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배추를 넣고 국수를 끓이고 그릇에는 마늘과 소금과 간장을 담았다. 좀 짜긴 해도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하다. 국수 세 그릇에 10원.김남희
마침 바깥을 내다보던 아주머님이 국수라면 끓여줄 수 있다고 들어오라고 하신다. 배추를 넣고 국수를 끓이고 그릇에는 마늘과 소금과 간장을 담았다. 좀 짜긴 해도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하다. 국수 세 그릇에 10원. 목에 힘을 주고 외친다. "얘들아. 누나가 쏠게."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받은 10원을 놀러온 손자들에게 5원씩 나눠주신다. 할머니의 마음은 어디나 같다.
4시쯤 수정체에 도착하니 다시 눈발이 날린다. 장족자치구 민속문화촌이라 쓰인 곳으로 들어서니 '이장댁'이라는 나무 표지판이 놓인 집이 보인다. 눈도 오고 숙소도 구해야 되는데 여관에 가서 자기는 싫고...
내 특기가 남의 집 문 두드리는 것 아닌가. 일단 들어가 보기로 하고 들어서서 문을 두드리니 누군지 묻지도 않고 들어오라고 한다. 집안은 어둡지만 화덕에 나무 장작이 타고 있어 훈훈하다. 장족 어머니와 딸이 우리를 맞는다. 얼른 앉으라고 하며 사과며 과자 등을 내온다.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장족 전통술인 "칭커지어우". 한모금 마시니 좀 독한 과실주 맛이 난다. 그리고 "수요우차". 보릿가루에 버터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데 미숫가루와 비슷한 맛이 난다. 이건 전에 티벳에서 여러 번 마셔봤기에 맛있게 먹는다.
이 집 딸 거랑나머는 사천 민족대학에서 장족어와 장족문화를 전공하는 3학년이다. 이 마을의 촌장이었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식구는 엄마와 두 이모,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큰 오빠와 작은 오빠, 역시 대학생인 남동생이다. 다들 성도나 구체구 바깥에서 거주하고 이 집에는 어머니와 두 이모만 거주한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집은 대단한 부잣집이다.
거랑나머의 방 책상에는 도시바 노트북이 놓여 있고, 그녀가 보여주는 가족 앨범에는 관광지로 여행 다닌 사진이 가득하다. 심지어 어머님은 태국도 다녀왔고, 내년에는 한국으로 여행을 갈 예정이란다. 중국에서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잘 사는 사람들이라던데... 이 집 큰 아들인 거거우주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지공이라는 곳에서 호텔을 경영한다. 단연 내가 만난 장족 중 최고의 부잣집이다.
거랑나머가 오늘은 어디서 머물 거냐고 묻는다. 앗, 기다렸던 질문이다. 아직 정하지는 않았는데 폐가 되지 않는다면 이 집에서 묵어가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대신 씻는 것도 불편하고 추울 텐데 괜찮겠느냐고 되묻는다. 장족집에서 잘 수 있는데 그깟 추위가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