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의 음악에 대하여

[나의승의 음악이야기⑧]

등록 2003.03.05 19:21수정 2003.03.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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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리아 잭슨은 미국의 교회음악을 상징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다.

4살 때 침례교회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깊고 풍성하며, 강한 리듬감을 가진, 블루스 스타일의 소울 음악을 어떻게 소화하고 불러야 할지 에 대해서 10대의 나이에 터득한 사람이다. '아무도 내가 겪은 고통을 알지 못하리(Nobody Knows The Trouble I'v Seen)', '주의 기도(The Lords Prayer)' 등을 들어보면, 미국사회의 흑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침례교회의 집회용 음악을 불렀던 한 가수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대중화 시켰으며,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a 마할리아 잭슨(위)과 메르세데스 소사(아래)의 앨범 자켓

마할리아 잭슨(위)과 메르세데스 소사(아래)의 앨범 자켓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는 '생명에 감사를Gracias A La Vida, 모두 바꾸리Toda Cambia, 토속 미사곡 Misa Criolla등으로 아르헨티나의 민중정서와 종교와 저항의식을 고스란히 전달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젠 아크수라는 터키의 가수는, 그들의 풍토에서 발생한 대중음악을 승화된 경지로 끌어 올려, 지구촌 사람들에게 터키의 민중정서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고독의 교향곡(Valnizlik Senfonisi), 그건 너(O Sensin) 등을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르투갈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그 나라에 그러한 것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 문화재와도 같은 사람이다. 어두운 숙명(Maldicao), 검은 돗배(Barco Negro) 등의 노래는 한국에서도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미국, 스페인, 터키, 포르투갈의 언어를 잘 모른다. 우리와 정서적으로 다른 부분들도 너무 많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 그들에게도 사람들의 아픔 사랑 고독 그리움 등의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또한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힘을 가진 음악을 들려준 사람들이며, 그런 사람들의 음악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가지 슬며시 더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혹시 그들의 노래 속에 우리말의 '한'에 해당되는 정서가 있는가 하는, 물음표를 덧붙여 보고 싶어졌다. '한'이란 '아픔' 이나 '고통'과는 또 다른 개념의 상징일 것이다. 아픔이나 고통이 '나무'라면 한은 거기서 한 차원 승화된 '숯'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언어로 한이라는 말의 뜻에 합당한 단어가 있는지, 역시 잘 모른다.

a 세젠 아크수(왼쪽)와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아래)의 앨범 자켓

세젠 아크수(왼쪽)와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아래)의 앨범 자켓

미국의 소수민족 중에 가장 숫자가 많으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를 가진 민족은 역시 흑인일 것이다. 마할리아의 조상들은 모두 노예였다. 대개 역사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듯이, 한번 노예였던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도 한동안 노예의 굴레를 벗지 못한다. 자생력을 갖지 못한다. 글자 그대로 노예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검게 타버린 '숯'과도 같은 응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흑인들에게 종교는 무제한의 정신적 쉼터였을 것이고, 그 느낌의 마당이 되어준 교회와 거기서 자연발생한 음악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마음과 소망을 담고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다수 민중들은 긴 세월 식민지 생활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독재 보수 극우 정권들과 극소수의 극상류층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 당해왔다. 고통은 '한'의 씨앗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그런 마음은 존재할 것이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은 '파두'라고 부른다. 귀족남자와의 사랑에서 실연당한 평민여자의 고통과 울부짖음과 죽음, 그리고 추모. '파두'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그래서 파두의 가수들은 우리가 흔히 상복이라고 말하는, 검은 옷을 입고 부르는 습관이 있다. 그러고 보니 숯도 검은색, 상복도 검은색이다. 타버린 모든 것은 검은색인가?

세젠 아크수 역시 이미 오래 전에 검정으로 물들었을 이슬람세계 여성들의 정서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눈밖에는 노출을 허락하지 않았던 그들의 전통 속에, 사람의 마음은 문화와 풍토가 달라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고, '세젠 아크수'의 노래에서 이슬람세계 여성들의 애틋함을 우리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 임방울과 김소희의 판소리 앨범

임방울과 김소희의 판소리 앨범

한국에도 그런 정서는 얼마든지 있다.

나의 후배L은 간혹 '지상 최고의 연가'라고 약간의 억지를 섞어,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추켜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억지가 아니다. 옥중의 '춘향'은 서울의 서방님이 새 각시 얻어, 신혼의 단꿈에 나를 결국 잊어 버렸는가 라고 말할 정도로 절망의 사랑에 몸부림치고,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도 주저하지 않을, 막대한 사랑을 토해 내고 있다. 그리고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실린 이 음반은 한국의 음악속에서 명반중의 명반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랑은 바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착각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에, 지고의 값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음악은 사랑이다.

최근 베스트 셀러가 된 책중에 '완당평전'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서 핵심이 된 단어는 '입고출신'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 한국의 음악은 신재효에서부터 임방울, 김소희에 이르기까지 옛것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창·영광·함평·무안·목포·강진·해남·진도에 이르기 까지, 화려한 억양의 전라도 사투리와 그 풍토에서 '한'의 정서로 태어난 진주와도 같은, 민요와 판소리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세계인들이 아끼는 음악 중에 만정 김소희의 '구음'같은 곡이 자리잡기를 희망한다.

'쑥대머리'같은 음악은 여러 언어로 그들에게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악인들의 노력과 애정이 온 세계로 열려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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