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만두속으로 팔려가는 건 아냐

[중국 운남성 다리 여행기 -샤핑장③] 위험 따르는 모험이 주는 짜릿한 자극

등록 2003.05.13 19:53수정 2003.05.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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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돼지 세 마리를 끌고 와 파는 아줌마와 아들. 손님이 없는지 무료한 표정이다.
아기 돼지 세 마리를 끌고 와 파는 아줌마와 아들. 손님이 없는지 무료한 표정이다.김남희

얼하이 호수 주변의 마을에서는 돌아가며 장이 선다. 월요일은 샤핑, 화요일은 다리, 수요일은 와서, 이런 식으로 장은 거의 날마다 이어진다. 장터 구경이라면 한물 갔다는 평판만 남겨진 초라한 시골 장까지 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월요일. 샤핑에서 장이 서는 날이다. 이런 일에는 유난히 부지런을 떠는 나답게 아침 일찍 일어나 미니버스를 타고 샤핑으로 향한다. 성도에서 만났던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오늘의 동행이다. 한 시간 남짓 달려 샤핑에 내리니 이제야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장터로 나오고 있다. 곧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터로 변해간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생활용품과 야채며 과일, 닭, 오리, 돼지들을 파는 곳이 더 많다. 상추며 배추, 무 등 야채 종자며 꽃씨 따위를 파는 아저씨 앞에서 구경을 하다보니 아저씨가 사라고 자꾸 권한다.

대나무 바구니를 배낭처럼 매고 와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
대나무 바구니를 배낭처럼 매고 와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김남희

연뿌리를 파는 아줌마와 하나라도 더 얹기 위해 연뿌리를 꼭 쥐고 긴장한 얼굴로 저울을 응시하는 손님. (사진 왼쪽) / 짚을 꼬아 파는 할머니.
연뿌리를 파는 아줌마와 하나라도 더 얹기 위해 연뿌리를 꼭 쥐고 긴장한 얼굴로 저울을 응시하는 손님. (사진 왼쪽) / 짚을 꼬아 파는 할머니.김남희
"아저씨, 저 지금 여행중인데 이런 거 사서 어디다 써요?" 웃으며 되물었더니 "아, 키워서 먹고 다니면 되지"하고 말도 안 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신다.

시골 장터의 백미는 역시 먹을거리들을 찾아다니며 군것질하는 재미다. 아버지가 반죽을 하면 아들이 구워내는 호떡을 1원에 사먹고(중국 최고의 호떡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조미료를 잔뜩 끼얹어주는 5마오짜리(우리 돈 70원) 국수도 한 그릇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젓가락에 끼워 파는 파인애플 반통을 또 사먹는 내 모습을 본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혀를 내두른다.

결국 그 친구가 산 커다란 수박의 반도 내가 먹어 치웠다. 내 몸 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지 요즘은 밥만 먹었다 하면 기본이 두 그릇, 심할 때는 세 그릇까지도 간다. 아무래도 조만간 기생충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부자(父子)호떡 가게의 반죽하는 아버지. 아들이 호떡을 구워내는 화덕. 숯불이 밖으로 나와 있고 호떡은 안에 들어있다.
부자(父子)호떡 가게의 반죽하는 아버지. 아들이 호떡을 구워내는 화덕. 숯불이 밖으로 나와 있고 호떡은 안에 들어있다.김남희

구두 수선하는 아저씨.
구두 수선하는 아저씨.김남희
살 수도 없으면서 괜히 새끼 돼지 한 마리에 얼마냐고 물어도 보고, 고칠 구두도 없으면서 구두 수선하는 아저씨 앞에서 또 가격을 흥정하고,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다 보니 "거리의 이발사" 할아버지와 마주친다.


이발관의 시설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남의 집 담벼락 앞에 달랑 나무 의자 하나 갖다 놓고, 가위와 보자기 하나가 전부이다. 당연히 머리를 감겨주거나 드라이를 해주는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다.

예전부터 '거리의 이발사'들의 실력을 꼭 검증해보고 싶었던 지라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하고 가격을 흥정한다. "머리 자르는데 얼마예요?" 할아버지는 수줍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내민다. 흥정할 것도 없네. 2원(우리 돈 300원)이니.


오스트리아 친구는 자꾸 "정말 자를 거야? 정말?" "괜찮을까?" "좀 위험한 도박인데…""너 한동안 모자 쓰고 다녀야 할지도 몰라." 이런 말을 반복하며 나를 말리지만 소용없다. 내 몸은 이미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 주는 짜릿한 자극에 온통 감전되어 있으므로.

방금 잡은 돼지를 통째로 들고 와 저울에 재어 파는 아저씨. (사진 왼쪽) / 장터로 끌려나온 오리와 닭들. 닭들을 묶어 나온 솜씨가 잔인하게 뛰어나다.
방금 잡은 돼지를 통째로 들고 와 저울에 재어 파는 아저씨. (사진 왼쪽) / 장터로 끌려나온 오리와 닭들. 닭들을 묶어 나온 솜씨가 잔인하게 뛰어나다.김남희

다리 특산물인 염색천을 흥정하는 손님들.
다리 특산물인 염색천을 흥정하는 손님들.김남희
때마침 머리도 지저분해지기 시작하는 터라 시기도 알맞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의자에 앉는다. 머리를 어떻게 잘라달라고 할까? "뒤통수가 납작하니까 층 지도록 잘라주고, 옆 머리는 귀로 넘기는 정도로 잘라주세요." 한국 미장원에서 즐겨 썼던 멘트는 내 중국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한참을 고민한 후 기껏 할아버지께 드린 말은 "저는 여자니까 예쁘게 깎아주세요."라는 어리석은 당부 뿐이다. 할아버지는 "하오.하오" 하며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드디어 가위를 대고 조심조심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잘려갈수록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프랑스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가 머리 깎는 모습을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하긴 프랑스에서 이런 이발소는 본 적도 없겠지. "사진 한 장 찍는데 5원!"이라고 외쳤더니 웃음이 터지더니 비싸다고 아우성이다.

다들 장터로 나가느라 텅 빈 샤핑의 골목.(사진 왼쪽) / 샤핑 마을의 작은 도교절. 향을 꽂은 연탄이 재밌다.
다들 장터로 나가느라 텅 빈 샤핑의 골목.(사진 왼쪽) / 샤핑 마을의 작은 도교절. 향을 꽂은 연탄이 재밌다.김남희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백족 어린이.(사진 왼쪽) / 샤핑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백족 어린이.(사진 왼쪽) / 샤핑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김남희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준다. 옆머리가 잘려 나가고, 앞머리에도 손을 대고, 잠시 후 바리깡 같은 것으로 뒤통수와 목덜미 부근을 민다. 아까 다른 아저씨 깎을 때 보니까 바리깡 날이 무뎌 보이던데…

혹시나 저 지저분한 날에 살을 베는 바람에 파상풍에 걸리고, 급기야는 중국 땅에서 삶을 마감하고, 연고자 없는 시체라고 '만두속'으로 팔려 가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리는 없겠지… 불길한 상상은 재빠르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번져간다.

거리의 이발사 아저씨. 내 머리를 깎아주신 분이다.
거리의 이발사 아저씨. 내 머리를 깎아주신 분이다.김남희
드디어 머리 자르기가 완료되고, 할아버지는 스펀지를 (잽싸게 눈을 돌려 스펀지를 보니 때가 새까맣다. 보지 않았으면 됐을 걸 또 보는 바람에 마음만 심란해졌다.) 뜨거운 물에 적셔 뒤통수를 닦아주신다.

저절로 처지는 몸서리를 억누르느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다 됐다며 갖다 주시는 거울을 보니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이발 실력이다. 타고난 외모에 조금도 손상이 가지 않았을 뿐더러, 단정하고 깔끔해지기까지 했다.

지난 달 북경에서 30원이나 주고 깎은 머리와 별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단 하나, 그곳에서는 머리를 감겨주고, 드라이를 해 준다는 것 정도. 나보다 더 가슴 졸이며 이 과정을 지켜보던 오스트리아 친구도 할아버지의 미용 실력에 놀란 듯이 "생각보다 괜찮은데. 정말이야. 기대 이상이야." 하며 감탄을 늘어놓는다.

"너도 한 번 잘라보지 그래?"하며 팔을 잡아끄니 허둥거리며 도망을 간다. 할아버지께 기쁜 마음으로 2원을 드리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선다. 오늘 장터 구경의 최대 수확이다!

이발사 할아버지가 손님의 코털을 가위로 잘라주고 있다.
이발사 할아버지가 손님의 코털을 가위로 잘라주고 있다.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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