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나이드는 것이 가능할까"

책 속의 노년(28) : <나이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

등록 2002.06.05 11:56수정 2002.06.0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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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40대 초반인 친구들과 요즘은 주로 아침 모임을 갖는다. 물론 아침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아니지만 조찬 모임이라 부르기도 하고, 모닝 커피 마시는 날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아줌마들의 시간 절약을 위해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가 끝나자마자 집을 나서는 것이다.

아침 만남이 예정되어 있으면 전날 밤 머릿속에는 일사불란한 계획이 세워진다. 외출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따져서 좀 일찍 일어나야 하고, 식구들 아침 식사와 뒷정리에도 최소한의 시간을 쓰도록 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을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편안하다.


주로 아침 첫 회 영화를 보거나 혹은 차를 마시고,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 귀가 시간에 맞춰 헤어진다. 전화 통화는 비교적 자주 하지만 만나는 것은 1년에 서너 번 정도 되는 후배와 이른 아침 지하철 역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반가운 웃음과 함께 이마의 굵은 주름이 확 눈에 들어온다. 그때 느껴지는 놀라움이라니.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서 무감했던가. 동안(童顔)이란 이야기에 익숙해 있었던가. 이마에 이미 자리 잡은 주름이 낯설게 다가온다. 아, 나도 이렇게 나이를 얼굴에 새겨가고 있구나, 새삼스런 깨달음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시리즈로 유명한 잭 캔필드가 <나이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으로 노인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두 권에 나누어 담았다. 나이들어가는 것이 정말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하며 책장을 연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멋진 삶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 사랑에 대하여, 간절하게 소망하는 마음,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좋은 이유 등의 소제목 아래 짤막한 토막글들을 모아 놓아서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잠깐씩 읽어도 좋을 책이다.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이야기들 사이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기억해 두었다가 식구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또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많은 나이에도 꿈을 간직한 채 그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놀라움과 함께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둘째 권 마지막에 있는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좋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묶인 글들인데 내가 일흔살이라서 좋은 이유, 우리가 삶에서 남겨야 할 것들, 50대에 배우는 80대의 지혜, 나이가 들어서 좋은 50가지 이유 등이 재미와 의미를 함께 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의 주인공들이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은 아니다. 때론 망가지고 어그러진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들 자기 나름의 경험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크지도 높지도 않다. 너무 조용하다. 그 성실함과 여유가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지점같아 자연스레 그 쪽으로 눈길을 모으게 된다.


정말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노인의 주름살이 어린 아이의 주근깨처럼 예쁠 수 있을까. 설사 그렇지 못하다 해도 아쉬워할 것은 없겠다.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내 것으로 간직하게 된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이미 알고 있는데 어찌 주름살에 눈을 찌푸릴 수 있겠는가.

'50대에 배우는 80대의 지혜'라는 글에서 나는 '40대에 배우는 노년의 지혜'를 하나 마음에 새긴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라. 네가 받은 복을 생각하라. 걱정하지 마라." 내 이마에 자리잡은 주름을 사랑한다고는 아직 이야기 못하지만, 그래도 잘 늙으면 노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잘 늙기 위해서는 지금 잘 살아야 한다는 진리가 곧바로 그 생각의 뒤를 잇는다.

<나이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Chicken Soup for the Golden Soul)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외 편저, 김문호 옮김 /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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