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시국 앞에서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2.09.22 01:42수정 2002.09.22 12:15
0
원고료로 응원
쓸쓸한 가을인데, 여러분은 아직도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 볼 마음이 있으신지? 시계는 이 한밤중에도 초침을 돌리고 있으니 대통령 선거날도 언젠가는 오겠고 그 지겨운 정치 싸움도 모양이 달라질 때는 있겠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근 백일 동안 세상은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북한과 일본이 수교 교섭 하는 걸 보니 마음은 더욱 착잡하다. 나로 말하면 북한의 현 정권 알기를 박정희 정권 보듯이 하는 사람이다. 그 행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에 민주주의란 없다. '어버이' 김일성 '수령'을 계승한 김정일 정권도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의 식민지배를 어물쩍 넘겨버릴 것이다.


오늘 나는 해방 직후 서울의 요릿집 봉황각이라는 곳에서 열린 문학인들의 좌담회를 다시 읽었다. 이태준, 임화, 김남천, 한설야... 그들은 어지러운 시대에 끝내 월북을 택한 이들인데 그들 가운데 누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가.

남쪽에 동백림이니 인혁당이 있었다면 북쪽에는 미제 프락치 사건이 있었다. 북쪽의 정권은 남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왕조적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나는 일본이 어떤 얄팍한 머리로 식민지 배상 문제를 어물쩍 넘기려는지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이때 그간에 벌어진 일련의 일본인 납치는 그들을 위해 훌륭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다. 열 명 남짓한 일본인과 36년 식민 지배 사이의 빅딜이라. 그런 것이 김정일 정권 아래서는 가능하다. 박정희의 대한민국에서 그러했듯이.

앞으로 펼쳐질 대통령 선거 국면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수십년 특권과 부패를 자행한 정치세력이 풋내기 부패 정권을 심판하는 일을 나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썩어 5년 기회를 썩혀버린 현 정권의 말로를 나는 목도할 것이다. 친일파, 체중미달, 호화빌라, 원정출산이 안정감 부족한 민주당 후보와 재벌의 후계자와 힘겨루기를 벌이는 광경을 관람료 없이 지켜보게 될 것이다.


부리나케 고향에 내려갔다 오니 귀성했던 사람이 많지 않았는지 서울은 한가위날인데도 혼잡스럽기만 하다. 명절 같지 않은 명절이다.

생각한다. 정치현상을 냉정하게 관조해야겠다고. 권력이 누구 수중에 들어가든, 고이즈미가 식민지 배상을 어떻게 회피하려 하든, 나는 그것들에 감정을 소모해서는 안되겠다고. 그것들 이면에 놓인 흐름을 보아야 한다고.


과연 한반도는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 것일까. 이땅의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래바람이 내려앉을 때까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