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47

지옥으로 가는 길 (2)

등록 2003.02.13 14:53수정 2003.02.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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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흐흐! 이제 신분증은 다 만들어졌군. 조금 아프겠지만 만지지 마라. 만지면 덧나니까. 크흐흐! 이곳에는 약이 없으므로 덧나면 죽는다. 알겠지?"
"으으으! 으으으…!"

여전히 마혈이 제압인지라 움직일 수 없던 셋은 이마의 상처를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었다. 이 순간엔 그저 지독한 통증 때문에 나지막한 신음만 토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옥졸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를 이마에 발랐다. 은은한 약향(藥香)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 덧나지 말라고 바르는 것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통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셋은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본좌가 이곳 무림지옥갱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귓구멍을 씻고 듣도록!"
"존명!"

이번에도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비접나한이었다. 냉혈살마와 이회옥은 무공을 익히기 위하여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통증에 대한 참을성이 배양되어 있었지만 비접나한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통증을 참아내는 인내력이 부족하였기에 어떻게든 잘 보이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덜 맞을 것 같았던 것이다.

"첫째, 우리를 부를 때 반드시 대인(大人)이라는 존칭을 써라. 그리고 시키는 대로 해라. 괜히 본관들의 지시에 토를 달거나 깝죽대다간 줘 터지기 십상이다. 알겠냐?"
"존명!"


"둘째, 일하는 동안 요령 피우지 마라. 요령 피우는 놈을 걸리기만 하면 작살낸다."
"……!"

이번엔 셋 다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안색은 좋지 못하였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곳이야말로 생지옥일지 모른다는 상념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옥졸의 말은 이어졌다.


"셋째, 탈출은 생각도 마라. 지난 삼십 년 간 탈출에 성공한 놈은 단 하나도 없다. 탈출하다 잡히면… 크흐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지. 자, 저길 봐라."

옥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여러 개 매달려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그것은 무엇인가를 담는 포대자루였다.

"……?"
"크흐흐! 너, 허여멀건 한 놈!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가까이 다가가서 봐도 좋다. 크크크!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된다. 가봐!"
"……!"

두렵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비접나한은 마혈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손으로 이마를 더듬으려다가 멈칫거렸다. 만지면 덧난다는 말을 상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호기심을 이길 수 없는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포대자루 가까이 다가가다가 이내 코를 틀어막고 돌아섰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지독한 악취를 맡은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인분(人糞) 썩는 냄새였다.

"크으! 냄새…"

지독한 악취에 포대 속에 똥을 담아 두었다 생각하고 돌아서려는 찰라 귓가로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사, 살려 주시오. 다, 다시는 허업! 퉤에! 살, 살려줘! 자, 잘못… 허업! 퉤퉤! 으으윽! 살려 줘! 살려 달란 말이야!"
"……?"

호기심이 동하여 발길을 멈추었던 비접나한은 몸을 돌리려다가 흠칫 놀라며 멈춰 섰다. 어찌 된 영문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이, 이건…?"
"사, 살려줘! 살려줘! 사람 살려! 허업! 퉤퉤! 크으으윽!"

놀랍게도 포대자루는 헝겊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바늘구멍이 있는 곳은 천으로 덧대어져 있었고, 모든 바늘구멍은 꼼꼼하게 밀납(蜜蠟)까지 입혀져 있기에 물조차 빠져나갈 틈이 없어 보였다.

무림지옥갱에서는 탈출하려다가 생포된 죄수들에게만 가하는 특별한 형벌이 있다. 그것은 피거형(皮居刑)이라는 것이다.

사람 키보다 약간 긴 가죽으로 된 포대 속에 손발을 끈으로 칭칭 동여맨 죄수를 집어넣는 것이 그것이다.

처음엔 움직일 수 없는 것 외에 아무런 불편도 느낄 수 없다. 그렇기에 이것이 다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게 된다. 게다가 물을 달라하면 물을 주고, 술을 달라하면 술을 주었다. 그리고 음식을 달라하면 원하는 양껏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지옥갱에서 워낙 굶주린 채 중노동에 시달렸던 그들로서는 기름진 오리구이에 향긋한 주향을 뿜는 술이 곁들어진 그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 처음엔 음식이나 술에 독(毒)이 들었나 싶어 경계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죽거나 말거나 배불리 먹고 죽는 게 소원이라며 음식을 먹었던 다른 죄수들에게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자 마치 걸신들린 아귀(餓鬼)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받아먹었다.

배가 부르면 의례 졸립기 마련이다. 선 채로 자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였지만 포대에 기댄 채 잠드는 것 역시 꿀맛이었다.

지옥갱에서는 하루에 세 시진 이상 잘 수 없었다. 매일 할당된 분량만큼 철광석을 캐내야 하는데, 하루 열두 시진 가운데 아홉 시진 동안 일을 해야 할 만큼 많은 할당량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만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하루에 한번 제공되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를 악물고 일을 한다. 힘든 것보다 배고픈 것을 참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거형에 처해진 죄수들은 늘어지게 자고 나서 또 먹고 싶다면 음식은 무제한 공급되었다.

지금껏 최고로 많이 먹은 사람은 하루에 오리구이 열 마리와 죽엽청 열 동이를 먹어 치운 사람이라 하였다.

햇볕이 따가우니 가려달라고 하면 그것까지 가려주었다. 가히 극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대접이었다. 하여 멋모르는 죄수는 지옥갱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생포되는 것이 났다며 갱도 안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죄수들을 불쌍하다 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면서 진작에 탈출을 기도할 것을 하며 후회하는 자도 있었다.

어떤 자는 세상 밖으로 탈출해 보았자 정의수호대의 눈을 피하여 산 속에 숨어 지내거나 저잣거리에서 구걸하며 지내야 하는데 생포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며칠을 넘기지 못하는 호사(好事)이다. 사람은 먹은 이상 배설을 해야한다. 하지만 죄수들은 포대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다른 것은 다 들어줘도 그것만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참을 만큼 참다가 결국엔 선 채로 배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지독한 악취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한 가지를 위안 삼았다. 더럽기는 하지만 자신이 배설한 것이며,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사람의 오감(五感) 중 가장 빨리 무뎌지는 것이 바로 후각(嗅覺)이다. 그렇기에 처음엔 지독한 똥 냄새에 고개를 가로젓지만 차츰 무뎌지다가 대략 한 시진 정도가 지나면 아무런 냄새도 못 맡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을 거부하거나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죄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어찌 똥이 잔뜩 묻은 채 음식을 먹고 싶겠는가!

하여 처음엔 음식을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죄수들은 결국 또 다시 음식을 먹게 된다. 지독한 갈증과 배고픔을 억지로 참아보려 하지만 향긋한 주향과 음식 냄새의 유혹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대가 가죽으로 되어 있기에 똥은 걸러져도 오줌은 모두 새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먹었다.

사실 하루에 한번 싸는 자도 있지만 며칠에 한번 싸기도 하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먹고 싸기를 반복하는 동안 죄수들은 포대가 물 한 방울 새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너무도 절실하게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바닥에 시작한 똥과 오줌이 목까지 차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절실히 체험하였기에 워낙 많은 음식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엔 입술 바로 아래까지 차 오르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자칫 잘못하면 오물(汚物)을 삼키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자칫 졸거나, 잠들었다가는 오물 속에 잠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억지로 버텨보지만 사람이 어찌 수마(睡魔)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하여 깜빡 졸다가 분뇨 속에 빠져 한 모금이라도 들이키면 오장육부를 모두 토할 정도로 지독한 토악질을 해댄다. 그러다가 결국 오물이 입술 위로 올라오거나, 체력이 고갈되면 자신이 배설한 분뇨 속에 빠져 죽게된다.

그런 상태에서 인분과 함께 시신도 썩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옥갱에서도 악명 높은 피거형이라는 형벌이다.

덧붙이는 글 | [알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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