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있는 집 지붕은 눈이 녹아있었다. 사람 훈짐이 그래서 무섭다는 것일까?전희식
겨우살이를 위해 북쪽으로 대밭이 있으면 더 좋음. 마을길이 포장되어 있지 않을 것. 농지는 가구당 1,500평에서 2,000평 기준. 땅값은 평당 1만원 이하여야 개간 및 기초작업비 포함하여 평당 총 2만 원 이하가 되도록 할 것. 등이었다. 이걸 만드니 우리가 함께 가 보지 않더라고 새로 합류한 친구 말 따라 항목별로 동글뱅이나 세모나 곱표를 하여 기록으로 남기면 되는 셈이다.
환경농업이니 뭐니 하면서 나라에서 주는 돈이나 농협 돈은 한푼도 안 쓰는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먹을거리와 입을거리 잠자리를 철저히 자력으로 해결하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 간다는것도 이견이 없었다. 그렇지만 체크리스트에 적어 넣고보니 보기에 참 든든해 보였다.
두 번째 방문지에서다
가파른 육십령 고갯길을 오르다 옆으로 한참을 빠져서 감정원 다니는 친구가 복사해 준 일 만분지 일 지도를 따라 꼬불꼬불 산길을 몇 개나 넘어 갔다. 중간에 차는 팽개쳐 놓고 걸어서 올라갔다. 눈이 구석진 곳에는 무릎까지 빠졌다. 산모퉁이를 돌자 햇살을 가득 머금은 손바닥만한 동네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다 빈집이었으며 꼭 3가구만 남아 있었고 당연히 꼬부랑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계셨다.
다짜고짜 우리는 넙죽 세배부터 드렸다. 서울서 온 아들들은 제사상 다 물리기도 전에 도망치듯이 차 밀린다며 돌아가 버려서 못내 섭섭해 하고 있던 차에 네 명의 장정한테서 세배를 받은 노친네들이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단연 빛났던 것은 새로 합류한 친구의 입담이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일흔 한 살 동갑이시라는데 이 마을에서 4대째 산다고 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소 키우느라 낫질을 뼈골이 빠지게 해서 그렇다면서 보여주시는데 오른손 손가락들이 다 비틀려 있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맏아들 쯤 되는 줄 알았다. 할머니는 우리 앞에서 눈을 흘려가며 영감 흉을 보았다. 이날 이때껏 맨 날 영감은 빈둥거리고 읍내 나가 놀기만 하고 자기가 지금도 밥하고 눈치우고 나무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싱겁게 웃기만 하셨다.
마을에 들어오기만 하면 농사짓도록 땅도 알선 해 주겠다고 하고 전기도 끌어 주겠다고 하고 집도 짓도록 면에 가서 알아 봐 준다고 했다. 절 한번 하고 몇 곱의 호의를 받았다. 호기어린 할아버지의 친절을 뒤로하고 우리는 설핏해지는 짧은 겨울 해를 눈대중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긴 긴 겨울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