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단절, 그 아픔과 회복에 대해

존 헐 교수의 <손끝으로 느끼는 세상>을 읽고

등록 2002.08.23 10:18수정 2002.08.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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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교사에게 방학은 모처럼 책을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물론 학생들도 그렇지요. 방학은 여행과 독서, 이 두 가지면 족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쩌면 방학중 보충·자율학습이 아이들에게 빼앗아간 것은 무엇보다도 큰 스승인 책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책을 왜 읽는가? 즐거움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어떤 말초적인 즐거움과는 달리 연습이 필요한 즐거움입니다. 학창 시절에 책을 멀리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 책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외국 영화를 보면 피서지에서 책을 읽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소일거리가 없는 고독한 노년을 보내면서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두 세계를 모두 잃어버린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를 통해 얻어진 감동이나 지식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교사의 책읽기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유익으로 돌아갑니다. 부모의 책읽기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책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책읽기가 힘을 발휘하는 지점은 바로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방학 동안 읽은 책을 세어보니 시집을 빼고 8권입니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감동의 양으로 환산해본다면 나름대로는 흡족한 수준입니다. 그 중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가슴을 짓누르며 새롭게 퍼지는 아픔'을 느끼며 읽어야 했던 한 권의 책을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손끝으로 느끼는 세상>(우리교육)이 바로 그 책입니다.

저자인 존 헐 교수는 열 세살 무렵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처음 경험한 후 '36년 동안이나 어둠과 격렬히 맞서 싸웠지만' 마흔 여덟 살에 완전히 시력을 잃고 맙니다. 그가 시각장애인이 되는 과정의 세월도 길었지만,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완전한 깨달음을 갖는데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적절한 비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가을이 하루만에 완성되지 않듯이 그의 아픔도 한 순간의 치열함이나 결렬함으로 끝을 내지는 않습니다. 초록이 스러지고 갈색마저 퇴색하여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얻기까지, 그의 아픔 또한 단 한 순간의 에누리도 없이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완성이 됩니다.


만약 그가 성숙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후천성 시각장애인으로 겪어야 했던 통과의례가 조금은 손쉬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 대신 우리가 귀 기울여야할 다음과 같은 금언은 들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에 대한 타협이 없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부정과 좌절을 겪으며 조각난 세계 안에 살 게 될 것이다.’


아들 토마스가 태어나기 3주 전에 그는 마지막 눈 수술을 받습니다. 그 무렵에 쓴 두 편의 일기에는 그가 시각장애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 담담하면서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8월 1일에 마지막으로 눈 수술을 받았다. 토마스는 8월 22일에 태어났다. 토마스의 나이를 헤아리면 내가 언제부터 시각장애인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18개월 정도까지 토마스의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 가까이에선 아이가 어디서 자고 있는지 무슨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하게 잘 떠올릴 수 는 없지만, 아기 때 눈으로 말하는 작은 표현이나 감정의 그림자를 짐작할 수 있었다.'

'1981년 여름 웨일스 해변에서 토마스의 발목에다 끈을 묶곤 했다. 토마스가 10미터 이상 멀리 기어가게 되면 내가 다시 그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자 아는 도서관 계단에서 아이를 데리고 놀곤 했다. 토요일 오후의 겨울 캠퍼스는 매우 조용했다.

아이가 곁에 없어도 자갈길을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혼자 놀도록 내버려두었다. 가끔은 깜짝 놀라 아이 뒤를 쫓기도 했다. 붙잡기도 전에 아이가 모서리 따위에 부딪히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아이는 점점 더 활발해지는데, 내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놀아 주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시각장애인이 됨으로써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놀아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나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걱정 같은 것은 신체적으로 불편한 시각장애인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비장애인이었을 때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과 직면하게 되면서 시각장애인이 신체적 장애인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는 '화창한 날이군요'라는 상대의 인사에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어 당황해야 했고,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확 트인 공간보다 계단이 더 안전하고, 눈이 오면 미끄러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길을 안내하는 모든 신호가 묻혀 버려서 아예 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소통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 서 있는 '자아'의 아픔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의 사회적 자아의 상실은 곧 실존적 자아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시될 수 있으며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루어지고, 3인칭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당신은 그를 돌볼 겁니까?" "당신이 그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주시겠습니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인 친구와 인사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해도 그는 보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사람들 또한 그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어떤 이상하고도 매우 비인간적인 느낌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 느낌은 바로 바람을 막기 위해 목도리로 얼굴의 아랫부분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감싸고 다닐 수 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엄동설한이라고 해도 목도리로 얼굴 전체를 감싸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눈을 가리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만은 예외입니다. 목도리에 눈을 가리우지 않아도 어차피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굴 전체가 사라져도 내겐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안 보이는 존재라는 느낌은, 내가 나 자신에게도 안 보이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이것은 자의식이 결여되어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된다는 의미이다. (…) 타인에게 보인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인에게 보이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목도리로 가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자기 존재의 상실감이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확인될 때의 아픔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런 통찰은 사랑하는 시각 장애인에게 자기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욕구와도 통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야 안에서 존재하기를 갈망하며 그 사람에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야 안에서 존재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입니다. 어느 날 그의 딸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나는 아빠가 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표현 뒤에 숨겨져 있는 생각은 단지 자기의 재롱 떠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이다운 느낌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시각장애인인 아빠에게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그는 슬픈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저자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 허우적대지 않고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가족과의 소통도 차츰 원만해지고, 하나님과의 불편했던 관계의 벽도 허물어져 마침내 신의 축복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요란한 인간승리의 성공담으로 소개되고 있지 않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는 한 순간의 기적에 의존하지 않고 더할 수 없는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소통할 수 없는 세상을 소통이 가능한 세상으로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그런 노력에 의하여 시각장애인이면서도 그의 교수직은 계속됩니다. 그 비결을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진정한 기적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손상된 육체를 이해함으로써 과거의 온전한 세계에 대한 기대를 던져 버릴 수 있을 때 일어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저는 '가슴을 짓누르며 새롭게 퍼지는 아픔'이 그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었지만 연민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는 장애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책장을 덮기까지 제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의 진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실과 상식이 소통되지 않는 공간 속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 말입니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성에 사는 아이들 말입니다. 정작 자신이 '자기를 성찰할 줄 모르는' 인간적, 혹은 사회적 장애인들인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어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말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아픔이 단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또한, 나뭇가지에 달린 잎새들이 한 모양새로 시들지 않는 것처럼 각각의 아픔이 다르리라는 사실에도 눈뜨게 되었습니다. 부당한 신체적 구속은 곧 아이들의 사회적 자아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는 그의 존재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 한 권 책으로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겪을 상처와 아픔에 더 예민한 교사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 '아픔에 대한 예민함'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소통의 단절을 회복해 가는 유일한 대안임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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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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