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23

등록 2003.02.26 18:02수정 2003.02.2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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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하필 이런 길로 갈게 뭐야! 여기서 다 같이 뒈지자는 거야!"

협부가 재사에게 따지자 마리와 그를 따르던 몇몇 하인들도 불만 가득한 낯빛으로 재사를 쏘아보았다. 재사 측에서도 지지 않고 무골이 나서서 오히려 협부를 조롱했다.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 어떻게 하시겠소? 여기만 건너면 마른 땅이 나오고 터를 잡을 수 있다지 않소!"

"제기랄! 누가 터 잡으러 간대? 누굴 믿고?"

무골이 뭐라고 더 빈정거리려는 찰나 재사가 눈짓으로 무골을 말렸다. 마리와 협부는 아직도 불만이 가득했지만 오이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이는 간밤에 주몽이 오이와 함께 이미 이야기를 나누어 뜻을 맞추었던 탓이었다.

"오이공께서는 앞으로의 복안이 있으신지요?"

"내 복안이라면 주몽공자의 뜻을 따라 보는 것이오. 단,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즉시 바로 고할 것이며 그래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떠날 것이외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뜻은 그렇지 않은 듯 하오."

"그들의 속내는 주몽공자의 어린 나이와 뜻을 무조건 믿지 못하는 데에 있소. 다소 불편해도 그 점은 이해하는 것이 통치자로서의 덕목이오. 내가 다시 얘길 해보겠지만 뜻이 다르다고 결코 다른 이들의 말을 배제하거나 무시하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오."


"공의 가르침을 깊게 새기겠습니다."

이런 연유로 재사의 안내에 따라 나선길이 하필 진창으로 가득하고 불만에 찬 소리까지 나오니 주몽으로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재사만이 북부여에 있는 거친 지형을 얘기하며 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날이 풀려 진창이 되면 수레와 말은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 길이도 자못 방대해 이렇게 하루만에 통과하지 못하고 몇 며칠을 그 위에서 먹고 자야 합니다."

"그래 그 기간에 거길 지나가는 바보는 있기나 하오?"

협부가 여전히 입술이 툭 튀어나온 채로 거칠게 쏘아붙였다.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죠. 터를 잡고 종자를 뿌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우리가 지나온 곳은 말갈족 지역이외에는 사냥에도 적합지 않으니 서둘러야 합니다."

재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협부는 별로 마음이 풀리지 않은 듯 툴툴거리다가 결국 오이의 불호령을 듣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협부는 진창지대를 빠져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흥얼흥얼 느릿한 곡조의 노래까지 불러 젖혔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무골이 다음 대목을 불렀다.

-임은 그예 물을 건너고 말았네

산적 같은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이 처량한 노래를 부르니 그 모양새가 우스웠던지 묵거가 껄껄 웃다가 피리를 꺼내 입에 물고 다음 대목을 연주했다.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임이여 이를 어찌할꼬

결국에 모두가 부른 노래는 조선(즉 역사상의 고조선)시대부터 전해진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였다. 어쩐지 새로운 터전을 일구러 가는 사내들이 부르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노래였지만 그들의 앞길은 마치 돌아올 수 없는 물에 몸을 던지듯이 알 수 없었다.

"이곳은 졸본천이라고 합니다. 여기를 건너면 우리가 터를 잡을 곳입니다."

야트막한 산등성에 올라가 주몽이 둘러다가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바로 하천을 끼고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곳에 평지가 있는 지형이었다. 비록 큰 땅은 아니었지만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해 지키기에 쉬운 땅이라 주몽일행이 웅거하며 세력을 키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으로 보였다.

"저곳으로 가 살펴보는 것이 좋겠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재사와 오이가 고개를 끄떡이며 주몽의 뜻에 동조했다. 협부는 이번에는 산을 타야 되냐면서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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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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