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재벌', 중국은 '외자기업'

<차이나소프트 경제 5>
외자기업 끌어들여 생산력 향상-고용창출-기술력 학습 등 효과

등록 2002.11.29 21:45수정 2002.11.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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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 외자기업 유치해 산업 발판으로 삼아

중국 최대 외자기업중 하나인 상하이 따종의 신차발표회
중국 최대 외자기업중 하나인 상하이 따종의 신차발표회상하이따종홈
한국과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경제의 경우 재벌 중심구조임에 반해 중국기업은 외자기업이 중심 축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우리와 같이 재벌이라는 말에 언 듯 떠오르는 기업이 없다. 그럼에도 중국이 어떻게 단기간에 급속히 성장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은 외자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모토롤라, 폭스바겐 등 전자, 자동차 등 세계적인 대기업은 물론이고 KFC,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까지 중국은 거의 무차별적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했다.

한국전쟁 후 한국에 들어와 단물만 빨아먹고 떠난 협소한 시장을 가진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원료시장과 소비시장 등 외국기업을 통제할 힘이 있었다. 외국기업을 유치하고, 이윤이 나면 본국으로 송금하기보다는 중국에 재투자를 유도해 국부를 유출시키지 않고, 산업을 부흥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중국의 외자기업 유치 역사는 1980년 5월 1일 홍콩 상인 우잔더(吳沾德)가 중국민항 베이징(北京)관리국과 합자로 베이징 최초의 외자기업 '베이징항공식품유한공사'를 설립하는데서 시작돼 지금은 40여만개 기업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중국 국가수출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면서 끊임없이 중국에 투자하고 있다.

외자기업으로 중국이 얻어낸 최대의 성과는 수출 증대도 있지만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현재 중국 정부가 밝히는 외자기업 취업인구는 중국 비농업 종사자의 10% 정도여서 실업난 해소에 큰 공헌을 해왔다. 또 뒤떨어진 산업 기술력 증강에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들의 진출은 큰 도움이 됐다.

모토롤라, 삼성, LG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현지에 공장을 설립해 운영하던 초반만 하더라도 부품 공급 등은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부품 전문 외자기업에 의탁해야 했지만, 자국의 부품 생산업체에게 우대정책을 주는 방식 등으로 중국기업을 육성했고, 지금은 백색가전은 부품공급의 80%선까지 중국기업이 공급할 만큼 자국 산업의 기술력을 올렸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깨인 국영 전자기업들은 완제품의 생산에 들어가 하이얼, 마이더(美的), 창홍, 춘란, 커롱 등은 외자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또 외자기업의 급속한 진출은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의 마인드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소비문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눈뜨게 했고, 선진적인 경영이나 인사, 관리 마인드를 가진 외자기업은 중국기업에도 깊은 인상을 줘서 중국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유리하게 했다.

그럼 어떤 외자기업이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까. 외국기업 가운데 판매액 기준으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기업은 모토롤라다. 톈진에 발판들 둔 모토롤라는 2001년 410억7천만위안(한화 6조15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려 2년 연속 수위를 달렸다. 모토롤라는 2002년 10월 1억7600만대를 돌파한 중국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에 선두를 지키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끌었다.


또 중국 중형차 시장에 절대강자로 독일의 ‘폭스바겐’이 합작투자한 상하이 따중(上海大衆) 자동차판매와 상하이 따중은 각각 2, 3위를 마크했다. 그밖에 베이징 서우신(首信) 노키아, 이치따중(一汽大衆), 이치따중 자동차판매, 베이징 롄샹(聯想), 화넝(華能)국제전력, 상하이 지멘스, 난징(南京)에릭슨 등이 뒤를 이었다.

사실 10대 외자기업을 포함해 40만개에 달하는 외국기업이 있지만 중국은 이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물론이고 시나, 현(縣) 혹은 개발구 단위로 다양한 제도와 규제, 혜택을 통해 외국기업을 통제한다. 물론 대형 외국기업에게는 투자를 더 유도하기 위한 혜택을 줘서 계속적인 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본국으로의 송환 대신에 중국 내 재투자를 하도록 유도한다.

반면에 한국이나 대만, 일본, 홍콩 등의 중소형 기업들은 증치세나 각종 세수를 통해 통제한다. 이들은 세제는 물론이고 노사분규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중소형 외자기업이 가진 역량을 자국 기업이 흡수하도록 하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 대만 등 중국 이외에 대안을 찾기 어려운 국가들의 기업은 정부에 휘둘리는 일이 허다하다.

부동산 중심의 부자군에 신흥 부자들 끼어들어

중국 성공신화의 상징인 시왕그룹의 홈페이지.
중국 성공신화의 상징인 시왕그룹의 홈페이지.
그럼 크고 작은 외자기업이 활동하고 있는데 중국의 대기업은 없을까. 특이하게도 중국에는 우리와 같은 재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중국에 재벌은 없지만 부자는 많다. 중국의 부자는 한국의 재벌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재벌이 경제의 다양한 방향으로 촉수를 뻗어서 경제 규모는 물론이고 기업가의 재산이 부자 랭킹을 휩쓰는 반면에 중국의 부자들은 단순히 가지고 있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지 기업 규모로 평가하지 않는다. 중국의 부자는 자산 규모를 넘는 대출에 시달리거나 주주총회 등에 휘둘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부자는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최근에야 주식이 재산가치로 높게 평가받지만 주식보다는 부동산 등이 부의 원천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 11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최고갑부눈 ‘래리융’이다.

상하이 출신의 부동산 부자인 래리융은 8억5천만달러(한화 1조200억원 가량)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위도 7억8천만달러를 보유한 부동산 부자 주룽마오다. 군출신으로 오지에 해산물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사업으로 순식간에 부를 거머쥔 수광신과 자동차 부품업을 하는 루 관치와 중국 최고 여성갑부인 천리화 등이 다음에 랭크됐다. 또 최소 1000만위안(15억원 가량) 이상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도 50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부자들은 기업의 번창보다는 부동산사업을 중심으로 번창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의 부동산 개발이 엄청난 열기를 뿜으면서 미리 상황을 내다본 이들이 갑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전반적으로 부동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가장 많고, 의약업, 농업, 건축업, 부품업 등이 많으며, 한때 반짝했던 주요 포탈의 경영자 띵레이, 장차우양, 왕즈둥 등은 급속한 퇴조 분위기다.

시왕 그룹의 사장 류융하오가 토론회에 나와 포스트 WTO 시대를 설명하고 있다
시왕 그룹의 사장 류융하오가 토론회에 나와 포스트 WTO 시대를 설명하고 있다신랑왕
부자의 출처는 다양해 졌지만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 LG, SK 같은 재벌기업은 없다. 석유나 철강, 전신, 통신 등 기간산업을 제외한 일반 기업 가운데 부자기업으로는 컴퓨터의 롄상, 맥주의 칭다오, 사료의 시왕(希望), 전자산업의 하이얼과 창홍, 이동통신의 TCL과 뽀다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대부분 특정분야에만 치중하고 있지 한국의 재벌처럼 사업 분야를 확장하는 기업은 드물다. 대부분 기업들이 국영기업이어서 문어발식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워낙에 거대한 땅이어서 한분야로 전국을 얻기도 힘든데, 다양한 분야로 가는 것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 사영기업이 ‘지두안’(集團 그룹과 같은 의미)에 머물 뿐 ‘재벌’로 가지 못하는 것은 사영기업의 역사가 길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 기업들 역시 한국의 대기업과 같은 거대한 위력의 재벌을 꿈꾼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 사료업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해낸 시왕 그룹을 들 수 있다.

중국 전문가 강효백씨가 출간한 ‘중국인의 상술’에서도 자세히 소개한 시왕(希望)그룹은 류융싱(劉永行)과 류융하우(劉永好) 형제 등 남매가 이끌고 있는데 최근에는 사료는 물론이고 부동산, 금융, 전자, 화공, 유가공업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면서 재벌의 면모를 구축해 가고 있다. 그러나 사료업 자체로만 중국 시장의 몫이 엄청나고, 태국 등 해외진출도 준비하기 때문에 그룹의 주력은 사료로 가면서 회사의 자산을 유지하는 확실한 투자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기업의 브랜드가치를 최대한 살리되 잉여되는 부분을 사료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금기 풀리면서 ‘경제동물’ 본성 되살아나

2002년 베이징부동산전시회의 한 부스
2002년 베이징부동산전시회의 한 부스부동산전시회홈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부자 될 권리에 경계심을 가졌다. 중국 공산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처형된 것은 농촌의 지주나 도시의 자본가들이었다. 물론 49년 공산화 이후에는 지주나 자본가들에게 약간의 완화조치를 폈지만 한국전쟁이 끝나는 시점에 중국 내에도 대중운동의 차원에서 ‘반혁명분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다시 시작되어, 부자들은 다시금 수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부자들에게 최악의 사태는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을 흔든 문화 대 혁명기였다. 당시에는 부를 축적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부자의 흔적이나 유산들마저 파괴되고,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었다. 당연히 현대중국에서 부자란 곧 수난의 대상이었다.

중국 정부나 위정자들 역시 이런 역사의 교훈을 쉽사리 잊지 못한다. 또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의 문제는 성난 민중에게 어떤 동기를 제공해줄지 정치가들 역시 결코 장담하지 못한 것이 중국역사였고, 위정자들 역시 그것을 안다. 때문에 2002년 11월 열린 16기 전국대표대회에서‘3개 대표’이론과 더불어 ‘샤오캉’(小康)이 중심 주제로 떠올랐다.

맹자가 환고고독(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없는 사람) 등도 생활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 ‘샤오캉’이란 단어가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이상 샤오캉에서 벗어나 부유한 자들은 약간의 부담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자본가의 입당을 허용하는 조치가 취해졌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부자들에게는 앞서서 몰락한 이들이 보일 것이다.

중국이 말하는 샤오캉 사회의 기준인 현재의 상하이. 1인당 국민소득 4000천불 정도의 사회를 말한다
중국이 말하는 샤오캉 사회의 기준인 현재의 상하이. 1인당 국민소득 4000천불 정도의 사회를 말한다
몰락한 부자의 대명사는 라이창싱(賴昌星)이다. 그는 원유,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밀수해 66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부를 누리다가 밀수사건에 연루되어 도피중이다. 중국인들에게는 배우지 않아야할 부자상으로 꼽힌다. 또 배우 출신으로 여성 부호의 상징인 류샤오칭(劉曉慶)도 탈세혐의로 투옥돼 불우한 말년을 지내고 있다.

채무를 갚지 못해 호화주택 등 전 재산이 법원에 의해 강제 경매처분 되는 등 수난의 연속이다. 톈진 따치우좡(大邱莊)의 갑부인 위쭤민(禹作敏)도 사법기관과 싸우다가 망했다. 증시에서 거부가 됐다가 역시 증시에서 홀땅 망한 뤼량((呂樑) 등도 그런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몰락한 부자는 타산지석일 뿐 중국인들의 부자의 꿈은 계속된다.

현재의 중국 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이룩된 것이다. 덩샤오핑이 실질적으로 집권한 80년 이후가 중국 경제 개방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 성과를 누가 봐도 놀랄만한 것이다. 그 급성장과 더불어 금기되던‘부자될 권리’가 거의 완전히 해금됐다. 당연히 ‘경제 동물’이라던 중국인들의 본성은 고스란히 되살아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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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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