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내 배뜰공원에서 열린 행사장에 아이들은 즉석에서 풍물패를 구성하여 출연했다. 이 아이들은 김창환선생의 지도로 보은군청 항의 방문을 소재로 창작극을 공연하기도 했다.전희식
보따리학교는 '길동무'에서 최초로 구상 한 길거리 대안학교다. 이번이 두 번째다. 충북 보은에 간 것은 보은에서 동학농민혁명 보은집회 110주년 기념 행사가 3일간 열리게 되어 행사의 준비와 진행, 마무리까지 아이들이 함께 하기 위한 취지였다.
전국에서 아이들이 왔다. 강원도와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충청도 서울 등 그러고 보니 제주도 이외의 각 지역에서 다 왔다. 초미라는 아이는 강원도 삼척 원덕읍에서 혼자서 왔다. 이제 10살인 그 어린 소녀가 네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보은까지 혼자서 왔다.
창원에서 대안 초등학교인 '하늘땅학교'를 운영하는 김창환 선생은 아이들을 여러 명 데리고 오기도 했다. 다섯 살바기 취학 전 어린이 한 명을 포함하여 초등생, 중학생, 고등학생 등 열 여섯 명이 참석했다. 모두 홈스쿨 하는 아이인 것은 아니다. 우리 새들이처럼 학교를 빠지고 온 아이들도 많다.
학교에 보내지 않고 아이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 김재형 길동무 대표는 갓 열 살인 딸을 사흘 먼저 보내 놓고 중간에 참석했다. 모든 진행은 아이들 스스로 하는 것이다. 보따리 학교를 6일 동안 연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모든 일정은 모여 든 아이들이 정한다. 그들이 처음 느끼게 되는 당혹감과 막막함도 아주 중요한 생활정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6일 동안 아이들은 결코 작지 않은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자는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어른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내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작년 12월. 길동무라는 이름으로 조직 전환을 결의했던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의 종합 평가회 자리에서 지금의 대표 김재형씨가 보따리학교를 제창했었다. 따라서 보따리학교의 주요 학생들은 작년 우리쌀 100일 걷기의 주역들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을 동몽접장이라 불렀다. 전봉준장군의 고부봉기 때 사발통문에 서명한 20분 중에 14 살짜리 동학접주를 이르는 말이다.
폭우와 불볕더위를 뒤집어쓰고 100일을 길거리에서 살았던 이 아이들은 여전히 전국을 교사(校舍)로 삼고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을 선생님으로 삼아 아주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 볼 때마다 놀랍다.
새들이와의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이들은 하루 일정을 짤 때 아주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처음에 오징어놀이, 피구, 축구, 땅따먹기, 배드민턴, 잠자기 등 무수한 의견이 나왔었다. 이때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집에서 빈둥대는 팀'으로 공식
'팀'의 칭호(?)를 주었던 것이다. 이들은 대열에서 빠지는 것을 게으른 낙오자로 낙인찍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마저 삶의 한 요소라는 것을 공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