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부부와 나눈 저녁 한 끼의 행복

<시와 아이들> 12년만에 지킨 약속

등록 2002.08.25 14:08수정 2002.08.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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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 저녁 태성이가 당신 외식 시켜준대."
"언제 전화 왔어요?"
"조금 전에."
"왜, 사양하지 그랬어요. 아직은 힘들텐데."
"사양했지. 그런데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었나봐."

아내는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얼굴이 환하지가 않습니다. 제자 사랑도 부모 사랑과 다를 것이 없어서 주는 것은 편하지만 받는 것은 어딘지 불편하지요. 아내도 그런 심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내는 다시 채근대기 시작합니다.

"지금 다시 전화해요."
"안돼. 사실은 그럴 일이 있거든."
"무슨 일?"
"나하고 약속을 했었거든. 돈 벌면 당신과 나 근사한 곳에서 식사 대접해주겠다고 말이야."
"난 또 뭐라고."

태성이는 제가 첫 담임을 하던 해에 만난 아이입니다. 흔히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첫 배 새끼'라고도 합니다. 이제는 '아이'라는 말도, '새끼'라는 말도 쓸 수 없는 서른 세 살의 준수한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그가 저에게 식사 대접 약속을 한 것은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제자들을 만나면 흔히 듣곤 했던 그런 인사치레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12년 전의 일입니다. 그 해 가을, 우리는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숫가로 학교 소풍을 갔습니다. 지금처럼 테마 소풍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계획을 잡거나 하지 않고 점심이나 먹고 해산하는 것이 그 무렵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심 시간이 다 지나도 반장인 태성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아이들을 시켜 찾아보라고 했지만 매번 그냥 돌아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반 아이들을 총 동원하여 호수 근처 숲을 샅샅이 뒤져서야 그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선생님, 가지 마십시오. 잠에서 깨면 혼자 내려오실 겁니다."
그가 자고 있다는 숲 속 무덤가로 가려는 저를 막아서고 한 아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같은 동급생인데도 높임말을 쓴 것은 태성이가 집안 사정으로 학교가 늦어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 3중에서도 유일하게 성년식을 치른 학생이었는데, 사람됨됨이도 그만하여 아이들이 잘 따랐던 것입니다.


저는 그가 반장을 맡고 있으면서 학급을 신경 쓰지 않고 개인적인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왠지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믿었던 제자의 흐트러진 모습에 혹시라도 실망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빛이 너무 예뻐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태성이를 혼자 놔두고 그냥 산을 내려올 수는 없어서 아이들을 모두 보낸 뒤에 혼자 남아 호수 근처에서 그가 잠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무엇이 그를 혼자 있고 싶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잠을 자고 있다면 술을 입에 댔을 가능성이 많은데, 그것도 평소의 그의 모습이 아니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 시간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호수와 찻길 사이를 서성이며 가지고 왔던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멀리서 그가 산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잘 잤니?"
"죄송합니다. 선생님."
"속이 좀 쓰리겠구나."
"아닙니다."

그날 저는 그를 데리고 화려한 실내장식이 퍽 인상적인 레스토랑을 겸한 생맥주 집을 찾았습니다. 고 3인데다가 가을이었고, 이미 성년의 턱을 넘은 터라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개신교 신자로서 술을 멀리하려고 노력해온 저로서는 아직 학생인 제자와 동석한 술좌석이 조심스럽긴 했습니다. 그때까지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 아닌 비밀이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제자 부부와 마주 앉은 저녁 자리에서 저는 그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제자가 12년만에 지킨 저와의 약속, 그 내막을 아내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밑그림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생맥주와 함께 간단한 저녁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는 이렇게 말을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 제가 첫 월급을 타면 우리 어머니 속옷 먼저 해드리고, 그리고 꼭 선생님과 사모님 모시고 꼭 이런 근사한 데서 저녁 식사를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태성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숙박업소에서 험한 일을 하시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랍니다. 남자만 다섯 형제를 혼자의 힘으로 길어내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너무 컸던 터라, 그해 태성이는 학교 취업 추천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국내 굴지 회사 입사를 마다하고 도배 일에 뛰어듭니다.

면접시 가족사항을 보겠다는 단서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것을 염려하여 어머니의 직업을 숨기거나 달리 하여 대답하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 직업으로 다섯 형제를 키우셨고, 그런 어머니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는 오랜 고생 끝에 지금은 '종이 없는 벽지' 순천· 보성 지역 특약점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아직은 작은 규모이지만 전도가 유망한 직종의 어엿한 사장입니다. 그는 멀리 완도에서 아내와 함께 도배 일을 하면서 아이엠에프의 서슬 퍼런 위기상황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몇 해 전, 그는 완도에서 전화를 걸어와 약간 취기가 있는 목소리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가을 소풍 기억 나시죠. 그때 제가 약속 드렸지요. 선생님하고 사모님 꼭 한 번 모신다고요. 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날 산에서 술이 취해 잠을 자다가 늦게 내려온 저를 보시고 한 마디 꾸중도 하지 않으셨는데, 그것이 사실은 제게 더 큰 매가 되었다는 거, 선생님 아시죠?"

그런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젊은 제자 부부를 바라보는 심정도 과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리를 안내한 식당도 '종이 없는 벽지'로 그가 직접 시공한 깨끗하고 아담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직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단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제자가 직접 시공한 공간에서 제자가 대접해주는 저녁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선생하는 보람이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의 아내를 '세희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두 젊고 아름다운 부부가 만든 곱고 어여쁜 딸 이름이 세희입니다. 저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세희를 무릎에 앉히고는 저에게 '자기'라고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반 아이들 중에는 저를 그렇게 부르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그러자 세희 엄마가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었습니다.

제자의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희 엄마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희가 사랑을 많이 받아요. 내리사랑이라 그러기도 하지만, 첫 애 때만 해도 저이도 아직 철도 덜 들고, 생활 때문에 고생도 좀 했구요. 지금은 그런 남편 없어요."

저는 그 말이 미덥게만 느껴졌습니다. 마치 영민하고 튼실한 며느리를 둔 그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정말 그랬습니다. 제자의 아내는 곧 제 자식의 아내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젊은 부부가 완도에서 보낸 아픈 세월들이 약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내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늙었나봐. 젊은 부부가 서로 아껴주고 서로 칭찬해주고 그러는 것이 왜 그렇게 좋아 보여요. 당신도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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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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