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이 주의 새 책들

<무언가...> <산이 움직이고...> <고사리야...>

등록 2003.04.22 14:18수정 2003.04.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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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에서 '자아의 발견'으로
- 하종오 시집 <무언가 찾아올 적엔>


a <무언가 찾아올 적엔>

<무언가 찾아올 적엔> ⓒ 창작과비평사

1981년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를 내며 스물 일곱 청년의 현실저항의식을 보여준 하종오(50) 시인이 지천명(知天命)을 맞았다.


누구의 삶이 그렇지 않겠냐 만은 하 시인 역시 여러 곡절을 겪으며 80년대와 90년대를 보냈을 터. 최근에는 강화도에서 텃밭을 가꾸며 인간과 자연, 농촌과 도시의 단절을 고민한다는 하종오가 허위허위 건너온 삼십여 년의 시력(詩歷)을 정리하는 시집을 냈다.

<무언가 찾아올 적엔>(창작과비평사)라는 제목을 단 하종오의 10번째 시집에는 변한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았고, 달라진 듯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은 오만한 현실 앞에서 자아를 찾아 헤매는 시인의 고단한 모습이 담겨있다.

첫 시집의 출간으로부터 흐른 22년의 시간은 하종오를 불의한 시대에 저항하는 열혈의 청년에서 반백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중년의 사내로 만들었다.

오십이 되어서야 돌아본 세상은 하종오로 하여금 '마침내 더 작아진 죽음을 내가 포옹하면/비로소 넋이 돌아서 뗏장이 푸르러졌지/그러면 죽음이 말했지, 살 만하기는 무덤 속이 살 만하군(위의 책 중 '살 만한 곳' 부분)'이라는 쓸쓸한 노래를 부르게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마냥 쓸쓸해만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찾아올 적엔>을 접한 정희성 시인은 "젊은 시절 그의 시가 저잣거리에서 부대끼며 얻어진 것이라면 지금 읽어보는 그의 시는 대지의 생산과 자연의 관조를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에 속해 있다"는 말로 하종오의 시가 청년시대와는 또 다른 진경을 축조해나가고 있음을 포착하고 이를 격려했다.


소설가가 포착해낸 '시의 풍경'
- 박범신 시집 <산은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a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 문학동네

등단 30년을 맞은 소설가 박범신이 시집을 냈다. "무슨 늦바람이냐"고 궁금해할 사람들에게 소설가 박범신 아니, 시인 박범신이 답한다.


"작가 나이 이립(而立)의 서른을 자축하며, 더도 말고 오늘 하루, 나의 '시인'이 갑옷을 뚫고 나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얼쑤절쑤 춤 한번 추고 가는 것,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지요." 훌쩍 오십을 넘긴 작가가 독자들의 용서까지 구하며 발간한 시집은 이름하여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문학동네).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은 지난 93년 '더 이상 영감이 부재한 소설에 매달릴 수 없다'며 절필을 선언하고 3년간 머물던 용인의 한터산방에서 씌어진 것들. 유유자적하던 시절에 쓴 것들이라 형식과 내용 모두가 책 속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독자들에겐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등 소설로 훨씬 잘 알려진 박범신이지만, 시를 어르는 솜씨도 만만찮다. 하긴 30년을 글로 밥을 벌어먹은 사람이니 산문정신만큼이야 아니겠지만 체화된 운문정신도 만만치 않으리라.

'내가 빈 논의/저 쓸쓸한 벼 그루터기가 되고 싶은 건/다른 것이 아냐/암것도 아냐/봄날 겨운기 삽날에/뿌리째 뒤집혀지고 싶기 때문이야/그뿐이야(위의 책 중 '봄' 전문)'

7행의 짧은 시(詩) 속에 모반과 정열의 뜨거운 감정을 넉넉하게 담아낸 영원한 청년작가의 시를 접한 대선배(?) 정호승(시인)은 "박범신 형은 이미 시의 비밀을 아는 소설가다. 그는 일찍이 풀잎처럼 누워 시를 쓰던 시인이었다"는 말로 새파란 후배(?)의 첫 시집 간행을 축하했다.

아이들아 산나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니?
- <고사리야 어디 있냐?>


a <고사리야 어디 있냐?>

<고사리야 어디 있냐?> ⓒ 보리

예전에는 산나물 이름 서른 가지를 모르는 여자는 시집가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너나 없이 원체 가난했던 시절. 밥을 지을 때 쌀보다 산나물을 더 많이 넣었던 탓에 먹어도 되는 나물과 먹어서는 안 되는 독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처녀는 그야말로 빵점 며느리였던 것이다.

요새야 세월이 달라져 그저 별식으로나 밥상 위에 오르지만, '건강에 좋다'는 옛날과는 또 다른 이유로 여전히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게 산나물이다. <고사리야 어디 있냐?>(보리)는 달라진 식생활과 토양오염 탓에 점점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산나물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펴낸 그림책.

책의 제작진들은 생생한 이야기를 채록하기 위해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 곳곳의 산골을 찾아다니며 평생 산나물과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들은 고사리와 나물취, 곰취, 두릅, 참나물과 같은 온갖 산나물에 얽힌 오밀조밀한 설명을 들려주었고, 그것들은 다시 생생한 그림과 이야기로 재현됐다.

산나물이 서식하는 산의 실제 느낌을 살리고, 각종 산나물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위해 석판화로 밑그림을 그린 뒤 수채물감으로 채색한 그림들은 <고사리야 어디 있냐?>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책의 감수는 한국식물연구회 전의식 명예회장이 맡았다.

무언가 찾아올 적엔

하종오 지음,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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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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