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와 콩나물 대가리처럼 노랗노?"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47> 콩나물

등록 2003.02.03 15:42수정 2003.02.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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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콩나물 해장국은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콩나물 해장국은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 충청북도

"야야이~ 콩나물 물 좀 주거라. 콩나물 다 마르것다."
"아까 밥 묵기 전에 세 바가지나 줬는데예?"
"그라이 빨리 주라 안카나. 콩나물도 저녁을 묵어야제."
"알겠심더."
"물 주고 난 뒤 콩나물 보자기 단디(단단히) 덮어놓고."


지금은 콩나물을 대부분 가게에서 사서 먹지만 7~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마을에서는 콩나물을 사서 먹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농약 콩나물이니, 무공해 콩나물이니 하는 그런 말은 애당초 없었다. 우리 마을 곳곳의 큰방 아랫목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콩나물 단지가 메주덩이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콩나물 단지 아래에는 소죽솥 만한 갈색 고무 대야가 받쳐져 있었고, 갈색 고무 대야 속에는 콩을 거쳐온 노오란 물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또 갈색 고무 대야 사이에는 막대기가 몇 개 받쳐져 있었고, 물에 오랫동안 불려 살이 통통하게 찐 콩나물 콩이 담긴 그 콩나물 단지는 고무 대야 위에 걸쳐진 막대기 위에 올려져 있었다.

물동이로도 사용하는 콩나물 단지 바닥에는 일정한 크기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져 있었고, 단지 바닥에는 콩이 빠지지 않게 볏짚을 깔았다. 그러니까 마악 꼬리를 삐줌히 내민 콩나물 콩은 그 볏짚 위에 적당하게 깔려져 있었다. 또 콩나물 콩이 담긴 단지 위에는 단지 두껑 대신 헌 옷가지나 보자기로 잘 덮어 두었다.

콩나물 단지 속에 담긴 콩나물 콩에 물을 주려고 가끔 그 보자기를 벗겨보면 단지 안에서는 제법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일정한 간격으로 콩나물 단지 속에 담긴 콩나물 콩에 물을 주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학숙제를 하다가도 자칫하면 빠뜨려 먹기 일쑤였다.

하지만 콩나물은 잘도 자랐다. 콩나물 콩을 담근지 일주일쯤 지나면 콩나물 콩은 어느새 매끈한 몸뚱이를 가진 콩나물로 변해 우리들 키가 자라나듯 그렇게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자라났다. 콩나물이 일정하게 자라나면 물을 주기도 그리 쉽지 않았다. 쑥쑥 자라나는 콩나물 위에 골고루 물을 붓다 보면 어느새 방바닥으로 물이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야가요, 니 어젯밤에 바지에 오줌을 쌌더나? 방바닥에 웬 노오란 물이 이리도 엎질러져 있노?"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이소 고마. 그라고 이기 우째서 제 오줌입니꺼? 콩나물이 싼 오줌이지예."
"그라이 오해 받기 싫으모 물로 콩나물에 잘 부어라 이 말 아이가."

콩나물을 키우는 안방에선 늘 비릿한 오줌 내음이 났다. 또 콩나물을 거쳐온 그 물은 언뜻 보기에도 우리들 오줌색과 빛깔이 꼭 같았다. 그렇게 콩나물이 5~7cm 정도 자라나면 어머니께서는 콩나물을 손으로 몇 줌 쑥쑥 뽑아서 맛 있는 콩나물 무침과 콩나물국을 끓이셨다.


"콩나물 만큼 좋은 음식도 없다."
"와예?"
"콩나물은 일거양득 아이가. 콩나물을 삶으모 맛 있는 콩나물국도 먹을 수 있제, 또 콩나물을 건져서 무치기만 하면 콩나물 무침이 안되나. 그라고 콩나물을 많이 묵어모 너거들 키도 콩나물맨치로 쑥쑥 큰다 아이가."

콩나물. 그렇게 몇 줌 쑥쑥 뽑아내어도 며칠이 지나고 아니나 다를까, 그 자리에는 또 다시 콩나물이 신기할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콩나물국과 콩나물 무침을 먹는 날이면 온 집안이 비릿하면서도 쌉쓰럼한 풋내가 우리들 코를 찔렀다. 우리는 그때마다 입안에 절로 고이는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며 어서 밥상이 차려지기를 목을 빼고 기다렸다.

콩은 야생의 들콩(덩굴콩)을 재배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콩의 원산지는 만주 남부라고 한다. 만주 남부는 우리나라 고구려의 땅이 아닌가. 그러므로 콩의 원산지는 결국 우리나라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콩은 4000년 전부터 재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초기(BC 1세기 초)부터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콩나물이란 콩을 발아시켜서 재배한 일종의 콩채소이다. 콩나물은 그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의 <본초강목>과 우리 나라의 <산림경제>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최소한 300~400년 전부터 콩나물을 길러서 먹거리로 애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시야 여시야 뭐하니?"
"잠 잔다."
"잠꾸러기."
"세수한다."
"멋쟁이."
"밥 묵는다."
"머슨 반찬."
"콩나물 반찬."
"맛 있니 맛 있니."
"맛 있다아~"
"와아~"

그랬다. 콩나물은 당시 김치와 함께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찬거리 중의 하나였다. 우리 또한 긴 몸뚱이가 하옇게 살찐 그 콩나물을 먹으며 쑥쑥 자라났고, 마을 곳곳에서 콩나물처럼 노오란 얼굴을 내밀며 술레잡기를 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그 뜨거운 콩나물국을 후후 불며 맛있게 먹은 그날은 다른 날보다 더 빨리 배가 고팠다.

"니 오데 아푸나?"
"와?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니 얼굴이 와 그래 콩나물 대가리처럼 노랗노?"
"노오란 콩나물국를 하도 많이 묵어서 안 그렇나."
"키는 콩나물처럼 훌쭉한 가시나가 콩나물국처럼 싱겁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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