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구명은 이회옥을 침상에 눕힌 후 저잣거리에 나가 술과 돼지고기를 사왔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가서 요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부친 사후(死後) 처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요리였다.
"녀석! 동파육(東坡肉)이라는 음식은 처음일 걸? 어제 먹은 만두는 상대가 안되지. 아암! 누가 만드는데? 장차 무림에 쟁쟁한 명성을 드날릴 나, 왕구명이 만드는데… 아암! 맛이 있고 말고… 후후! 녀석의 배가 올챙이배처럼 볼록 튀어나올 모습을 상상하니 무지하게 웃기는 군. 후후후!"
왕구명은 제법 요리 솜씨가 있는데 그 중 동파육이라는 요리를 가장 잘 했다. 선친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동파육이란 항주(杭州)의 전통 요리로 처음 이것이 만들어지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하나이자 북송(北宋)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蘇東坡)가 항주의 관리로 있을 때였다. 그는 인부들을 동원하여 서호(西湖)를 준설(浚渫)하였고, 제방을 쌓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주위 논밭은 관개(灌漑)의 혜택을 입게 되었고, 자연 백성들의 근심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제방을 소공제(蘇公堤)라 불렀다. 봄철에 이 제방에서 낙조(落照)를 바라보는 것을 소제춘효(蘇堤春曉)라 하며 이를 서호십경(西湖十景) 중 제일경으로 친다.
이듬해 백성들은 대풍(大豊)을 거두었다. 이 모든 것이 소동파의 서호 준설로 인한 덕이라며 너도나도 돼지와 술을 들고 그에게 세배를 갔다. 그들이 가지고 온 돼지고기를 본 소동파는 그것을 사각형 덩어리로 썬 후, 잘 삶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술과 함께 제방을 쌓을 때 일을 했던 인부들의 집집마다 돌리라고 하였다.
명을 내린 자신보다는 실제로 땀흘려 준설을 하고 제방을 쌓은 그들이야말로 먹고 마실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그의 부인은 술과 함께 보내라(連酒一起送)를 술과 함께 삶아라(連酒一起燒)로 잘못 듣고 말았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술에 넣고 푹 삶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만들어진 홍소육(紅燒肉)이 너무도 향기롭고 맛이 있었다. 사람들은 소동파가 하찮은 인부들을 잊지 않은 것에 감동하였고, 그가 보내 주었던 고기를 동파육이라 명명(命名)하였다. 이것이 동파육에 얽힌 이야기이다.
"하하! 녀석 자고 일어나면 깜짝 놀라겠지? 아하암! 밤을 꼬박 샜더니 너무 졸립군. 에구…! 이만 자야 이따 또 나가지."
하품을 한 왕구명은 자신의 침상으로 기어올라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잠든 그의 입가에는 흡족하다는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마도 잠에서 깨어난 이회옥이 동파육의 기막힌 맛에 감탄하는 모습을 꿈으로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편, 잠에서 깨어난 이회옥은 향긋한 냄새에 이끌려 나와보니 탁자 위에 그릇이 있었고 옆에는 쪽지가 하나있었다.
옥아, 이것은 지저분한 것을 청소하느라 애쓴 네게 주는 상이다. 너무 급하게 먹으면 체하니 급히 먹지 말아라. 알았지?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청소는 안 해도 된다. 너는 이제 우형의 아우이니 그냥 책이나 보도록 해라.
우형(愚兄) 왕구명
"혀, 형…!"
이회옥은 또 다시 눈 두덩이가 뜨거워지고 콧날이 시큰하였다. 그리고 이내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왕구명이 근무를 마치고 온 시간은 묘시(卯時)가 지나서였을 것이다. 밤새 근무를 하고 왔으면 몹시 피곤하고 졸릴 터인데 자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애써 장을 보고 요리까지 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그 정성에 감동한 것이다.
"형, 맛있게 잘 먹을게. 고마워!"
이날 이회옥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눈물 젖은 고기를 먹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따뜻한 정이었고, 형제간의 우애였다.
이회옥은 왕구명이 깨어나면 그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동파육을 먹으면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눈이 퉁퉁 부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를 보기만 해도 또 눈물이 솟을 것만 같아서였다.
하여 서둘러 서고로 들어갔다. 그곳을 먼저 정리하면서 보고 싶은 책들을 미리 골라두려는 것이었다. 서고를 정리하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전에는 누가 정리를 하였는지 전혀 분류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시대별도 아니고, 저자별로 꽂아둔 것도 아니었다. 하여 이회옥은 거의 모든 서책들을 빼내고 다시 꼽는 일은 하여야만 하였다. 가장 먼저 분류한 것은 문(文)과 무(武)를 분류하는 것이었다.
서고에는 무공에 관한 서책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그것들은 다른 책들 뒤에 꼽혀 있었기에 거의 손을 타지 않은 듯하였다. 다시 말해 무공에 관한 서책들을 꼽아 놓고 그 앞에 다른 종류의 서책들을 꼽아 두었다는 것이다.
"휴우…! 정말 무지하게 많구나. 그런데 이 많은 서책들은 대체 누가 모아둔 거지? 형에게 물어봐야겠구나."
어린 이회옥이 정리하기엔 끔찍하게도 많은 서책들을 보고 질린 그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지만 잠시도 손을 쉬지 않았다. 이왕 벌린 일이니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성품도 있지만 부친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부친인 이정기는 이 말에 코웃음을 쳤다. 넘치는 것은 넘치는 만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면서 무엇을 하든 확실히만 하라고 하였다. 하여 이회옥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곤 하였다.
그렇기에 비룡을 태극목장 제일로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경쟁상대였던 비호는 비룡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장일정이 알면 놀라겠지만 비룡의 등에 얹혀진 안장은 다른 안장에 비하여 월등히 무거운 것이었다. 속에 철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장은 말이 잘 달릴 수 없도록 잔뜩 조여져 있었다.
만일 이것을 보통 안장으로 바꾸고, 안장을 고정하는 끈을 조금만 느슨하게 해주었다면 훨훨 날아 다녔을 것이다. 이회옥이 이렇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건 말이건 아직 성장기에 있을 때에는 절대로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칫 관절을 상하거나 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비룡으로 하여금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무거운 안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반년간은 오로지 천천히 걷는 연습만 시켰다.
말이라는 동물은 달리기 위하여 태어난 동물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말들은 대부분 성질이 급하다. 따라서 천천히 걷는다는 것을 급한 성질을 죽인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급한 성질을 죽인다는 것은 단순히 성질만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천천히 걸으면 달릴 때에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된다. 무성한 수풀 사이에 대가리를 삐죽 내밀고 있는 독사를 볼 수도 있으며, 개구리나 쥐 등 작은 짐승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흙이나 바위의 색깔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그마한 돌들이 놓여 있는 각도나 크기에 따라 디딜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회옥은 비룡으로 하여금 다른 말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에 천천히 걷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성장하였고 조금씩 걷는 속도가 늘어났다. 이것이 계속되자 비룡은 달리면서도 걸을 때 보았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쏜살처럼 달리면서도 자그마한 돌들을 피해서 디딜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비룡을 타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다른 말과 달리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낙마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직 망아지이지만 비룡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닌 명마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어라…! 이 녀석 봐라?"
근무를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 온 왕구명은 탁자 위에 놓은 쪽지를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형! 헤헤, 밤새 근무하느라 힘들었지? 솜씨는 없지만 아우가 한번 만들어 봤어요. 맛이 없어도 욕하기 없기!
우제(愚弟) 이회옥
"하하! 녀석, 이건 완전히 내 흉내를 낸 거잖아? 녀석, 우제라는 말은 거의 안 쓰는 말인데. 흐음! 어디 보자. 어쭈! 아니, 이건…! 십금육정(十錦肉丁)? 후와아, 이런 걸 만들 줄 알았단 말이야? 어디 맛 좀 볼까?"
왕구명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않고 연신 집어먹었다. 십금육정은 안휘성(安徽省)에서 전래된 요리로 환남(晥南), 연강(沿江), 회북(淮北) 요리가 모여 구성된 것이다.
돼지고기를 네모지게 썰은 후 술과 양념에 버무려 두었다가 기름에 튀기는데 이때 고추를 천천히 볶으면서 매운 맛을 더하고, 이어서 완두, 콩, 버섯 등을 함께 볶아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분으로 만든 즙을 부어 완성하는 것이다.
"후와! 맛이 있는데? 이건 내 동파육과 삐까삐까한 수준인데?"
너무도 맛이 있었기에 왕구명은 선 채로 그릇 속에 담겨 있던 것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십금육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안내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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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천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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