 람 다스의 책〈성찰〉을 만났다.

오랫동안 영적인 훈련을 해온 저자 람 다스는 66세이던 지난 1997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언어 장애와 신체 장애를 겪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나이듦과 변화, 죽음, 죽어가는 것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책은 내 몸에 대한 사랑, 현재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 낡은 마음을 버리기, 몸의 아픔을 끌어안기, 새로운 역할을 사랑하기,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기,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사랑, 뇌출혈을 겪은 내 몸에 대한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노년기에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들로 꼽은 노망, 외로움, 당혹감, 무력감, 역할·의미의 상실감, 울적함 등은 노인복지 관련 이론서보다 더 분명하고 간결하게 노년기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리처드 앨퍼트에서 람 다스로 다시 태어났다고 할만큼 영적 탐구의 길을 걸어온 사람답게 하늘보기 명상, 걷기 명상, 연민의 명상, 호흡 지켜보기 등을 소개하고 있어 일상에서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 집중하는 것에 부담없이 다가가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나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젊음만을 가치있다고 여기는 미국 문화에서 죽음만큼이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나이들어감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했기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늙어가는 우리의 몸과 함께 잘 사는 일'이라고 가장 평이한 언어로 표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빨리 나이들어 버리고 싶어 해도 사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강한 믿음 없이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이들어가는 것이 죽음만큼 두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은, 늙음을 '엄청난 사회의 병이고, 필요악이며, 사회 부담이고,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이라 여기는 사회 문화적인 환경과 우리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온다.


뛰어난 통찰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어찌 나이 들고 늙어간다는 것이 일종의 실패로 여겨지는 곳에서 우리를 제대로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아 이상의 존재이며, 통찰력을 가진 영혼의 존재라는 믿음이 없다면 늙음과 죽음을 어떻게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두 가지이다. 나이들어감, 늙음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 두 가지 뿐이다. 그 선택은 우리 존재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들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며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힘을 믿는다면, 저자의 말처럼 믿음과 사랑은 어떤 변화보다도 강하고, 나이 드는 것보다도 강하며 그리고 죽음보다 강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이들어 가는 것이 두렵지 않겠다. 빨리 늙어가고 싶다고 안달하지도 않겠다. 결국 모든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미래에 올 죽음을 깨닫는 것이 현재의 삶을 즐겁게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매우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성찰 Still Here / 람 다스 지음, 강도은 옮김 /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2)

덧붙이는 글 (성찰 Still Here / 람 다스 지음, 강도은 옮김 /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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