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과 '소리의 힘'

[나의승의 음악이야기⑨]

등록 2003.03.11 15:44수정 2003.03.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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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을 때, 사람들은 대개 그 안에 들어 있는 느낌들을 알게 된다.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하는 사람이 어떤 감성을 담아서 만들게 되면, 듣는 사람은 일종의 라디오처럼 감성적인 주파수 동조현상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에는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왜? 어떻게?'의 질문과 답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해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a 소쇄원 광풍각 밑의 폭포

소쇄원 광풍각 밑의 폭포 ⓒ 나의승

그러면 여기서 '음악'이라는 형이상학적 감성전달의 과정 속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존재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서 느낌을 주고 또는 받는 것에 그토록 쉽게 지배적인 영향을 받는가? 하는 의문을 해보면…. 그래서 그것이 인정이 된다면, 그 과정을 일종의 에너지 전달의 과정으로 이해 해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예술은 자연의 반작용이다"라는 전제를 두고, 만약 예술이 자연의 반작용이라면, 인간이 음악을 만들기 이전의 자연 속에 인간에게 음악을 만들게 할만큼의 어떤 것이 존재했는가? 그리고 음악이 그렇듯이 자연도, 또는 자연의 소리도, 인간에게 음악과 같은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음악'을 만들게된 배경에 해당하는 그것이 자연에서의 '소리(Sound)'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했듯이 인간의 음악에 '힘(Power)' 이 존재한다면, 그것의 동기가 된 자연의 소리 속에도 그것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런가? 그래서 인간이 음악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의 소리에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의 의문에 대해서, 나는 '그렇다'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나열한 의문들과 답에 대해서, '소쇄원'과 그 곳에서의 나의 경험은, 적으나마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어 보는데...

2003년으로 500주년이 되는 '담양'의 '소쇄원'은, 자연의 '소리를 본다는 것(Sound Seeing)'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경험을 제공해준 특별한 공간이었다. 나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대개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나의 소쇄원 감상법은 조금 다르다. 소리와 음악에 대해서 언제나 고민하던 30살 시절부터, 가능하면 관람객이 없는 시간을 골라서 제월당 마루 그늘진 곳에 앉아,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보는, 은밀한 즐거움의 시간을 갖곤 했었다.


비가 많이 왔던 때에는 '물의소리'에,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의소리'에, 때로 대나무 밭의 등이 시리도록 서늘한 '몇 만개의 나뭇잎들의 소리'에... 소리에 집중해보는 일종의 '소리듣는 연습'에 몰두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나날들 속에서, 어느 여름날 어마어마한 물소리에 짓눌려 슬퍼도 하고, 까닭 모를 고통에 한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울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통곡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열락의 평화가 찾아온다. 나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옛사람들은 그러한 감정을 깊게 해서, 특별한 경지의 정신세계를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 해보게 되었다.

a 소쇄원 대나무 밭

소쇄원 대나무 밭 ⓒ 나의승

대나무·소나무·회나무·느티나무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언어들을 듣다가 하서 김인후 선생의 48영에도 나오는 악기들의 향연은, 결코 상상력의 결과물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의 소리경지를 인정해준 친구는 그의 영적인 세계속에서 실제로 찾아 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4자씩으로 이루어진 800자에 가까운 한자들은 6효와 8괘의 곱으로부터, 리듬감과 화려한 억양의 음악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질 않은가?


특히 소쇄원의 '물'과 '물소리'는 남다르다. 물소리에 집중해서 눈을 감고 한참동안을 잡념과 정면승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무서운 형상의 귀신같은 물체를 마주한 적도 있었는데, 겁이 많고 기(氣)가 약해서 무서움에 사로잡혀, 한동안 그 곳에 다시 가지못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물의 소리가 나에게 무서움만 준 것은 아니었다.

사시사철 물의 수량과 소리의 많고 적음은 끊임없이 변화해서, 잔잔한 평화와 행복을 주기도 했고, 옛날 이야기에나 나옴직한, 미래의 일을 미리 보게되는 희한한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사실 필자가 세들어 살고 있는 조그만 공간은, 그곳에서 명상에 잠겼을 때 보았던 것과 너무도 똑같은 곳이어서 선택해 살고 있다.

뒤늦게 나마 알게된 사실이지만, 옛날의 명상수련법 중에는 물소리에 집중해보는 수련법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소쇄원의 물은 우리에게 생명과 신비와 닦음의 아름다움도 전해준다.

a 봉황을 기다린 다는 대봉대 밑의 인공 연못

봉황을 기다린 다는 대봉대 밑의 인공 연못 ⓒ 나의승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나의 소쇄원 경험과 음악과 소리에 대한 느낌들이 어느 정도 전달될 수 있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소쇄원을 거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바퀴 휙 둘러보고 "별 것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만화경 같은 경험을 한 적도 있노라고 자랑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곳이 자연의 소리와, 인간이 가진 높은 경지의 소리의 세계가 공존하는, 그런 곳임을, 조금 부족하지만 말해보고 싶었다. 거기에 한가지 더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500년 전, 한 개혁 사상가의 마당이었던 소쇄원에 그가 기다렸던 봉황은 아직 깃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처사의 봉황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이상의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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