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이 남긴 작은 옹달샘

<강바람 포토에세이> 바다에 달도 있고, 구름도 있고, 나무도 있었네

등록 2003.04.22 22:04수정 2003.04.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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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달의 움직임에 따라 바다는 미묘하게 움직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법 없이 멀리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고여있는 법이 없습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고여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회 일로 이틀 동안이나 연속되는 회의를 참석하고 나니 회의체질이 아닌 나는 지쳐버렸습니다. 회의할 동안 읽으려고 가져갔던 책들도 무용지물이 되었고, 메모지에도 글감이 될만한 것을 적지 못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는 글감이 마구 떠올라 메모하기도 바빴는데, 도심의 한 복판에 들어가 있으니 도통 글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회의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친 심신을 달랠 겸, 잠시 삼양 앞 바다에 들렀습니다. 마침 썰물 때인지 제주 특유의 검은 바위들이 저녁노을을 맞으며 서서히 말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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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좀더 가까이 바다로 가니 움푹 파인 바위들이 물을 담고 있습니다.
바위의 파인 모양새에 따라 각양각색의 작은 옹달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물에 비추인 바위의 모양새도 달라집니다. 맑은 거울을 보는 듯 한 작은 옹달샘은 만지면 깨질듯합니다.


보름달을 닮은 듯한 동그란 바위에 담긴 바닷물에 비친 돌들의 형상은 마치 내가 걸리버가 되어 소인국의 작은 달나라를 굽어보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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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얼핏보면 바위산이 들어있는 듯 하지만 사실 물에 비친 그림자입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자연, 그러나 어느 쪽에서 보아도, 어떤 자세로 보아도 아름답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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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바위마다 다른 모양새를 간직하고는 물을 담고 있는데 꼭 봄 햇살에 수줍은 듯 나온 작은 잎새 같습니다. '작은 나뭇잎 옹달샘'이라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이런 저런 모양새를 간직한 바다의 작은 옹달샘들을 구경하면서 이틀간의 회의로 지쳤던 몸이 다시금 생기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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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석태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주의 오래 된 검은 바위에 달라붙어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햇살에 말라버리면 별로 모양새가 없지만 물에 젖어 촉촉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하늘의 구름을 보는 듯합니다. 바다 안에 달도 있고, 구름도 있고, 나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바닷 바람을 깊게 들이 마시며 깊은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삶을 추스려 봅니다. 나에게 없다고, 나에게 너무 멀리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품고 있는 달과 구름과 나무를 찾아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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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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