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소풍때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엄마 손잡고 '소풍가는 날' 풍경<1>비오지 않기를 기도하여 맑은 날 아침이 되었다.

등록 2003.05.08 08:34수정 2003.05.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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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소풍' 말만 들어도 가슴 떨립니다. 소풍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소풍은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소풍' 말만 들어도 가슴 떨립니다. 소풍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소풍은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 김규환




소풍날이 잡히면 날은 왜 그리 더디가는지….

소풍(逍風)은 거닐고 노닐어 바람을 쐬러 교실 밖으로 나가는 현장학습이다. 학교와 집, 집과 학교를 오가며 책과 건물에 갇혀 있던 심신을 야외로 옮겨 말끔히 풀어주는 학습의 연장인 소풍. 한때 행군(行軍)으로 변질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어 교복입고 왕복 60리 그 먼길을 재미없게 걸었던 기억 또한 잊지 못할 일이다.

소풍가는 날이 잡히면 아이들은 마음이 바빠지고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학교에 다녀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왜 그려? 뭔일 났냐?"
"아니 고게 아이고라~. 엄마~! 우리 소풍 간다요."
"그냐? 언제간댜?"
"응 쩌기 백아산 중턱 정제나무 밑으로 돌아오는 금요일 날 간다구만이라우~"
"날 잘 잡았구만. 그래야 반공일에 선생님들도 쉬제"

왜 그리 일주일이 멀고 더디 오는지 손꼽아 기다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국회의원(그 때는 중선거구제였기 때문에 세 군에서 2명을 뽑던 시절이다.)이 3개 군 집집마다 석장씩 나눠준 농사달력에 연필심에 침을 잔뜩 발라 날마다 지워나갔다. 엄마를 졸라 이쁜 옷 입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도시락은 그냥 맡기면 되었다.


나는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 따로 할 일이 있었다. 1학년 때는 괜찮았지만 2학년 봄 소풍 때 비가 잔뜩 내려 교실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여 소풍을 대신한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으므로 밤에 잘 때 하늘 쳐다보고 '제발 그날은 비 좀 내리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빌었다. 아침에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구름이 남쪽 백아산 쪽으로 모이지 않았는가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학교 갈 때도 날씨를 도사처럼 맞추시는 아버지께 다짐을 받을 요량으로 여쭤보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아부지, 목요일날 비 안 온다고 했제라~?"
"안 온다했응깨 안 오것제…. 근디 어찌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안다냐?"
"비오면 안 되라우. 절대 안 오게 해야된디…."

사흘을 남겨두고 온종일 비가 내렸다. 가는 비 세우(細雨)가 땅을 질컥거리게 만들었다. 포기한 심정으로 이제 날짜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지렁이 기어가듯 굼벵이 꿈틀거리듯 느릿느릿 날이 다 가고 하루 남긴 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들풀은 이슬을 잔뜩 머금고 풀벌레는 음악시간에 배운 악기를 총동원하여 연주하고 노래하느라 밤 깊은 줄을 모른다. 소풍 전야는 그렇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보물을 찾고 말테야….'
'노래도 꼭 일등을 해야지….' 하고 미리 상상을 하며 늦도록 뒤척이고 있었다.

a 백아산 마당바위 암벽이 나타나기 전까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올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들 산에서 자라서 그런지 산길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백아산 마당바위 암벽이 나타나기 전까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올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들 산에서 자라서 그런지 산길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 김규환



소풍 때와 운동회 때면 비가 내리는 두가지 사연

이렇게 까지 비에 집착하여 맘속으로 날이 환하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낸 까닭이 있었다. 봄소풍이고 가을소풍이고 가을운동회 때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누나와 형들이 들려주곤 했던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학교가 만들어지고 뒤뜰 관사(官舍) 옆에 판 우물에 한 아이가 빠져 죽었다. 여자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외동딸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예뻤는데 청소를 마치고 학교를 파하고 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이 부랴부랴 학교 구석구석을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부모님에게 연락이 되어 선생님들과 동네사람들이 다 같이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소사 아저씨가 교무실 청소를 하려고 두레박을 던져 물을 긷고 있는데 물은 잘 떠지지 않고 뭔가 자꾸 걸리더라는 거다. 밤새 아이는 우물에 빠져 위로 둥둥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2회 선배이니 15년 전의 일이다. 그 뒤로 학교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하나다.

또 한가지는 학교를 만들어 얼마 되지 않은 때 부임해온 교감선생님과 뱀에 얽힌 이야기다.

'이슥한 저녁 일이 끝나갈 무렵 교무실에 남아 하루를 정리하고 있는데, 구렁이가 선생님 옆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란 선생님께서는 멈칫하고는 급히 소사아저씨를 불러 능구렁이를 잡게 했다. 그 뱀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몸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소사아저씨와 같이 푹 고아서 먹었다.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로 남은 뱀이 심술을 부린 터에 매번 행사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교감 선생님과 소사 아저씨를 미워하던 날도 오늘로 끝이다.

a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화순북면 아산초등학교 어린이들. 이 촌 놈들도 크면 고향을 떠나겠지요.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화순북면 아산초등학교 어린이들. 이 촌 놈들도 크면 고향을 떠나겠지요. ⓒ 김규환



소풍가는 날 아침 뻥튀기 아저씨 앞으로 아이들이 몰려….

잘 빌었던 모양인지 어김없이 날이 샜다. 해는 차일봉과 검덕굴 사이 동녘에 찬란하게 떴다. 일어나자마자 냇가에 나가 세수를 하고 흙 묻지 않은 게 중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제 깨끗이 씻어둔 까만 고무신도 아침에 보니 물기가 싹 말라 새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들이 동네 어귀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흙먼지만 묻지 않았지 다들 이리저리 기워 입은 티가 역력하다.

어머니께서는 언제고 빠지지 않고 소풍 때마다 따라 오셨다. 밥을 차려 주시고는 옷매무새를 고치시느라 더 바쁘시다. 마흔 셋 자신 어머니는 옥색치마에 금박물린 연한 저고리에 얼굴에 분을 찍으시고 긴 생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비녀를 꽂으셨다. 나들이옷에 찬합에 세 아이들과 나눠 먹을 떡이며 밥을 챙기셨다. 여동생은 취학 전이라 엄마 손을 잡고 따라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께서는 어디서 돈을 구해오셨는지 300원을 따로 챙겨주시며 선생님께 담배 두 갑을 사다드리고 나머지 100원은 먹고 싶은 것 사먹으라 하셨다. 학교 앞 점방에 들러 먼저 선생님 담배를 샀다. 당시 '개나리'는 최고급품이었다. 남은 돈으로 '흔들어 드세요'라는 광고가 아직도 또렷한 '환타' 한 병에 풍선껌 한 개를 사고 측백나무 빼곡한 울타리가 쳐진 교문 앞으로 간다.

a 뻥튀기 기계가 아닌 튀밥기계입니다. 시골 오일장에나 가야 보는데 저는 집근처 보문시장에서 이 할아버지를 가끔 뵙니다.

뻥튀기 기계가 아닌 튀밥기계입니다. 시골 오일장에나 가야 보는데 저는 집근처 보문시장에서 이 할아버지를 가끔 뵙니다. ⓒ 김규환



이제 30원 남았다. 그 돈으로 미리 나와있던 뻥튀기 아저씨를 만나러 가야한다. 뛰었다. 그 아저씨는 동네로 오는 할아버지와 다른 분이다. 도구도 다르다. 강냉이, 쌀, 보리쌀, 떡가래를 오랜 동안 돌려서 튀밥을 튀는 할아버지와는 달리 간단한 도구 하나에 꼿꼿이 서서 마른 쌀 한 숟갈에 사카린 으깬 것 조금 넣고 2~3초 누르고 있으면 "푸쉬~퍽!" 하며 김을 한 번 내뱉고는 얇고 널찍한 누런 뻥튀기를 툭 뱉어내는 간단한 기계다. 푸석푸석한 뻥튀기는 한 장 입에 넣으면 금새 사르르 녹아 내 궁금한 입안을 간지럽힐 뿐이었다.

아이들이 해찰을 하고 있는 사이 운동장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휘리릭~ 휙!"
"휘리릭~ 휙!"

두 번 울리고 차일봉 아래서 불발한 포탄에서 화약을 빼낸 학교종이 "땡땡땡땡땡…." 연신 울려 퍼졌다.

이곳저곳에서 운동장 한가운데 구령대 쪽으로 뛰어오는 아이들에겐 뻥튀기든, 껌이든, 떡이든 입에는 뭔가 하나씩 물려 있다. 곧 울긋불긋 잘 차려입은 엄마들이 따로 모인다.

교장선생님 말씀과 교무주임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우리는 산으로 그 풋풋한 꿈을 한아름 가득 안고 넓은 신작로 따라 논둑길, 밭둑길을 거쳐 산길을 따라 소풍을 떠났다.

a 입에 넣으면 침에 사르르 녹고 입천장에 달싹 붙는 재미를 느끼며 먹는 추억의 맛입니다.

입에 넣으면 침에 사르르 녹고 입천장에 달싹 붙는 재미를 느끼며 먹는 추억의 맛입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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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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