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먹은 무시레기가 대롱대롱 달려

지극히 원초적인 문제 해결을 하는 화장실 변천사<시골편>

등록 2003.01.18 18:40수정 2003.01.1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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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흙을 덕지덕지 붙인 옛 측간  지붕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흙을 덕지덕지 붙인 옛 측간 지붕 ⓒ 김규환


내가 살아온 만큼이나 화장실도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뒷간으로 시작하여 측간에 쪼그리고 앉더니 화장지를 들고 화장실 좌변기에서 편히 앉아 신문을 보고 toilet에서 샤워를 하고 나온다. 불과 30년 만에 겪은 일 치고 꽤 많은 일이고 속도마저 무섭다. 여전히 스님께선 해우소(解優所)에서 근심 걱정을 덜어내고 계신다.


시골집에선 측간( 間) 발음이 안되는 관계로 '칙간'이라 했다. 칙간이 본채에 있는 경우를 아직 본 적이 없는 나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허름한 응달쪽 아래 행랑채에 주목한다. 변소든 칙간이든 뒷간은 동시대에 태어난 사촌 형제나 마찬가지다.

행랑채 맨 왼쪽에 위치하는 곳이 측간이고 다음은 돼지우리, 그 다음이 소 외양간이다. 외양간 솥단지가 걸린 맨 오른쪽에 골방이 하나 있어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쓰였다. 이런 배치상 사람 똥꼬 쳐다볼 기회를 가진 녀석은 돼지다.

대가족이 모여 살아도 순서가 대체로 정해져 있으니 얼른 나오란 소리도 필요 없었다. 가마니를 잘라 앞쪽과 옆만 가리면 누가 볼까 걱정할 일없어 좋았다. 급한 사람 인기척이 들리면 안에 있던 사람이 헛기침 한 두 번 해주면 설사 할 때 빼곤 무난히 넘어 간다.

측간은 흙바닥에 길쭉한 돌덩이를 어깨 넓이만큼 평평하게 자리잡게 하여 언제라도 일을 보고 나서 재나 왕겨를 한 번 끼얹어 큰 나무주걱으로 "투욱" 밀어버리면 위생상 문제될 것도 없고 바로 퇴비로 직행하여 2~3일 머물렀다가 발효되므로 냄새도 별로 없었던 방식이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바로 가늠할 수 있기도 했다.

측간 한켠에는 남성들 전용인 소매 받는 똥장군이 하나 놓여 있다. 서서 그 일을 보아도 튈 일도 없고 일 치르는 통이 꽉 찰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벌은 이곳에서 염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서는 마룻바닥에 요강을 하나 준비한다. 이 소변을 모아 쇠죽 쑬 때 같이 부어 끓이면 요소를 섭취하므로 무엇하나 까닭 없이 버리는 경우가 없었다.


측간에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측간 앞쪽에는 이제 갓 띄워 발효시킬 김 모락모락 나는 퇴비자리가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농사와 식구수, 가축 사육 규모에 따라 묵은 퇴비가 자리잡아 내년 농사를 준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일을 보는 동안 게 중 부드러운 지푸라기 너댓개를 모아 손으로 "지깃지깃" 꼬부려 비벼 준비한 다음 뒷처리를 했고 세월이 조금 흘러서는 초등학생 공책을 비벼 화장지로 사용했다.


이 때 들일을 나가서 집으로 돌아오기 힘들 때는 쑥이 최고였다. 쑥 잎은 향도 좋고 쓰리거나 피가 터질 경우도 지혈 작용까지 해 준 약 중 보약이었다. 마땅한 꺼리를 찾기 힘든 산에서는 넓은 칡 잎 세 장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뭔가 조금 찜찜하다 싶으면 도랑에서 씻어주면 속 시원한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손은 흙을 한 줌 땅에서 빌려와 냇물에 같이 헹구면 깔끔해진다.

시간이 지나 6, 70년대 시멘트가 널리 보급되던 과정에서 둥근 모양을 한 커다란 통이 등장했다. 일본말로 '노깡'이라 불렸던 이 용기가 등장하면서 땅을 깊이 파고 그 위에 넓다란 나무조각 두 개를 걸쳐놓았던 시절이 한 동안 지속되었다. 이 때부터 다리에 힘이 없던 노인과 보폭이 좁은 아이들은 고생 깨나 해야 했다. 2층으로 깊게 뭍은 합수(合水) 통에 빠질라 걱정이 먼저 앞선다. 변소 가기 겁났다.

간혹 밖에서만 놀던 중병아리들이 흠흠 냄새를 맡고 그 곳에 접근하였다가 온몸에 범벅이 되어 독이 올라 며칠 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경우가 있었다. 물로 아무리 깨끗이 씻겨줘도 소용없었다. 그 독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시름시름 말라죽는 것이다.

이 때부터 밑을 닦는 재료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와 시골 어디에서나 신문지를 쓰게 되었다. 신문지를 손바닥 크기로 잘라 못에 박아두고 두어 장 꺼내 꼬깃꼬깃 돌려가며 터지지 않게 비벼서 쓰면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당시에 신문지에 있던 글자가 거기에 묻는다든가 잉크가 퍼질 염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먹는 것이 대체로 쌀밥과 나물에 김치였고 들에 나가 노동을 했으므로 여성이 변비 걸릴 상황도 못되었다.

여름철 화장실은 파리들의 부화장, 집합소, 행정 수도(首都)이다. 이 고향에 알을 까놓으면 수십만 마리의 구더기가 드글거린다. 허풍하나 보태지 않고 거시기 물 반, 이 벌레가 반이다. 파리약으론 안돼 농약을 부어봐도 금새 다시 생기매 오동나무 잎을 꺾어다가 안에 넣어 두면 그래도 버틸 만 했다.

오줌을 더 자주 누는 관계로 물이 차오르면 펑 튀어올라 엉덩이를 적시는 일이 허다했다. 그때면 "엄마~! 걸레 갖고 칙간으로 한 번 와보쇼!" 해야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나무로 뚜껑을 만들어 덮어두지 않으면 이 징그러운 놈들을 보면서 중요한 일을 서둘러야 했다.

겨울 풍경은 더 가관이다. 소변도 얼고 큰 것도 얼어붙어 옆으로 퍼지지 않고 탑(塔)을 형성해 가는데 가운데 일 보는 중심으로만 차곡차곡 쌓이면서 위층은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석순(石筍) 마냥 똬리를 틀고 얼어붙어 있다. 아이 똥꼬를 찌를 기세다.

a 푸세식 화장실 전경-정성들여 만들어 오늘까지 쓰고 있는 친구네집

푸세식 화장실 전경-정성들여 만들어 오늘까지 쓰고 있는 친구네집 ⓒ 김규환


실제 있었던 경험을 하나 소개한다. 6살쯤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아침에 일어난 사건이다.

어렸을 적 겨울엔 미리 무청을 짚으로 묶어 처마 밑에 열댓 개를 대롱대롱 매달아 두었다. 시레기 또는 씰가리만 풍족해도 된장국거리 걱정은 하지 않았던 때이다. 바싹 마른 시레기를 삶아서 물에 담궜다가 씹히는 맛을 느끼게 조금 길게 썰어 국에 넣으셨을 터인데 아침을 먹고 측간에 가서 일을 적당히 보았다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슨 촌충도 아닌 것이 질질 끌려 내 몸과 같이 일어서는 것이었다. "어? 뭐야?" 창피해서 엄마를 부를 수도 없었다. 어젯밤 먹은 된장국 씰가리가 소화되지 않고 20여 cm 길이로 엉덩인지 어딘지에 대롱대롱 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지푸라기 네 개를 다시 꼬깃꼬깃 접어 짚 사이에 이 기다란 물건을 걸고 다시 붙여 한 번 감고는 질질 끌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화장실 모습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변기 모양과 구조의 변화는 물론 화장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 마지못해 일을 보고 얼른 빠져 나와야 하는 곳에서 일상 생활 공간의 일부로 변모하게 되었다.

화장실 안에 세탁기와 샤워실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를 쳐다볼 필요도 없다. 보드라운 하얀 화장지가 걸려 있다. 안에서 신문을 봐도 되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게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이젠 엉덩이를 붙이고 편히 앉아서 일을 봄으로 다리 저릴 걱정 안 해도 된다. 차가운 겨울에도 "룰루랄라"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자리, 집안에서 가장 청결하게 유지되어야 할 곳으로 여긴다.

순천 송광사 화장실 깊이 재는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고 한다. 3일도 아니고 석달로도 안 된다. 3년 후에나 알 수 있다 한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 소리 들으려다 3일만에 짐 싸서 돌아 나오는 예가 허다하다. 그 절에서 화장실 뭣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되면 불법승(佛法僧)을 이미 반쯤은 깨닫는다고 한다. 그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세상사 이치를 깨닫게 되고 법문에 귀의할 수밖에 없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21세기 서울 한복판에도 아직 화장실 앞에서 동전 받는 곳이 있다.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 인삼센터 건물 2층에는 한 건 치르는데 50원 씩 받는다. 그렇다고 화장지를 따로 주는 것도 아니다. 작은 의자 하나에 종일 앉아 돈을 받는 할머니는 이 일을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마지막 남은 이 직업을 소화해 내고 있다. 이젠 정화조 퍼 가는 차량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a 측간에 화장지가 놓여 있고 퇴비를 제법 많이 받아두셨다.

측간에 화장지가 놓여 있고 퇴비를 제법 많이 받아두셨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이 글이 더럽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바로 기억에서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까지나 추억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고향 옛 풍경을 떠올리다 보면 변소도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 짚고 넘어가자 하던 터에 용기를 낸 것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음식 먹는데 입맛 달아났다면 더욱 사과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이 더럽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바로 기억에서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까지나 추억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고향 옛 풍경을 떠올리다 보면 변소도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 짚고 넘어가자 하던 터에 용기를 낸 것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음식 먹는데 입맛 달아났다면 더욱 사과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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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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