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최초의 외국인 반전 시위

[중국 운남성 다리 여행기 ②] 마음의 짐은 여전하고...

등록 2003.04.30 10:36수정 2003.04.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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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고성 서울 식당앞의 노점상들.
다리 고성 서울 식당앞의 노점상들.김남희
전쟁이 시작되고, 잠시 비가 내리고, 여행자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오랜만에 찾은 피시방에선 온통 전쟁관련 기사로 어수선하다.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할 수 없다는 국회의원의 연설문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국에 있다면 반전시위라도 열심히 나갈 텐데...

이럴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여행자의 처지가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내일은 나 혼자서 양인가 앞에서 침묵시위라도 하리라. 이렇게 다리 최초의 1인 반전시위는 계획되었다. 하지만 밤이 늦어서 상황이 역전됐다.


역시 배낭 여행중인 영국인 어텀이 우리 숙소에 방을 보러 왔다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시위 계획을 듣더니 "우리도 같이 하면 안 될까? 남편이랑 같이 참여하고 싶어"라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함께 하기로 결정. 결국 참여인원은 3주 째 함께 다니고 있는 경환이까지 4명. 이 정도면 기대치 않았던 대규모 시위대다.

문방구에서 도화지와 매직을 사와 피켓을 만들고, 철 지난 달력 뒷장에 "Peace March Against the War, 2 p.m. Tibetan Cafe. Join us" 라고 쓴 안내문도 몇 장 만든다. 어텀과 마크 역시 이 전쟁을 석유 이권 확보를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보기에 그들이 만든 피켓은 "Let the oil flow freely", "Give peace back to Baghdad".

상해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소설가로 변신 중이라는 중국인 친구가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드높이자"는 의미의 중국식 구호로 피켓 한 장을 만들고, 서울식당 사장님이 "월남전쟁의 오류를 되풀이 할 것인가?" 또 한 장을 만들고, 총 일곱 장의 피켓이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로 만들어진다. 양인가 곳곳에 평화 행진 안내문을 써 붙이고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2시.

다음날 오후 마크와 어텀, 경환이와 2시에 티베탄 카페 앞으로 나가보니 결국 참가자는 우리 넷뿐이다. 조금 서글프기도 했지만 '어차피 혼자서라도 하려던 일이었는데...'라고 생각하니 기운 빠질 것도 없다.

처음 30분은 카페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고, 1시간은 고성 안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카페 앞으로 와 잠시 서 있다가 정리. 이렇게 진행된 시위 내내 예기치 못했던 카메라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토록 많은 사진이 찍히기는 내 평생 처음이다. 거의 칸느 영화제 개막식 때 붉은 카페트 위를 걸어가는 세계적인 여배우들을 향해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양에 필적할 만하다.


게다가 낚시 조끼까지 갖춰 입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카메라도 다들 중형 이상인데다 여기저기서 비디오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찍고 있다. 찍는 것만으로 모자라 우리 옆으로 와서 피켓을 같이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때로는 행진을 멈춰 서서 함께 포즈를 취해 주는 일까지 해야 했다.

반전 시위때 만든 피켓.
반전 시위때 만든 피켓.김남희
단체 관광을 온 것으로 보이던 한 아저씨는 기자증을 보여주더니 그 와중에 직업정신을 발휘해 우리를 취재한다.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지나가는 중국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곳곳에서 박수를 보내주거나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주고, 소리쳐 격려를 해주며 지나간다.


중국에선 이런 시위를 보기가 힘든데다가, 시위의 주동자가 외국인들이니 더 신기할 수밖에... 게다가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이 이번 전쟁에 반대하는 분위기였기에 더 반응이 뜨거운 것 같다. 이렇게 중국 사람들이 열렬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으면 중국어 구호를 더 많이 만드는 건데...

중국어로 쓰여진 유일한 피켓을 들고 있어서 카메라의 집중 공략을 당해야 하는 사람은 경환이다. 늘 조용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경환이에게 이런 사태를 유발시켜 미안해하자 "누나, 성격 개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어쩌면 경환이에게 있어서는 생애 최고의 용기를 내야 했던 일인지도 모르는데 묵묵히 견뎌주는 이 어린 친구가 고맙다.

중국인들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시간은 예상보다 빨리 흐른다. 반면에 서양인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하필 오늘따라 단체 관광이라도 나갔는지 그 많던 서양인 배낭족들이 통 보이지를 않는다. 어쩌다 지나가는 서양인들은 그저 잠시 쳐다보고 갈 뿐 지극히 무관심하다. 여행 중에는 여행만 하겠다는 건가.

한 시간 반의 시위를 끝마치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려니 시아관 공안국 외사과 전직원이 경찰차를 타고 출동했다. 통역까지 대동하고. 외사과 과장이라는 남자가 웃으며 여권을 보자고 말을 건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을 하려 하지만 눈매는 뱀처럼 집요하고 날카롭다. 여권을 숙소에 놓고 왔으니 나중에 숙소로 오라고 하니 숙소가 어디냐고 묻는다. 숙소를 알려주고 자리를 뜬다.

민환이와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들어서니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하이!"하며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왜 여권을 보여줘야 하는지 꼬치꼬치 물었더니 "외국인 출입국관리법 41조에 의해 경찰이 신분을 밝히면 외국인은 무조건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며 조항이 적힌 책자까지 들고 와 보여준다.

"우리 나라에서는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잡히지 않는 한 경찰의 검문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우겨본다. 통역이 "여긴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경찰이 신분증을 보자고 하면 무조건 내놔야 한다. 외국인도 예외가 없다"고 쌀쌀맞게 대답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한다.

슬슬 꼬리를 내려야 할 때인가 보다. 이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켜봤자 나한테 도움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결국 여권을 건네주니 우리들의 이름과 여권번호, 비자 번호 등을 기록한다. 그들 말로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요주의 외국인 명단'에라도 올라 다음 입국이 거부될지. 결국 한 번의 조용한 시위로 공안국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깃발과 만장도 준비하고, 몇 가지 퍼포먼스도 곁들여서 좀 더 제대로 된, 격식을 갖춘 시위문화를 선보일 걸 그랬나.

이렇게 다리 최초의 외국인 반전 시위는 별다른 일없이 끝이 났다. 남의 나라 땅 조그만 마을에서 고작 4명이서 벌인 반전시위는 아무 것도 바꾸어내지 못하고, 어떤 울림도 되지 못하겠지. 어차피 폭탄은 퍼부어질 테고, 이라크의 어린이와 여자들은 아버지와 남편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청년들이 다시 지하로 들어가고, 미국은 결국 원하던 것들을 얻게 될텐데... 그래도 한 사람의 세계 시민으로서 발언했다는 것만으로 점수를 주어야 하는 걸까? 마음의 짐은 여전하다.

반전시위 장소로 선택한 티베탄 카페
반전시위 장소로 선택한 티베탄 카페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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