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살수술 할까, 아니면 그돈으로...

책 속의 노년(41) :〈나는 주름살 수술 대신 터키로 여행간다〉

등록 2002.11.13 21:02수정 2002.11.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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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의 살기가 빠져 잔 줄이 진 금들. 살갗이 느즈러져서 생긴 잔금. 주름을 설명하는 사전의 풀이이다. 그 주름이 잡힌 금을 주름살이라 한다는 설명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이마에는 조금 굵은 주름 두어 개가 약간 흐리게 가로지르고 있고, 웃을 때 눈꼬리에 잡히는 주름은 이미 굵게 자리 잡았다. 거기다가 미간에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세로 주름은 기분 나쁘게 인상 쓰는대로 주름이 잡힌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또 여자는 목부터 늙는다고 했던가. 목에 뚜렷이 새겨진 줄은 턱 밑의 늘어진 살과 더불어 내가 이제 주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마흔 셋,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나의 주름살들이다.

늘 주름 가득한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해서였을까. 수술을 한들, 피부 관리를 한들, 조금 늦출 수 있을 뿐 주름에서 영영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기에 착하고 깨끗한 얼굴로 늙어갈 것을 속으로 되새기고 되새겨왔다.

그러나 어느 누군들 나이듦에서 자유로울까.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았던 내 얼굴에서 발견하는 주름살은 새삼스레 나의 나이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늙음을 상기시켜주곤 한다. 잘 늙어야겠다는 각오는 성숙함으로 노년기를 보내야겠다는 결심과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는 노년기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있는 50대 여성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저자는 50대 이후의 여성들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완숙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책의 제목을 "완숙 토마토(Juicy Tomatoes)"로 붙였다.

'중년이 도대체 뭐길래, 그건 단지 종이 한 장 차이다, 폐경기를 이겨내기, 열정의 불을 지피자,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어, 냉엄한 현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자, 위를 보자'라는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이나 형식의 구분 없이 중년 여성들이 자유롭게 나눈 이야기들을 그 말투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나이 드는 것이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사회에서 특히 나이 먹은 여자들의 뒤를 따르는 부정적인 시선들은, 가뜩이나 폐경으로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겪는 중년 여성들에게 무지막지한 공격이 된다는 것을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또 나이를 물어보는 것을 대단히 무례한 일로 여기는 미국 사회가 확실히 우리보다 더욱 심하게 나이듦에 대해 부정하고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고 노년의 생활이 훨씬 풍요롭다 해도, 나이듦 자체를 피하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노년의 삶이란 과연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주름살 수술과 유방암, 성적인 파트너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미국 여성들의 이야기는 간접 경험의 차원에서 유용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현실과는 조금 멀기에, 우리의 중년 여성들 목소리를 한 번 담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이야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여성이 그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역시 노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중년에 경험하는 위기감은 사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이기에 나이듦에 대한 위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회가 그것을 도와야 한다.

주름살을 자연스런 삶의 흔적으로 보면서, 개성과 경험이 배어나는 나이 든 얼굴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될 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년과 노년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온전한 생의 일부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주름살 수술 대신, 그동안 늘 우선 순위에서 밀렸던 자기만을 위한 일에 그 돈을 쓰는 중년과 노년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면 참 기분 좋고 행복할 것 같다. 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누구에게나 오늘은 나머지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까.

그런데 번역할 때 "AARP"를 '미국 최대의 노인회'보다는 '전미은퇴자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로, 베티 프리단의 저서 "Fountain of Age"를 '나이의 분수'보다는 '노년의 샘'으로 번역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주름살 수술 대신 터키로 여행간다 Juicy Tomatoes, 수잔 스왈츠 지음, 이혜경 옮김, 나무생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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