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해지는 이화원의 얼어붙은 호수 곤명호를 건너 다니고 있다.김남희
"자 괜찮으니까 얼른 와요. 얼음이 두껍게 얼어서 안 빠져." 앞쪽에서 아저씨가 재촉을 한다. 내가 얼마나 물과 얼음을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이 겨울에 북경까지 와서 두께도 알 수 없는 얼음 위를 걷다니... 스키도 무서워서 못 타고, 빙벽등반은 행여 꿈도 안 꾸는 사람인데 이게 웬일이람.
천천히, 조심조심 호수를 건너니 작은 섬이다. 중국어로 '수웨이라오'라고 불린다는 그곳은 예전에 감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섬을 둘러싼 원형의 높다란 흙벽은 이미 절반 이상이 허물어졌다.
무너진 담벽 사이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별로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다. 그래도 외국인에게 나름대로 특별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를 여기로 데려온 아저씨 마음이 고맙다.
"아마 한국사람 중에는 여기 와 본 사람이 거의 없겠지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공손하게 인사를 했더니,
"한국사람? 여긴 중국사람들도 못 와보는 데야."
자못 자랑스레 얘기하시는 아저씨.
내 기침 소리를 듣고 꼭 약국 가서 약 사먹으라고, 건강하게 여행 잘 하라고 따스한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 부부와 헤어져 장랑을 걷는다. 길이 728m에 달하는 장랑은 서태후가 비나 눈을 피해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세운 지붕이 있는 긴 회랑이다.
이화원은 1860년 영불연합군의 방화로 폐허가 된 원명원과 가까이에 있다. 자기 생전에 원명원과 같은 아름다운 여름궁전을 다시 갖고 싶었던 서태후는 이화원이 완성된 후 너무나 기뻐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오늘 둘러본 이화원과 자금성. 여전히 궁의 황금색 지붕은 빛나고, 이화원 정원의 돌들은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높은 벽과 벽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 긴 회랑과 정자 위로도 세월의 더깨는 두껍게 내려 쌓이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집은 이토록 빨리 쇠락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