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고성 서울 식당앞의 노점상들.김남희
전쟁이 시작되고, 잠시 비가 내리고, 여행자들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오랜만에 찾은 피시방에선 온통 전쟁관련 기사로 어수선하다. 명분 없는 전쟁에 참전할 수 없다는 국회의원의 연설문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국에 있다면 반전시위라도 열심히 나갈 텐데...
이럴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여행자의 처지가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내일은 나 혼자서 양인가 앞에서 침묵시위라도 하리라. 이렇게 다리 최초의 1인 반전시위는 계획되었다. 하지만 밤이 늦어서 상황이 역전됐다.
역시 배낭 여행중인 영국인 어텀이 우리 숙소에 방을 보러 왔다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시위 계획을 듣더니 "우리도 같이 하면 안 될까? 남편이랑 같이 참여하고 싶어"라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함께 하기로 결정. 결국 참여인원은 3주 째 함께 다니고 있는 경환이까지 4명. 이 정도면 기대치 않았던 대규모 시위대다.
문방구에서 도화지와 매직을 사와 피켓을 만들고, 철 지난 달력 뒷장에 "Peace March Against the War, 2 p.m. Tibetan Cafe. Join us" 라고 쓴 안내문도 몇 장 만든다. 어텀과 마크 역시 이 전쟁을 석유 이권 확보를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보기에 그들이 만든 피켓은 "Let the oil flow freely", "Give peace back to Baghdad".
상해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소설가로 변신 중이라는 중국인 친구가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드높이자"는 의미의 중국식 구호로 피켓 한 장을 만들고, 서울식당 사장님이 "월남전쟁의 오류를 되풀이 할 것인가?" 또 한 장을 만들고, 총 일곱 장의 피켓이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로 만들어진다. 양인가 곳곳에 평화 행진 안내문을 써 붙이고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2시.
다음날 오후 마크와 어텀, 경환이와 2시에 티베탄 카페 앞으로 나가보니 결국 참가자는 우리 넷뿐이다. 조금 서글프기도 했지만 '어차피 혼자서라도 하려던 일이었는데...'라고 생각하니 기운 빠질 것도 없다.
처음 30분은 카페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고, 1시간은 고성 안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카페 앞으로 와 잠시 서 있다가 정리. 이렇게 진행된 시위 내내 예기치 못했던 카메라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토록 많은 사진이 찍히기는 내 평생 처음이다. 거의 칸느 영화제 개막식 때 붉은 카페트 위를 걸어가는 세계적인 여배우들을 향해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양에 필적할 만하다.
게다가 낚시 조끼까지 갖춰 입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카메라도 다들 중형 이상인데다 여기저기서 비디오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찍고 있다. 찍는 것만으로 모자라 우리 옆으로 와서 피켓을 같이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때로는 행진을 멈춰 서서 함께 포즈를 취해 주는 일까지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