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77

등록 2003.04.29 17:37수정 2003.04.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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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주어진 명이 다 되어서일까. 유화부인은 결국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한 채 한 많은 생애를 마치고 말았다. 금와왕은 비통해하며 유화부인의 장례를 살아생전 사람들의 이목으로 인해 가지지 못했던 지위인 태후의 예로 치렀다. 태자인 대소에게 이 일은 큰 기회였다.

"어서 고구려로 사람을 풀어 보내라! 유화부인이 여기서 핍박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소문을 퍼트려라!"


그리고서 대소는 부여에서 고구려로 이 소식을 알리러 가는 사신을 협박하고 뇌물을 주어 다른 곳에 갔다오게 한 후 거짓소식을 전하도록 일을 꾸몄다.

주몽은 간밤에 어머니 유화부인이 작별인사를 하는 뒤숭숭한 꿈을 꾸고서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부여를 떠난 지 15년, 얼굴을 마주 대하는 건 물론 문안편지 한 장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지만 주몽은 어머니가 모든 것을 이해해 주리라 믿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간밤에 꾼 꿈은 주몽에게 어머니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게 누구 없는가? 당장 부여로 사신을 보내어 그곳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게."

주몽은 바로 침상에서 시종에게 명했으며 사신은 부여로 급히 출발했다.

"이보시오. 고구려에서 온 사신은 우선 마가 저여님에게로 오시라는 분부가 계셨소."


사신이 막 부여로 들어가는 길목에 들어서려는 찰나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일러준 말이었다. 평소 저여가 뇌물을 좋아한다고 들은 터라 따로 물건을 준비하지 못한 사신으로서는 걱정스러웠으나 뜻밖에도 저여는 빈손으로 온 자신을 정색을 하며 맞아들였다.

"여기까지 오셨지만 지금 부여는 뒤숭숭해 왕궁으로 들어가실 수 없소이다. 오는 도중에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유화부인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예?!"

"모르셨습니까? 몰래 하는 말이지만 저희 폐하께서 '고구려왕은 바로 유화부인의 아들이며 곧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인데 건방지다'고 하며 유화부인을 핍박하셨습니다. 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옵니다. 어서 돌아가 고구려 국왕께 알리십시오. 이곳에 고구려 사신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사히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사신은 마치 큰 일이라도 알아낸 양 그 길로 달려가 주몽에게 저여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주몽이 노발대발하며 당장 병사들에게 동원령을 내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정하옵소서 지금은 병사를 동원할 때도 아니거니와 부여에 간 사신이 들은 말도 뭔가 이상하옵니다."

재사가 극구 만류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주몽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다른 신하들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주몽이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월군녀가 옆에서 그런 주몽을 부추겼다.

"그것 보십시오. 부여에게 아무리 잘 대우해줘도 결국 우리를 업신여기고 이런 짓을 벌이지 않습니까."

주몽은 오히려 월군녀에게 버럭 화를 내며 비꼬는 듯한 투로 응대했다.

"그래, 왕비께서는 높은 견식을 지녀 참 좋으시겠구려!"

최근 들어 부쩍 왕비 월군녀에게 냉랭해진 주몽이었지만 신하들이 보는데서 한 말치고는 심한 감이 있었다. 월군녀는 속으로 섭섭함을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히 자신이 바란 대로 맞아 떨어져 감을 보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때쯤 부여에서도 대소가 미리 매수한 부여사신이 마치 고구려에서 돌아온 것으로 위장하여 거짓 전갈을 가지고 왔다.

"고구려 왕 주몽은 저희들의 말을 믿지 않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며 목을 씻고 기다리라고 일렀습니다. 저희들도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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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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