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35

등록 2003.03.12 17:58수정 2003.03.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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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이오?"

묵거가 월군녀를 한번 힐끗 쳐다본 후 주몽에게 고했다.


"이 일은 몰래 진행되어야 하니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월군녀가 버럭 화를 내며 묵거를 꾸짖었다.

"이 나라의 왕비를 못 믿겠단 말이오? 어디 그 잘난 계책이나 한번 들어 봅시다!"

주몽은 전혀 얼굴에 동요됨이 없이 묵거와 단 둘이 할말이 있으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명했다. 묵거는 월군녀를 의식해 한 말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재사까지 자리를 피해 주어야 했다. 묵거는 주몽에게 이러이러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얘기해 주고선 비류국으로 떠날 채비를 갖췄다. 묵거의 청으로 부분노가 동행하게 되었고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강짜를 놓아 협부도 일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한편 비류국의 첩자들이 전해준 고구려의 국서를 받아든 송양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국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고구려의 왕이 비류국의 왕에게 전하노라. 그대들의 사신이 비록 복색과 법도는커녕 제대로 된 국서조차 없이 찾아왔으나 이것은 그대들의 무지한 탓이기에 대국의 심정으로 이해하노라. 이에 고구려에서도 비류국에 곧 답례 사신을 보낼 터이니 양국 간의 우호를 위해 대접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송양은 국서를 발기발기 찢어 버렸다.


"왕궁도 없다는 촌뜨기들이 우리를 모욕하는구나! 어디서 저런 멍청한 것들을 보내 이렇듯 모욕을 받게 한단 말인가!"

첩자를 보냈던 해위는 송양의 언성이 높아지자 머리를 숙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비류국에 도착한 묵거, 부분노, 협부는 곧바로 왕궁에 자신들이 사신으로 당도했음을 알리지 않고 화려한 비단옷을 뽐내며 비류국 백성들에게 자신들이 고구려에서 왔음을 알리고 다녔다. 묵거는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의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질문에 이것저것 답하며 고구려가 강한 나라라는 것을 선전하고 다녔다.

"고구려는 날래고 억센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 말갈족은 물론 한나라의 요동태수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소. 게다가 국왕의 덕이 만백성에게 두루 미쳐 모두들 태평성가를 부르며 유유자적한다오."

어떤 이는 고구려 사신의 화려한 복색만을 보고 믿기도 하고 어떤 이는 허풍이 심하다며 무시하기도 했다. 고구려 사신이 당도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송양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아니 사신이라면 냉큼 국왕부터 알현할 생각을 해야지 무슨 꿍꿍이 속이란 말인가?"

송양이 보고를 듣고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부위염이 나서서 고했다.

"저들은 우리가 예를 갖추어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사신들을 일단 정중히 이쪽으로 들리신 후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

송양은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짖다가 고구려의 사신을 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비류국의 왕궁 안으로 들어온 묵거와 부분노, 협부는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와 송양을 알현했다.

"그대들은 사신으로 왔다면서 국왕을 알현할 생각은 안하고 왜 이리 시일을 끌었는가?"

송양이 책망하듯 묻자 묵거가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고했다.

"고구려의 법도에 따르면 상대국의 사신이 취한 바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비류국의 사신이 제대로 예를 갖추지 않고 저희 국왕을 알현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 조차도 매우 파격적인 예를 갖춘 것이라 사려되옵니다."

그들이 사신이 아니라 사실대로 첩자였다고 말할 수도 없어 송양은 머쓱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해위가 언성을 높였다.

"무엄하구나! 네 정녕 따끔한 맛을 보고 싶은 게냐?"

묵거가 무슨 소리냐는 듯 딴청을 피웠다.

"무엄하다니요? 귀국의 사신이 예에 어긋난 행동을 했지만 고구려에서는 이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희는 당당히 국서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송양은 찌푸린 얼굴로 묵거가 공손히 두 손으로 받혀 올린 국서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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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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