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

첫 눈에 반했어(2)

등록 2003.01.18 14:24수정 2003.01.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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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황급히 비탈길을 내려가는 이회옥의 얼굴에는 후련함과 더불어 실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일 년이 넘도록 품에 지니고 있던 은자를 건넨 것 때문에 후련함을 느낀 것이고, 저도 모르게 웃기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계집애, 생긴 것은 되게 예쁘장하네. 헌데 누굴까? 여옥혜라고 했지? 호위무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집안의 여식은 아닌 듯한데… 흐음! 이 다음에 크면 색시로 삼을까? 후훗! 무슨 바보 같은 생각…! 나같이 아무것도 없는 놈이 어떻게 감히…"


이회옥은 깜찍하게 생긴 소녀와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물러났던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지? 이것들을 떼어내면 어떤 기분일까?"

이회옥은 적지 않게 가슴이 설렜다. 오늘로서 모래주머니와 가죽띠와 안녕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들 때문에 처음엔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던가!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묵직한 느낌에 걸을 수 없었고, 허리에서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었다. 또한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양쪽 발목과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도 있으면서도 마치 다람쥐처럼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릴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팔조차 제대로 펼 수 없었던 것은 옛말이 되어 있었다. 가죽띠도 그의 근력을 막을 수 없어 그의 봉에 의하여 웬만한 두께의 목판에 구멍을 뚫을 정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하! 어서 와라. 이제 그걸 떼어내고 대신 이걸 걸쳐라."
"그, 그건 뭔데?"
"후후! 이젠 네 몸이 커졌으니 모래주머니 가지고는 부족하지. 오늘부터는 이걸 걸치고 수련을 해."


이회옥은 왕구명이 펼쳐든 것을 보고 다소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금속으로 만든 그것은 몹시 육중해 보였던 것이다. 푸른빛을 발하는 것은 쇠로 만든 갑주(甲胄)였다.

"혀, 형! 그건 갑옷과 투구잖아."
"그래, 갑옷과 투구 맞아. 오늘부터는 이것을 착용하고 수련해. 네 몸이 커졌으니 이제부터는 이걸 착용해도 될 거야."

"모래주머니를 떼어내는 것이 끝이 아니었어?"
"이 녀석! 무림의 고수가 되기가 쉬운 줄 알았어? 뼈를 깎는 고통이 없이는 고수가 될 수 없다고 했지? 안 그러면 누군들 고수가 안 되겠냐? 이건 청룡갑(靑龍鉀)이라는 것으로 본가의 가주들에게만 전해지는 가보야. 하지만 너를 위해 특별히 꺼내왔어."

이회옥은 엄한 표정을 짓는 왕구명을 보고 괜스레 미안해졌다. 자신을 위하여 가보까지 꺼내왔다는 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자, 한번 걸쳐봐. 오랫동안 안 써서 녹은 많이 슬었지만 하루종일 기름칠을 했으니 뻑뻑하기는 해도 움직일 수는 있을 거야."
"아, 알았어."

이회옥은 상의를 벗고 갑옷의 팔 부분에 팔을 끼웠다. 다소 차갑다는 느낌이었지만 생각보다는 무겁지 않다는 느낌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룡갑은 다른 갑옷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을 걸치고 난 후 뒤에서 채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서는 도저히 걸치고 벗고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어깨부터 팔굽을 거쳐 손목부분까지 용수철(龍鬚鐵)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허리아래에서 무릎을 거쳐 발목까지도 용수철이 달려 있었다.

이것 때문인지 팔을 뻗으려해도 웬만해서는 뻗어지지 않았다. 또한 다리를 완전히 펴고 일어서는 것도 몹시도 힘겨웠다.

팔을 완전히 뻗어도 힘을 빼는 즉시 팔굽이 굽혀졌고, 그것은 하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힘을 빼면 자동적으로 쪼그려 앉은 자세가 되어 버렸다.

"하하! 이것도 써봐라."

왕구명은 쪼그려 앉은 이회옥의 머리 위에 투구를 씌웠다. 이것은 갑옷 상의에 채우게 되어 있는데 작은 용수철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하여 채우는 즉시 목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고개를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게 된 것이다. 갑주를 모두 걸치고 난 뒤 그 위에 의복을 걸치게 한 왕구명은 실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녀석, 꼴 좋구나. 자, 이제 한번 일어서 봐라."
"으으윽! 으으으윽!"

어떻게든 일어서려던 이회옥은 아무리 용을 써도 쉽게 팔다리가 펼쳐지지 않자 나지막한 신음을 토했다. 완전히 일어선 것은 거의 반각이 흐른 뒤였다.

그런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시만 힘을 빼도 즉각 오그라들게 되기 때문이다.

"혀, 형! 이거 안 하면 안 돼? 너무 힘들단 말이야."
"조금 전에 말했지? 고수가 되려면 이 정도 수련은 거쳐내야 해. 우리 청룡무관이 지금은 이렇듯 별 볼일 없지만 예전에는 근방 백 리에서 제일가는 무관이었다. 그런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청룡갑의 힘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회옥의 모습이 우습다는 듯 미소짓던 왕구명의 표정은 또 다시 엄숙해져 있었다. 하여 이회옥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지만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오늘부터는 잠을 잘 때에도 갑주를 걸쳐라. 알았지?"
"혀, 혀어엉! 으음!"

말을 마친 왕구명은 즉각 몸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향하였다. 그런 그의 뒤로 고통을 호소하려던 이회옥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말을 해도 풀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아앗!"
우당당탕!
"으으윽! 으으으윽!"

몸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향하려던 이회옥은 갑작스럽게 무릎이 굽혀짐과 동시에 그대로 나뒹굴고 말았다. 발을 떼면서 힘을 줘야 한다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었다.

"으으윽! 으으으윽…!"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거의 일 각이었다. 일어서려 여러 번 버둥거리는 동안 차츰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별 것 아닌 것 같던 용수철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이회옥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들어야 하였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온 몸에 쥐가 올라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주를 풀어주던 왕구명은 생각하면서 살라는 충고를 하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밤새도록 쪼그리지 않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하였다.

당장 용변을 보고 난 뒤 어찌 하겠느냐는 물음에 이회옥은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용변은 보겠지만 만일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면 분뇨통 안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면 꼼짝없이 빠져 죽어야 한다.

세상에 누가 있어 똥물에 빠져죽기를 원하겠는가!

"후후! 녀석아, 머리는 그냥 달려 있는 것이 아니야. 세상살이에는 요령이라는 것이 있어. 매사를 잘 생각해 봐라. 그러면 수가 있을 것이야. 잠자면서까지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설사 신이라 해도 불가능하지."

말을 마친 왕구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총총히 출근하였다. 이제 아까와 같은 상황이 되어도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회옥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 것은 한참 후였다.

"맞아! 그렇게 하면… 아앗!"
우당탕탕!
"으으윽! 으으으으윽…!"

뭔가를 떠올리고 황급히 몸을 돌리려던 이회옥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발을 떼는 즉시 무릎이 굽혀지면서 균형을 잃은 탓이다.

"제기랄! 바보 같이… 으으윽!"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간신히 일어선 그는 어기적거리는 괴상한 걸음걸이로 연장을 두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러는 동안 여러 차례 나뒹굴었다. 아직 청룡갑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못을 잡고 망치질을 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팔을 올렸다 내리는 동안 팔굽이 굽혀지면서 엉뚱한 곳을 내려치기 일쑤였던 것이다. 덕분에 손이 퉁퉁 부어 올랐다. 망치로 제 손을 여러 번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잠시도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반나절만에 이회옥은 처음으로 만족에 찬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침상에는 여러 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잘 때 갑옷을 거기에 걸치고 자기 위하여 박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힘을 주지 않아도 오그라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후후! 이제 되었어. 오늘은 편히 잘 수 있겠군. 어디 한번 올라가 볼까? 어어엇!"
와당탕탕!
"크으으윽! 이런 바보! 으으으…!"

아무 생각 없이 침상으로 오르려던 그는 무릎이 굽혀지면서 모서리에 걸리면서 그대로 나뒹굴고 말았다. 힘을 빼면 무릎이 굽혀진다는 것을 또 깜박했던 것이다.

"으으윽! 으으으…!"

천신만고 끝에 두 다리를 고정시킨 이회옥은 엉덩이 부분을 고정시킨 후 조심스럽게 두 팔까지 고정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까지 고정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데 거의 반 시진이나 걸렸다. 전신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면 모처럼 찾은 안락함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였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요의(尿意) 때문에 일어나려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용수철의 힘 때문에 못이 약간 휘어지면서 갑옷이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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