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꿈을

천안으로 떠나는 정선, 영애, 현진, 연숙, 수경, 은지에게

등록 2002.08.12 16:08수정 2002.08.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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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다. 밖은 아직 어둡고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가 오고 있는지 차량들이 지나갈 때마다 '철썩'하고 파도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런 소리들은 청량하지만 어딘지 구슬픈 감을 주기도 한다. 가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꾸만 몸을 뒤척이게 된다. 이런 순간에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정말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해서 나는 너희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오늘의 빅뉴스는 너희들과의 잠시 동안의 작별! 정선, 영애, 현진, 연숙, 수경, 그리고 은지. 이제 몇 시간 뒤에는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얼굴들.

이 아침, 나는 너희들에게 작별의 말 대신 이런 기도를 하고 싶어진단다. 삶의 어느 화려한 순간보다도,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이며 홀로 눈을 떴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너희들이 되게 해달라고.

세상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직업도 많지만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란다. 아니, 겉보기에 화사한 직업일수록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지.

그것도 알고 보면 그들을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사랑은 받는 것보다도 주는 것이 더 힘이 되니까 말이지. 그러니 너희들은 그곳에 가면 무엇보다도 일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거라.

나도 가끔 내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보곤 한단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 물음에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단다.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리고 또한 너희들이 있지. 그리고 교사로서의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의 뿌리가 튼튼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 시를 읽어보면 선생님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집과 직장이
버스 한 정류장 사이라
밖에서 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이번 정류장은 효산 고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삼성 아파트입니다"

가슴 뭉클해진다
요즘 나의 행복이다.
-졸시, '시내버스 안에서'


아주 짧은 시야. 하지만 시가 감동이라면 나는 이 두 줄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란다. 상냥하지만 기계음일 뿐인, "이번 정류장은 효산 고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삼성 아파트입니다" 연이어 들리는 그 단 두 마디가 내게 감동과 행복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단다. 신이 주신 나의 삶 속에서 단 한 사람, 아내에게만이라도 충실한 사람일 수 있다면 생의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 내게 생명을 주신 그분을 부끄럽지 않게 뵐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 우선,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소중한 거지. 너희 여섯 명은 말 그대로 한 식구(밥을 같이 먹는 사람)가 되었느니 더 아끼고 사랑하거라. 그 사랑의 힘으로 어려움도 잘 이겨내고.

학교는 수천 수백 명의 생명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지. 성서에는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무려 수백 수천 명의 영혼이 한데 모인 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거야.

그런 학교의 주인공들인 너희들을 너무도 함부로 대접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려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그만 행복해지고 만단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지.

큰 꿈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거야. 꿈이 커도 혼자 위대해지려는 꿈은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가 쉽지. 작아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꿈을 꾸는 사람은 바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사람들 때문에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너희들로 인해 행복한 것처럼.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 한 가지만 당부하마. 조건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들이거라. 독서는 젊었을 때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나이 먹고는 잘 안된다고 하더라. 학벌과 상관이 없이 사람이 아름다운 성품과 지식을 지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독서라고 생각해. 행복을 주는 열쇠이기도 하고. 이 말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그럼 다시 소식 전하마.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거라.

추신: 오늘 밤 내 꿈 꿔!

2002년 8월 12일
사랑하는 담임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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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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