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76

등록 2003.04.28 17:49수정 2003.04.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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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주몽에게 재사는 궁녀에게 들은 얘기를 낱낱이 전해 주었다. 얘기가 끝날 때쯤에 주몽의 낯빛은 흑색이 되어 있었다.

"내 결코 이를 용서하지 않으리다!"


치를 떠는 주몽을 보며 재사는 조용히 충고했다.

"제가 미움을 가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화를 참을 수 없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묵거에게는 남을 은근히 업신여기는 면도 있었고 더 나가면 모든 얘기를 골고루 듣지 않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한 주군의 탓도 있사옵니다."

주몽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귀공의 말도 있고 하니 이 일에 대해 난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오. 허나 잊지는 않을 것이외다! 왕후는 앞으로도 결단코 왕후 아닌 왕후로 있을 것이오!"

재사와 주몽에게 있었던 일을 알 턱이 없는 월군녀는 해위, 소조와 더불어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지금 고구려의 국력과 기상은 동부여와 능히 맞설만 한대도 폐하께서는 어머니와 예모라는 여인으로 인해 손을 놓고 계시네. 처음 폐하를 보았을 때 그 포부가 큰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날이 갈수록 난 답답함을 느낀다네."

해위는 월군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곤 했다. 월군녀는 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국왕인 주몽을 제치고 자신이 국정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여인이었다.


"그래 부여에 사람을 보낸 일이 잘 되진 않았다고?"

"그러하옵니다. 하지만 왕비마마, 아직 고구려의 주위에는 소국들이 있사옵고......"

해위의 말은 추상같은 월군녀의 말에 의해 금방 끊어졌다.

"그런 나라들은 이미 고구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오! 동부여를 취한다면 그야말로 고구려의 기상을 만방에 떨칠 수 있소. 진정으로 폐하를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답은 나온 것이나 다름없지 않소? 뭔가 다른 방도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대형께서는 부여에 보냈던 사람의 입을 막도록 하시오."

해위는 어느덧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건 줄을 잘못 서지 않았는가!'

해위는 월군녀의 명에 따라 말 잘하는 이를 행인국의 왕 주자아로 위장시켜 대소에게 접근하도록 지시한 바가 있었다. 월군녀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분아래 주몽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시어머니인 유화부인이 남의 손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연적(戀敵)이나 다름없는 예주의 목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비류국에 있을 때 주몽과 싸우자는 얘기를 송양에게 많이 한 터라 출세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황비인 월군녀를 따른 해위였지만 자꾸만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으로 월군녀와 해위가 꾸민 일은 묵거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주몽의 신임이 두터운 묵거인지라 해위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고 이는 월군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월군녀는 병으로 앓고 있는 묵거에게 약을 내린다는 핑계로 조금씩 독을 탔고 묵거는 죽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해위로서도 별반 불만은 없었다.

다음으로 한 일은 행인국의 왕인 주자아를 암살하는 일이었다. 월군녀는 비류와 온조중에 태자를 정하지 않고 자기도 이름뿐인 왕비일 뿐 마음은 동부여의 예주에게 가있는 주몽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묵거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모색한 것이 주몽이 아량을 보여주려 풀어준 주자아를 암살하고 그가 주몽 앞으로 서찰을 남긴 것처럼 위장해 다시는 적에게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끔 유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부터도 그런 아량으로 인해 폐하아래서 신하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위는 월군녀의 명에 따라 이 일을 실행하긴 했지만 이때부터 월군녀를 다시 보게끔 되었다. 해위는 물론 주몽이 감당하기에도 월군녀의 야망은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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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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