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6.24 15:59수정 2002.06.2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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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주말마다 내 12인 승 승합차를 활용하여 동생 가족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명승지나 자연을 찾아 봄기운 속에서 하루를 즐기곤 해왔지요. 지난해 가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후 건강이 많이 좋아지신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두 형제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은 즐거움을 안겨 주지요. 대전에서 사는 막내 동생네에게는 부러움을 안겨 주는 일이겠지만….


그 동안 서산시 팔봉면의 팔봉산을 시작으로 부석면의 도비산과 천수만,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과 아직 은밀한 기운이 남아 있는 안면해수욕장, 서산시 해미면의 일락사와 운산면의 개심사, 태안군 소원면의 파도리와 만리포 등지로 가족 나들이를 했습니다. 세계꽃박람회가 열리던 안면도 꽃지에는 두 번이나 갔고…. 오전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와서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하는 나들이이니, 저녁 식사는 음식점에서 하곤 했지만,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지도 않았지요.

어제 23일 주일에도 오후에 가족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번의 나들이 장소는 충남 서북부 지방의 최고 명산인 가야산이었지요. 가끔 약간씩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는 날씨가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여름철 나들이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함께 산행까지는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동행을 해주셨고….

당진·서산·예산·홍성 등 4개 군에 산자락들을 드리우고 있는 가야산은 내게 늘 선망의 대상이었답니다. 태안 사람인만큼 일찍부터 가야산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직 한 번도 가야산의 어느 봉우리도 올라보지 못한 처지여서 그게 늘 스스로 부끄럽곤 했지요.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가야산 나들이를 별러왔고, 그런 만큼 이번의 가야산 나들이는 어느 때보다도 내게 큰 설렘을 안겨 주었지요.

나는 사전에 가야산의 등산로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입수하여, 여러 방면의 등산로 중에서 해미면 황락리 일락사의 왼쪽 옆으로 오르는 길을 택하기로 했지요. 일단 일락사 앞에까지 차를 가지고 간 다음 주차장에다 차를 놓았지요. 산 속의 맑은 공기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절 주변 길을 산책도 하고, 힘들면 차안에 앉아서 묵주기도를 하기로 하신 어머니는 다섯 살배기 손녀도 기꺼이 맡아주셨습니다. 유아원에 다니면서 말귀가 더 트인 규빈이는 순순히 할머니와 함께 있기로 해서 모두는 다행이었지만, 어찌 보면 규빈이를 맡기려고 어머니를 모시고 온 형국이었습니다.

아무튼 우리 가족 일행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야산의 하나인 일락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락사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실 어머니와 규빈이를 생각하면 가야산의 여러 등산로 중에서 가장 짧고 무난한 편인 일락산 코스를 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그래서 햇볕 뜨거운 날엔 더욱 그늘이 좋은 산 속의 오솔길을 오르는 기분이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해맑은 새소리에 감탄하며, 신선한 숲 속 공기를 가슴 가득 체감하며, 드문드문 피어 있는 하늘나리와 이름 모를 풀꽃들을 보며 산길을 걷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일 터였습니다.


나는 가야산 나들이 계획에 기꺼이 동의하며 기쁨과 기대를 표시해 준 가족들이 고마웠습니다. 아내도, 동생도, 제수씨도…. 올해 중3인 딸아이는 내년에는 외지 고교로 진학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내년부터는 가족과의 이런 시간을 갖기란 참으로 어려울 터였습니다. 그걸 생각하니 지레 아쉬워지는 마음이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녀석과 3학년인 조카녀석은 아직 철부지 모습이지만….

이윽고 우리는 일락봉에 도착해서 우선 천수만 쪽의 풍경에 취하며 잠시 다리를 쉬었습니다. 흐린 날씨임에도 안개가 전혀 없어서 시야가 넓게 트여 천수만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일락봉의 높이는 521미터라고 했습니다. 내가 자주 오르는 태안의 명산 백화산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높이였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드디어 일락산의 정상인 석문봉에 도착했습니다. 석문봉(일명 문다라미)의 높이는 653미터. 가야산의 주산인 상왕산의 정상인 수리봉(일명 원효봉)은 해발 678미터라는데, 수리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가 석문봉이라고 하니, 우리는 제법 등산을 한 셈이었습니다. 우리는 석문봉의 바위 위에 앉아 준비해 온 빵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며 일락봉에서보다 좀더 조망이 좋은 천수만 풍경을 다시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의 중심 화제는 아까부터 여전히 월드컵 축구 얘기였습니다. '붉은 악마' 얘기였고, 전 국민의 응원 열기에 관한 얘기였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는 붉은 악마도 세 명이나 되었습니다. 내 딸아이와 아들녀석, 그리고 제수씨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카녀석은 흐린 날씨 때문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고….

그 동안 나는 우리 나라 대표팀의 축구 경기를 매번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았습니다. 대 폴란드 전과 이탈리아 전 때는 <대전일보>의 긴급 관전평 청탁으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글을 쓰는, 이상한 곤욕도 감내해야 했지요.

그런데 동생과 제수씨는 태안군청에도 가고 군민체육관에도 가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렬히 응원을 하며 경기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가 골을 넣었을 때의 군청 마당 풍경, 스페인 전에서 승부킥으로 승리하던 순간의 군민체육관 풍경을 얘기할 때는, 제수씨의 말소리와 표정이며 그 모습이 정말 실감을 안겨 주더군요.

나는 동생과 제수씨가 부러웠습니다. 나도 이다음에는, 독일과의 경기부터는 군청에 가서 경기를 보며 응원의 열기 속에 파묻혀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수씨가 갑자기, "우리 다 함께 여기서 응원 연습 한번 해볼까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야산 석문봉에서 응원 연습? 거, 뜻이 있네."
내가 가볍게 동의하니, 제수씨는 두 손을 높이 쳐들며 큰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고, '짜짝 짜짝 짝' 손뼉을 쳤습니다.

제수씨의 선창에 호응하여 나머지 가족들은 다 함께 큰소리로 "대∼한민국"을 복창하며 손뼉을 쳐대었습니다. 우리는 몇 번이나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때아닌 시간에 가야산의 석문봉에서 우리 가족의 월드컵 축구 응원 연습이 제대로 힘차게 실시된 것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즐거운 사람은 제수씨였습니다. 나보다 11년 차가 나는 동생, 그 동생보다 여덟 살이나 적은 제수씨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답게 가족 나들이와 산행을 가장 좋아해 왔는데, 가야산 석문봉에서의 월드컵 축구 응원 연습에도 앞장을 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야산에 와서까지 응원을 허니께 우리 나라가 독일도 이기겄구먼."
평소 말수가 적은 동생도 흥에 겨워 한마디했고, 동생의 그런 말에 내 아내가 깜짝 놀라듯 반색을 하며 깔깔 웃었습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월드컵 축구 열풍에 대해 '집단적 광기'라는 말로 진단의 일맥을 짚은 박노자 교수의 견해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저절로 관심의 심연에서 응원의 열기 속으로 빠져드는 나 자신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은 나도 실컷 감격하고 열광하고 흥분하고 나서 그 다음의 생각들을 찬찬히 간종그려보기로 마음먹었지요.

이윽고 우리는 석문봉을 내려왔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꾸불꾸불한 임도(林道)를 따라 30분이나 내려와서야 일락사의 주차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들은 대로 2시간 코스였습니다. 차안에서 규빈이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고, 어머니는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손(祖孫)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어머니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곧 일락사 계곡을 떠나 해미 읍내로 내려온 나는 해미초등학교 정문 앞에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잘 가꾸어진 해미초등학교의 잔디 구장이 와와!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아들녀석은 차안에 축구공을 하나 싣고 온 것은 자신의 선면지명이라며 거의 흥분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잔디 구장에서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쪽 골문을 차지하고, 생전 처음 잔디 구장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동생과 두 아이 모두 잔디 구장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남자들의 공차기를 거들어주는 아내도 잔디 구장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절로 신이 나는 기색이었습니다.

골문을 지키고 서서 아이들의 슛을 막고 하다보니 불현듯 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이 아슴히 떠올라 한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나도 젊은 시절 한때는 축구 선수였지…. 골키퍼로 지방에서나마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지…. 그 시절이 다 언제 어디로 가고, 이제는 건강 문제로 고심하며 살고 있는 계절…. 매일같이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며 사는 오늘의 내 신세가 절로 한심스러워지니 눈앞이 흐릿해질 수밖에…. 아빠의 마음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들녀석은 제 슈팅을 왕년의 축구 골키퍼였던 아빠도 막지 못했다고 기염을 토하고….

그래도 좋았습니다. 왕년의 축구 국가대표 명 풀백이었던 최종덕 선수를 배출한 해미초등학교의 잔디 구장에서 내 가족이 내고 있는 공 차는 소리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계속적으로 들리는 것만 함성, 환청 같기도 한 그 소리들이 줄곧 내게 한량없는 감회를 안겨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축구가 만들어 내는 국민적 열기, 월드컵 축구가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안겨 주고 있는 일체감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나 자신에게도 이상한 희망과 자신감을 안겨 주는 듯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가야산 석문봉에서 우리 가족이 힘차게 내질렀던 "대∼한민국"이라는 그 외침은 아주 오래 내 기억에 남을 것 같았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절로 즐거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가야산 가족 나들이는, 역시 참으로 잘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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